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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 7,200원 (10%400)
  • 2002-01-20
  • : 71,594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독일 작가를 뽑는 투표를 한다면, 아마도 성장 소설인「데미안」으로 유명한 헤르만 헤세가 단연 1위일 것입니다.

 

「싯다르타는 그런」헤르만 헤세가 심각한 우울증을 앓은 후인 45살 때 쓴 책으로 인도 브라만 계급의 두 친구 싯다르타와 고빈다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난 기나긴 구도 여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헤세는 싯다르타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고타마(석가모니) 사상의 본질을 설파하고 있는데, 저도 소설 읽기 전에는 제목이 싯다르타라 부처님 얘기인줄 알았는데, 이름만 같을 뿐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부친도 학자이며 자신도 학식이 높았던 싯다르타는 미남이어서, 소위 모든 걸 다 가진 매력적인 남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고행의 길에 들어서기로 결심한 것은 갈증으로부터, 소원으로부터, 꿈으로부터, 기쁨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모든 것을 비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빈다는 고타마(석가모니)를 만나 이내 그의 제자가 되어 고타마를 닮고자 머무르게 되지만, 싯다르타는 번뇌에서 벗어나는 해탈이 가르침에 있지 않고, 홀로 수행하며 얻어지는 것이라 생각하고 순례 길을 계속 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기존 피안의 세계가 아닌 차안의 세계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되고, 3년 동안 수행자 생활을 하다가 도시에서 아름다운 기생 카말라를 만나 사랑에 대한 배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소개로 부자 상인 집에서 일을 하며 차츰 능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카멜라와 육체적인 쾌락에 탐닉했지만, 남은 것이라곤 기교뿐 둘은 사랑은 배우지 못하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싯다르타는 부자가 되어 여러 유희에 빠져들어 보기도 하지만 이 세상에 친구라고는 카멜라 뿐입니다. 그는 세상이라는 덫-육체와 돈-에 빠져 자신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인생의 가을인 40살이 되자 그는 늙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드디어 카멜라와 헤어지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강을 만나 빠져 죽으려 했지만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충동에서 벗어납니다.

 

20년 전 젊었을 때 강을 건네준 뱃사공 바주데바를 다시 만나 함께 지내게 되면서 싯다르타는 강을 통해 무엇보다 경청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강이 얘기하고 노래하는 것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시간은 흘러 50 초반에 카멜라가 데리고 온 11살 난 아들과 함께 살게 되는데, 자식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그는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맛보게 됩니다. 그는 생애 처음 자식을 통해 맹목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아들은 순례 여행 중에 도망가 버립니다.

 

바주데바는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자 숲속으로 떠나 둘은 다시 이별하게 됩니다. 바주데바는 이미 완성된 자이자 성자였지만 다시 수행을 위해 숲으로 간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두 친구는 다시 만나게 되는데, 고빈다는 여전히 구도자로 살고 있고, 싯다르타를 본 고빈다는 그가 싯다르타처럼 이미 깨달은 자임을 알고 큰 절을 올리고 사랑과 존경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나게 됩니다.

 

220여 페이지 분량에 불과한 중편 소설이지만, 헤세는 싯다르타와 고빈다라는 두 친구의 삶을 통해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정체성을 찾고, 삶에서 진리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것에 대해 아마 헤세만큼 집요할 만큼 탐구하고 잘 묘사하는 작가도 없을 것입니다.


두 친구라는 설정은 같지만, 지(智)-이성-와 사랑-감성-을 상징하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병행해 읽는다면, 훨씬 더 깊이 있게 헤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불교라는 소재를 택했지만 소설 전반에 흐르는 얘기는 비단 불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어떤 종교의 경전이나 신앙 서적을 읽는 것보다 「싯다르타」소설을 한 번 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깨달음ㄴ과 질문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속 구절>

 

싯다르타 앞에는 한 목표, 오직 하나뿐인 목표가 있었으니, 그것은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이었다.

 

세존이시여,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탈은 가르침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각과 사유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도 경시되거나 과대평가되어서는 안 되었으며, 그 두 가지로부터 가장 내밀한 것의 비밀스러운 소리들을 들어야 할 것이었다.

 

사실상 사람 사는 실정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군요. 누구나 서로 주고받는 것, 인생이란 그런 것이지요.

 

형상의 세계란 무상한 것, 덧없는 것이야.

 

너무 많은 지식이, 너무 많은 성스러운 구절이, 너무 많은 제사의 규칙들이, 너무 많은 단식이, 너무 많은 행위와 노력들이 자기를 방해하였던 것이다.

 

끝장을 볼 때까지 고통을 겪지 않아 해결이 안 된 일체의 것은 다시 되돌아오는 법이며, 똑같은 고통들을 언제나 되풀이하여 겪게 되어 있는 법이다.

 

자기 말에 귀 기울이는 이런 사람에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보이는 것은, 마치 그 상처를 강물에 넣어 씻어서 결국은 상처가 아물어 강물과 하나가 되는 것과 똑같은 일이었다.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물은 물끼리 어울리고 싶어 하고, 청춘은 청춘끼리 어울리고 싶어 하는 법이죠.

 

당신의 내면에는 당신이 매순간마다 그 속에 파고들어가 편안하게 안주할 수 있는 그런 고요한 은신처가 하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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