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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주인공은 완전히 ‘센 언니’다. 주인공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저승사자에게 ‘우리 손녀 제발 밥 좀 먹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 정도로 탄수화물은 입에도 대지 않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런닝을 하며 자기관리를 하는 복싱 선수이다. (이때 나름의 판타지적 요소를 되게 흥미롭게 느꼈는데 생각보다 작품 속에서 저승사자들 비중이 적어서 아쉬웠다.) 그러면서 투잡으로 시골 초등학교 돌봄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갓생러’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알게 된 아이의 보호자인 ‘삼촌’과 각별한 관계를 맺는다. 건강하고 튼튼하며 활동적인 여자 주인공과 어쩐지 마르고 비실해보이는 남자 주인공. 편견 섞인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나는 주인공 설정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여성 서사 아닌가. 약자와 소수자와 혐오와 차별과 다문화와... etc. 요즘은 슬슬 조금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캐릭터 구성이었으나 역시 아는 맛이 제일 잘 먹히는 법이다.
서사는 ‘순한맛’이었고 등장인물들은 무해하고 착했다. 친할머니도 아닌 할머니 손에서 자란 주인공과 자기 자식도 아닌 조카를 살뜰히 보살피며 주인공까지 챙기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13세 이용가 같은 느낌을 받았다. 로맨스적 사랑보다는 우정에 가깝고, 그것보다는 마치 양육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기새가 죽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전전긍긍 곁을 맴도는 어미새 같은 느낌? 아무튼. 아예 청소년 소설로 출판되거나, 청소년 나이대 아이들이 읽어도 무리가 없겠다 싶었다.
다만 이런 소재에 취향이 조금 갈리는 건 당연한 부분이라, 지루하게 느낄만한 요소도 있었다. 읽으면 누구든 체하지 않고 소화되는 흰죽 같은 느낌의 작품이었다. 읽어보면 좋지만, 막상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약간 희미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큰 갈등 없이 물 흐르듯 전형적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조금 뻔하다는 느낌을 받을 법하지만, 뭐 어떤가. 이런 게 ‘힐링물’의 매력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