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동 피아노는 스스로를 향한 끝없는 질문과 대답으로 이어져 있다. 아니 질문에 답하는 사람은 없고 끊임없는 질문만 이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같은 단어의 반복이나 비슷한 말을 조금의 변형만 줘서 사용하는 방식을 굉장히 어려워하는 나에게 이 소설은
한 줄로 표현하자면 '이해하기 어렵다' 였다.
어떤 말을 하고 있는데 나는 자꾸만 제자리로 돌아온다.
어딘가로 가는듯 하면서도 한참을 걷다보면 다시
처음 걷기 시작했던 그 자리에 내가 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여기에서는 자꾸만 길을 잃는다. 길을 따라가면 길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그래. 죽음, 죽음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또 불가능한 상태로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모든 것이 가능하므로. 그 가능한 모든 것이 불가능으로 가능한 이곳에 유일하게 놓여 있지 않은 것. 내가 결코 그것 자체가 될 수 없는 것. 지금 여기에 속하지 않는 것.'
자동 피아노 (16p) / 천희란
이 소설 속의 화자는 죽음에 대한 수많은 고뇌에 빠져있다. 한 때 죽음에 관하여 깊이 생각해야만 했던 날들을 경험한 나로서는 이 화자의 마음과 생각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에서
시작하는 물음은 끝이 없고, 나는 어째서 살아있는가.
죽음은 무엇인가로 귀결되고 만다.
죽음은 대체 뭘까. 죽음이란걸 쉽게 입에 올려서 되는걸까. 천희란 작가는 자동 피아노에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죽음을 이야기하기란 언제나 어렵다. 도처에 존재하며 불시에 찾아오는 죽음. 나에게 항상 죽음은 두려움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어쩌면 죽음은 누군가에게는 탈출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동 피아노의 화자는 죽음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면서도 정말 죽고싶다는 느낌이 들기보다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나를 살려주세요" 라며 애원하는 것처럼 들린다.
위에서도 말했듯 나 또한 언젠가 한 번쯤은 죽음에 대해 상상해봤고 죽음이 최후의 수단이겠거니 생각한 적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와 당신들이 살아있기를 바라는 것은 슬픔을 바라지 않는 나의 이기심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조금 더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해두자.
그러니까 당신이 겪고 있을 아픔이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아픔이라도. 나는 어리고 어리석고 당신은 섬세하고 여려서 내가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다가와 우리의 간극이 생기더라도. 그래도 조금 더 당신을 잡아두고 싶다고. 죽음이 끝내 당신이 선택한 도피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 소설을 쓴 천희란 작가의 편지처럼 말이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끝내 어떤 결정은 오직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을지라도.
나는 간절하게, 당신이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