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2026년엔 사랑과 가까워지려는 모양인지 읽는 책마다 사랑을 말한다. 직전에는 기 드 모파상의 사랑들을 만나보았다면, 이번에는 피츠제럴드의 사랑들을 만나보게 되었다. 피츠제럴드의 사랑은, 좀 더 단단하고 야무지다. 그리고 무성의하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피츠제럴드의 작품으로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인 <위대한 개츠비>만을 읽어보았고 2년 전쯤 내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인가에 대해 좀 더 깊이 탐구하기 위해 재독을 했었다. 이번에 읽어본 「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에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 세 시간>, <겨울 꿈>, <분별 있는 일>,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버니스, 단발로 자르다>, <얼음 궁전>, <컷글라스 그릇> 총 7편의 단편은 <위대한 개츠비>의 초안이거나 연장선이거나 생략된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단편들인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피츠제럴드는 <분별 있는 일>에서 “그 어떤 사랑도 두 번 다시는 같은 얼굴로 찾아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말이 꼭 맞았던 단편인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 세 시간>은 도널드가 비행기 환승 대기 중 3시간 동안 첫사랑이었던 낸시를 찾아가서 겪은 일이다. 난 무료하게 이 첫 단편을 읽어 내려가다가 거의 마지막에서 어? 뭐지? 하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단지 도널드도, 낸시도 그때의 그들이 아닐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기억이 다른 둘. 첫 단편부터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했던 이야기였다.
“여기 너 있다! 여기!”
“기억나! (…) 이 사진 찍던 날, 키티가 찍은 사진인데, 내가 몰래 가져왔었거든.”
“저건 내가 아닌데. (…) 이건 내가 아니라 도널드 바워스야. 우리가 꽤 닮긴 했었지.”
“네가 도널드 바워스잖아!”
“아니야. 난… 도널드 플랜트야.”
39. 황홀했던 5분 동안 그는 미친 사람처럼 동시에 두 개의 세계를 살았다. 열두 살 소년이었고, 서른두 살의 남자였으며, 그 둘은 떼려야 뗄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뒤엉켜 있었다.
도널드 역시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의 몇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인생의 후반부란 결국,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버려가는 긴 여정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그 경험도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랑은, 그리고 어떤 기억은 그 시절에 머물렀을 때 더 빛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겨울 꿈>은 <위대한 개츠비>의 초안이 아닐까 싶었던 단편이었다. 주디 존스는 많은 남성들의 여성이었고 보석이었고 사랑이었다. 그리고 덱스터는 그중 한 명의 남성이었다. 하지만 주디는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았고 결국 덱스터는 아이린과 파혼을 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3. 이상한 일이었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는 그 밤을 후회하지 않았다. 십 년이 지나 돌아보았을 때, 주디가 자신에게 불꽃처럼 끌린 시간이 고작 한 달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 그리고 결국 자신에게는 주디 존스를 완전히 바꾸거나 붙잡아둘 힘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조차, 그녀에게 아무런 원망도 품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고, 더는 사랑할 힘조차 남지 않을 때까지 사랑할 테지만, 그녀를 가질 수는 없었다.
덱스터는 뉴욕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제 그에게는 너무 높아 넘지 못할 장벽은 없게 되었다. 하지만 주디 심스가 된 주디 존스의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89. 수년 만에 처음으로 눈물이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 그는 너무 멀리 와버렸고,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문은 닫혔고, 해는 저물었다.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우리가 흔히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로 잘 알고 있는 피츠제럴드의 원작을, 드디어 읽어보았다. 나는 영화도, 책도 보지 않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내용은 뻔히 다 알고 있었음에 놀랐다. 큼직한 흰 담요에 둘둘 싸여 아기 침대에 몸을 간신히 욱여넣고 “그쪽이 내 아버지인가?”라고 묻는 일흔 살짜리 남자 아니, 일흔 살짜리 아기. 그리고 말 그대로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일흔 살이었던 아기가 영 살의 어른이 되기까지-라고 표현해야 할까.
읽는 내내 역시 피츠제럴드답다라는 생각을 했다. 결이 닮아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다. 피츠제럴드가 그려내는 그 어떤 사랑도 쉽지 않았고 그 어떤 기억도 믿을 수가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에는 피츠제럴드의 단편집인 <광란의 일요일>이 있고 나는 슬그머니 침실에 있는 책장으로 옮겨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