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잘 읽힌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 적지 않은 분량에도 불구 흡입력있게 잘 읽힌다. 박헌영, 임원근, 김단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동지이자 파트너였던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는 단 한번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우리가 몰랐던 세명의 여성 혁명가의 존재를 담았다. 이 여성들을 중심으로 주변 남자들의 인생과 함께 1920년대에서 1950년대에 걸친 한국의 역사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세여자는 혁명의 여정에서 재산, 애인, 가족, 끝내는 목숨까지 잃었다.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활이 곧 투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세 여자'는 시원하게 머리를 단발로 자른 세 여자가 청계천으로 짐작되는 개울에 맨발을 담그고 편안하게 앉거나 서 있는, 1925년 여름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표지에 싣고 있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주세죽과 허정숙과 고명자다. 주세죽은 남로당 총책 박헌영의 부인이었고, 허정숙은 나중에 북한 정권의 사법상과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을 지냈으며, 고명자는 박헌영의 동지인 공산주의 활동가 김단야의 연인이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 남한과 북한, 중국, 소련 등에서 고려인 강제이주, 북한 김정일 정권의 수립과정, 해방 후 혼란스러운 남한, 그리고 한국전쟁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프리즘'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들의 젊은 시절부터 생을 마치는 노년까지 다루지만 사랑의 장면은 달콤하지 않고 죽음의 장면은 슬프기보다 허무하다.
시대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의지가 강한 허정숙이나 감성적인 고명자, 비운의 주세죽 등 주인공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을 살아갔다. 작가는 주인공들의 극적인 인생유전도 그렇지만 이들이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에 중요 장소에 항상 있었다는 것 때문에 짜릿짜릿해 하면서 소설을 썼다고 한다. 소설을 집필하는 12년 동안 미생물의 숨결이 아주 천천히 들어가면서 술이 익었고 밥이 뜸이 잘 들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잘 빚어진 술 같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