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라인'에서 벗어나기
알감구일 2021/02/0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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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력주의와 불평등
- 홍세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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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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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들은 우리처럼 노력하지 않았잖아?"
나는 졸업자들이 대다수 교사가 되는 과에서 대학 공부를 했다. 비정규직 교사들의 정규직 전환에 관해 논란이 일었을 때, 많은 학생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는 것을 부당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열심히 공부해서 임용시험에 합격해서 정규직이 되는 건데, '저들'은 노력도 하지 않고 '우리'와 같은 대우를 받고자 한다는 것이 억지를 쓰는 걸로 보인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우리'와 '저들'을 쉽게 나누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뭐였을까?
낙하산은 나쁘고, 돈을 사용하여 어떤 지위에 오르는 것은 범죄의 행위라고 말한다. 반면에, '노력'에 대한 보상은 정당한 것이라고 말한다. 질문을 던져본다. '노력은 정당한 것이 맞는가?'
모든 사람들이 어떤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나름의 행동들을 하며 살아가고있겠지만, 그 행동들 중에 '보상을 지급할만 한 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들은 한정되어있다. 노력으로 인정할 것인가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노력하는 주체'가 아니라 그들을 입맛에 따라 평가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노력에 대한 보상'은 내가 얼만큼 노력해야하는지 기준선이 명확하지 않은, 사회가 만들어 낸 '공정함이라는 허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너는 우리처럼 노력하지 않았잖아?"
나의 대학교 동기들을 언젠가 만난다면, 이 말을 듣게 될 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말하는 '우리의 정당한 노력'인 임용시험 준비를 하지 않았고, 비정규직으로 학교에서 일 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나는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최대치를 끓어올리기 위해 스스로를 혹사시켜야만 하는 시험이 싫어서 시험 준비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시험을 거부했다고 해서 전공을 살린 직업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시험'을 포기했을 뿐이니까 말이다.
경주 라인에서 벗어나면, 함께 경쟁하며 달리는 사람들이 없는 공터에 덩그러니 남아 나의 위치와 앞으로 향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이는 삶의 불안함을 직면해야하는 고통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텅 빈 공간에서 멍하니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긍정하고자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다같이 규칙을 지키고 자신의 선을 지키며 달리는 공정한 경기라인에서 벗어나, 어떤 선을 그리며 어디로 튀어가도 괜찮은 뒤죽박죽한 세상을 상상할 용기를 얻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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