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캐스트너는 문학이란 동시대의 아픔을 담을 수 있어야 하며, 가장 쉬운 말로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가졌다. 그리고 헤르만 헤세는 에리히 캐스트너에 대해 동시대를 이야기하지만 어느 시대나 통하는 작가라고 말한다.
시집이 나온 지 100년이나 되었지만 지금 읽어도 마치 우리를 위해 쓴 것처럼 여전히 울림이 크다.
사귄 지 8년이 되었을 때 이별한 연인을 노래하는 시 <냉정한 로맨스>는 정말 짠하다. 절제된 표현이 더더욱 이별의 슬픔을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왠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연상시킨다.
그들은 슬펐지만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키스를 하고
서로를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자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남자는 그저 옆에 서 있을 뿐.
(...)
그들은 슬펐지만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키스를 하고
서로를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자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남자는 그저 옆에 서 있을 뿐.
(...)
두 사람은 근처 자그마한 카페로 들어가
찻잔을 저었다.
저녁이 되어도 그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텅 빈 카페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햄릿의 유령>은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에리히 캐스트너의 시에서 항상 그렇듯이 뭔가 의미심장한 아이러니가 깃들어 있다. 술에 취한 배우 구스타프 레너의 난동은 연극을 보는 관객의 태도나 고전을 보는 안목도 다시 생각하게 한다.
(...)
배우들은 겁에 질려 도망쳤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 소동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진 건
토겐부르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토겐부르크 사람들 대부분이
드디어 <햄릿>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정말 어느 시 하나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다. 읽으면 읽을수록 여운이 있고 감동이 있다. 곱씹을수록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의미심장한” 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