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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고독한 농부의 편지
- 이동호
- 15,300원 (10%↓
850) - 2025-03-15
: 367
.얼마 전 경칩이 지나갔다. 도시에 머무는 나에게는 그저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사실을 잠시 상기시키는 데 그쳤다. 작가는 그런 나에게 사계절이라는 풍요로운 선물을 안겨주었다.
.단순한 농부라 칭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조선시대에서 온 듯한 농사짓는 선비의 기품이 느껴지고, 동서양의 지혜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작가의 표현처럼 한 명의 철학자를 만나는 듯한 깊은 여운이 남는다.
"농사만 그런가요. 삶도 마찬가지지요. 손만 내밀면 무엇이든 얻어지는 삶이 당장은 편할망정 죽음에 이르러 어찌 깊은 만족이 찾아오겠습니까. 어쩌면 고생스럽더라도 기다리며 사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물론 노력과 공부가 따라야 하고요."
.이 책은 봄에서 시작하여 겨울로 마무리되는 사계절 구성을 따른다. 책의 첫 장을 펼치면 '저자가 직접 녹음한 시골 소리 듣기' QR코드가 나오는데, 이는 독특하고도 신선한 시도였다. 지친 저녁, 아이의 학원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그 소리와 함께 책을 처음 접했던 순간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여유를 의식적으로 찾으려 애쓰기보다, 그저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포근함이 전해졌다.
.3월의 봄에 관한 부분은 현재의 시기와 맞물려 더욱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요즘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아 내적 고통을 겪고 있던 나에게, 다음 구절은 한 단어 한 단어가 마음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쏟아냈다.
"어느 누구의 삶이든 순풍에 돛 단 듯 살아갈 수 없고,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 하나하나가 훈장으로 탈바꿈하는 시간이 옵니다. 나 혼자만 생각하면 인생이란 자칫 떨어져 내리는 꽃잎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남을 위한 시간이라 생각하면 꾀죄죄해 보이던 내 지난날도 적당히 치유되고 새살이 돋을 수 있습니다. 꽃 아닌 나무가 되어 다른 꽃들을 키워내야 하는 시간이라 여기고 마음을 넉넉하게 가지면 될 듯합니다."
.지난여름의 견디기 힘들었던 폭염을 회상하며 작가가 그려낸 여름의 풍경이 궁금해져 책장을 넘겼고, 가을과 겨울 부분은 해당 계절이 찾아올 때 다시 음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을 향한 겸허한 태도와 본연의 힘을 회복시키려는 작가의 노력을 읽으며, 나 자신은 어떤 가치 있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손쉽게 비료를 사용하여 얻는 농작물과 자연의 섭리를 온전히 받아들여 자란 농작물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마음가짐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의 방식을 배우게 되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것들에도 깊은 감사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바쁜 일상에 지쳐 계절의 변화조차 감지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현대인 모두에게 성찰의 시간을 선사한다. 특히 바람 한 줄기, 햇살 한 조각도 무심코 지나치는 도시 거주자들에게 자연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하는 소중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마음의 평안을 갈구하는 이들, 잠시나마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연의 리듬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이 책을 권한다. 책을 읽고 나면 주변의 작은 변화에도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나 자신이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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