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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詩
  • 불황의 역사
  • 토머스 바타니안
  • 26,100원 (10%1,450)
  • 2023-05-03
  • : 381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불황’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현실적으로 느끼며 살진 않았던 것 같다. 경제 뉴스에서나 들리는 거대한 흐름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삶이라는 건 결국 시대의 흐름 안에 놓여 있다는 걸 코로나19를 지나며 절실히 체감하게 됐다.

  여러 일을 하며 살아왔지만, 내가 불황의 직격탄을 본격적으로 체감하기 시작한 건 2020년 초였다.

  당시 나는 요트 조종 일을 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2월 초부터 운항 예약이 몰리며 바빠져야 할 시기였다. 특히 중국 관광객 예약이 많았기에 시즌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그런데 설날 연휴 무렵 뉴스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코로나 소식이 어딘가 불안했다. 처음에는 중국만의 문제처럼 보였지만 상황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번졌고, 예정되어 있던 모든 운항은 취소됐다. 잡혀 있던 일도 멈췄다. 비정기적이던 경제활동이 이제야 조금 안정되려나 싶던 시점이었기에 팬데믹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결국 나는 가족의 일을 도우며 부동산 분야로 방향을 틀었고,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자격증도 취득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는 심상치 않았다. 거창한 성공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월세 정도 해결하고 세후 200만 원 남짓의 안정적인 수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후 소속 공인중개사로 잠시 일했지만 시장은 점점 얼어붙었고, 결국 그 일마저 정리하게 됐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불황의 역사를 읽게 된 건 단순한 경제 공부 때문만은 아니었다. 불황이 실제로 사람의 삶을 어떻게 흔드는지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위기의 역사 속에는 분명 반복되는 신호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컸다. 경제 위기를 이해한다는 건 결국 앞으로의 삶을 준비하는 일과도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전직 연방은행 감독관이자 40여 년간 금융 서비스 분야 전문 변호사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금융사의 위기 흐름을 분석한다. 책은 크게 다섯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공황 유발 요인과 전개 과정’, ‘정부의 개입과 감독은 어떻게 금융 위기를 유발하는가?’, ‘규제 이전 시대: 공황의 세기’, ‘규제 시대: 더 심각한 공황’, ‘위기에 대한 해법’.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단순히 경제 이론을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금융 위기의 구조와 반복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책에 가깝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이 책이 특정 이념이나 감정적인 주장에 기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경제 위기를 단순히 탐욕의 결과라고만 말하지도 않고, 반대로 시장 만능주의로 흐르지도 않는다. 오히려 실제 역사 속 사례를 통해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가”를 차분하게 추적한다.

  첫 번째 파트인 ‘공황 유발 요인과 전개 과정’에서는 금융 공황이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는지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대부분의 위기가 경제가 가장 낙관적일 때 시작된다는 점이다. 자산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라 믿고, 금융기관은 위험을 과소평가하며, 사람들은 미래의 불안을 잊는다. 그러다 작은 균열 하나가 생기면 시장은 순식간에 공포로 뒤집힌다.

  읽으며 자연스럽게 코로나 시기의 기억도 떠올랐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평범하게 돌아가던 일상이 순식간에 멈춰버렸고, 안정적이라고 믿었던 산업들이 흔들렸다. 경제 위기란 단순히 숫자의 하락이 아니라 결국 사람들의 삶 전체를 흔드는 일이라는 걸 다시 실감하게 됐다.

  특히 이 책은 금융 위기가 갑자기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위기는 오랜 시간 누적된 위험 위에서 발생한다.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균열이 계속 쌓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늘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믿지만, 역사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되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파트인 ‘정부의 개입과 감독은 어떻게 금융 위기를 유발하는가?’ 역시 흥미로웠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정부 규제가 시장을 안정시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때때로 정부 개입이 오히려 더 큰 위험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금융기관이 “어차피 위기가 와도 구제받을 것”이라고 믿게 되면 위험한 선택을 더 쉽게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규제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시장과 정부 모두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인 이상 언제든 허점은 생길 수 있고, 그 틈에서 위기는 반복된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파트에서는 규제가 미비했던 시대와 규제가 강화된 시대를 비교한다. 흥미로운 건 현대의 금융 위기가 과거보다 훨씬 거대해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위기가 자주 발생했지만 비교적 국지적이었다면, 현대의 위기는 전 세계를 동시에 흔든다. 금융 시스템이 복잡하게 연결된 만큼 충격 역시 빠르게 확산되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떠올리면 이 부분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미국 부동산 시장의 문제로 시작된 위기가 전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다. 연결성과 효율성이 커질수록 시스템은 더 정교해지지만 동시에 더 취약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책은 보여준다. 과거 법무사 사무원 일을 하던 시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떠올리기도 했다. 뭐 당시 이직을 하게 된 이유는 그게 아니었지만...

  마지막 파트인 ‘위기에 대한 해법’은 단순한 희망론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았다. 저자는 금융 위기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중요한 건 반복되는 위험을 이해하고, 시스템의 취약성을 줄이며,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책을 덮고 나니 불황이라는 단어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경제 위기를 단순히 ‘재수가 없는 시기’ 정도로 생각했다면, 이제는 인간 사회와 시스템이 만들어낸 반복의 결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반복의 구조를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결국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필요한 공부인 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이 책이 단순한 투자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을 예측하는 책이 아니라, 인간과 시스템을 이해하게 만드는 경제사에 가깝다.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경제는 숫자로 설명되지만, 결국 그 숫자를 움직이는 건 인간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까지도 말이다.

  불황은 누군가에게는 뉴스지만, 누군가에게는 삶 그 자체를 흔드는 현실이 된다. 그런 시간을 지나왔기에 『불황의 역사』는 단순한 경제 교양서 이상으로 읽혔다. 요즘 같은 한국 주식 시장의 호황 속에 반복되는 위기의 역사에 대해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리뷰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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