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20대 대학 시절 가수 강수지 누나의 추천으로 이정하 시인의 시집을 처음 접했다. 워낙 서점을 자주 드나들던 시기. 우연히 사인회를 하고 있는 시인을 서점에서 만났다. 그때 시인에게 시집에 사인을 받았을 때도 문창과 학생이라 하니 자신의 "내 시집은 문창과 학생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라던 말도 기억이 난다.
그 후로 한동안 시인의 시집을 잊고 지내다 2018년 다시 시집을 읽게 됐다. 이제는 커피 일은 더 이상 하긴 어렵겠다며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전환의 시기였다. 그래서 여러 시집들이 읽혔고, 타 출판사에서 간행 중이던 이 시집도 다시 다가왔다. 거의 20년 정도가 흘렀음에도 여전히 끌리는 시집. 개인적으로 시를 전공하기 전부터 추구하는 스타일의 시였기에 다시 시집을 읽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8년 정도가 되어가는 시기. 새로운 출판사에서 나온 시인의 시집에 손이 갔다. 더 이상 시집은 만 원 미만의 가격이 아닌지 오래. 시인의 서명이 담긴 시집은 앞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며칠 전부터 글쓰기 앱에 조금씩 습작을 하는 시기에 다시 읽는 시집.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읽으며 내가 요즘 쓰는 습작들이 떠오른다.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처음 끌렸던 방향으로 내 글 스타일은 더 강하게 지향하게 된 것일까? 시집 제목부터도 최근 몇 년간의 내 삶의 방식과도 비슷했다. '굳이'는 입버릇처럼 말하게 된다. 과거 타인의 눈치를 보며 흔들리던 젊은 청년은 이제 중년의 나이가 들어 자신만의 원칙을 지켜 나가고 있었다.
그동안 여러 시련을 겪으며 희망적인 미래를 계획했던 눈은 날카로운 현실에 비판적이 되었다. 타인을 위하며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무관심했던 이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으니... 그런 변화를 겪어온 이에게 다시 읽은 시집의 시들은 여전히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당시에는 좋게만 보였던 시들이 머리보다 가슴으로 이해가 되는 나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한다. <작은 기도>를 하던 마음이 <바람 속을 걷는 법 2>이 익숙한 일상이 됐다. 경사 보다 조사의 연락이 더 많이 오는 나이.
20대 초반 읽던 시집과 30대 후반 읽었던 시집, 40대 후반에 들어서며 읽는 시의 변화. 그럼에도 여전히 애착하며 가슴 졸였던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는 이제는 다시 그런 날을 바라는 마음과 이제는 슬픔에서 헤어 나오는 방법을 좀 알 것 같다는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시가 어려워 읽지 못하겠다는 이들이라도 시인의 시집을 읽는다면 와닿는 게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만의 언어도 필요하지만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집을 찾는 이들에게 가슴으로 접하기 좋은 시를 담은 책이라 전하며 리뷰를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