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님 품 안에 있을까? 지난해 주님수난성지주일부터 다시 청년 성가대에 복귀해 테너를 하고 있는 내게 이 책의 제목이 들어왔다. 군대에서 세례를 받고 전역 후 비신자 집안에서 군대 신앙으로 20년 넘도록 미사를 드리고 있는 나름 특이? 한 케이스. 코로나 팬데믹 때 잠시 떠나 있었지만 2년 전 아버지의 뇌경색은 신앙에 대한 간절함을 다시 깨우는 계기가 된 듯하다. 미혼이나 청년과 장년 사이에 낀년으로 청년 성가대 복귀는 청년 성가대 인원이 너무 부족했기에 가능했던 살아있는 OB로의 복귀(일명 LOB)였다.
총 3부로 되어 있는 책에서 1부를 읽으며 현재 나의 교만과 판단을 보게 된다. 지금의 판단이 교만만은 아니라 생각하게 된다. 오랜 경험으로 혹시나 했던 문제들이 역시나로 드러났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은 '아무도 싫은 소리 같아 말을 해주지 않아서가 아닐까?' 그냥 두기보다는 꼭 얘기를 해줘야 할 부분들은 해줘야 하는데... 과거 내가 활동을 하면서도 문제에 대한 피드백들을 통해 돌아봤던 일들을 떠올린다. 전반적인 내용을 읽으며 세례를 받은 후 신앙생활을 하는 20여 년의 시간을 떠올리며 지난해 내가 전 지휘자님께 했던 말도 떠올린다. "주님께서는 그때에 부르시는 것 같다고... 필요한 곳으로, 필요할 곳으로..." 1부의 마지막 문장에는 영국의 신비가 노리치의 줄리안의 말은 부족한 우리가 힘을 내기에 좋은 말로 마무리가 된다.
"All shall be well."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p.80)
2부 '주님, 당신 품 안에 고요히 머무는 길을 알려 주소서'를 읽다 이 문장이 들어온다.
기도는 무엇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입니다.(p.92)
그동안 해왔던 기도들은 무엇을 바랄 때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라니... 그렇게까지 생각을 해보진 못 했던 것 같다. 관상 기도를 마지막으로 해본 것도 오래전 일인데 그런 관상에 대해서도 책에서는 다시금 알게 된다. 또, 영적 쾌락도 집착이라는 말도 생각거리를 준다. 어떻게 하면 수도자로 잘 살 수 있을지 묻는 수녀님께 대답하는 저자 신부님의 말과 그 본문의 내용들을 읽으며 영적 쾌락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생각하게 된다.
3부는 첫 글의 앞부분에서부터 닿는 글이 보인다. '성소는 한 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 나는 3부의 제목처럼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것들도 떠올린다. 나와 맞는 이들이나 소수의 이들에게는 친절함과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 어쩌면 나의 성소가 완성되어 가는 여정에 있는 게 아닌가도 생각하게 된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나 온전히 주님 품 안에 있다고 하긴 어려울 듯하다. 지금도 다시 봉사를 재개했으나 그것도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그렇기에 한동안 거리를 두고 있던 신앙서적을 읽게 됐는지도 모른다. 제목부터 '주님의 품 안에' 있으니 내 현재 신앙생활을 돌아볼 기회가 됐다. 또 책을 읽으며 나의 영적 교만에 대해서도 생각하며 불편하거나 거슬리는 이들이 내 신앙에 선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적 치유와 성장을 바라는 것도 어쩌면 우리의 욕심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미사를 드리고 성당 활동을 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기에 때때로 이렇게 영적 독서를 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다시금 느끼는 시간이었다.
영적인 치유와 성장을 바라는 이들이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이들, 잠시 주님과 거리를 두는 이들이라면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 전하며 리뷰를 줄인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