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을 앞두고 나에게 생긴 심경의 변화 혹은 다짐들이 몇 가지 있었다.
- '단순(심플)하게 살자' : 인생 자체를 단조롭게 살자라기보다, 물질적으로 끊임없이 비워내고 싶다는 것이다. 이전과 다르게 '죽음'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죽으면 무얼 남기고 가게 될까?' 그런 것들을 상상하면 내 삶에 거추장스럽게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들을 모두 걷어내고 정말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단순하게 살고싶다.
- '인간관계에 대해 유연해지자' : 20대에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 늘 열려있고, 누구하나 놓치지 않으려 애썼던 것 같다.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곧 나를 표현해준다고 생각했고, '절연, 절교'는 있을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주위를 돌아봤을때 그 때 만났던 사람들 중 누가 진정한 '내 사람'으로 남아있을까. 오래도록 '베스트 프렌드'로 지내왔던 친구도 물리적인 거리와, 생계를 위해 고분분투한 시간 앞에서 자연스럽게 소원해지는 경험이 생기면서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조금은 유연하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두기로 했다. 그리고 상처받거나 불편해도 유지했던 관계들을 가지치기 하는 것에 좀 더 과감해지기로 했다. 그 시간을 좀 더 진정성을 가지고 '내 사람'들에게 쓰는 것이 더 소중하므로.
- '언제나 나의 (건강과) 행복이 우선 순위가 될 것' : 이기적인 인간이 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내가 행복한 사람이어야 남에게도 진심으로 베풀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는 어떤 결정이든 내 행복을 우선 순위로 하기로 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던 와중에, <마음을 비워둘게요>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은 몇 권의 책을 내고, 현재 제주도 작은 마을 소길리에서 책방 섬타임즈를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는 저자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주변의 친구들과, 이웃들과, 모임에서 나눈 평범한 대화들 중에 마음에 콕 박혀, 울림을 주었던 문장들을 채집하고, 그것에 관한 생각을 녹여낸 책이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각자 가진 고민의 가지 수와 깊이에 따라 공감되는 부분이 모두 다르겠지만, 내가 가진 고민과 생각들에 맞닿아 있는 글들이 많아서 자주 멈춰 되짚어 읽었던 것 같다. 그중 몇 가지를 적어본다.
청년도 중년도 아닌 끼인세대, 꼰대가 아닌 진정한 '어른'이 되기
1. 어떤 직업이 미래가 보이는 직업이고, 직장일까? 우리 모두 답을 모른 채 살고 있지 않은가? 자기의 미래도 모르면서 타인이 품고 있는 꿈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하는 조언이 내게는 무책임하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면 꼭 해보는게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 꿈이든 미래든. 그것이 무엇이든 상대가 품고 있는 마음의 씨앗을 소중히 여기는 배려야말로 좋은 충고`가 아닐까. p21
2. 나보다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넘어지지 않는 법이나 지름길을 미리 알려주면 좋겠지만 그들이 나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넘어질 자유'를 주는 것이 내가 최대한 할 수 있는 배려다. 언제든 내밀어줄 수 있는 따뜻한 손과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위로의 의자, 그리고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선선한 바람 아래 그늘을 준비해두면 되지 않을까. p51
'자영업'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자로서의 이마를 탁치게 되는 공감대
1. 어느 때에 어디를 가든 친절하고 풍요로운 손님이 되고 싶다. 그것이 그날 상대에게 찾아온 작은 행복 혹은 큰 기쁨이 될 수도 있으니까. p29
2. 성실함은 시간을 요구한다. 성실의 뜻은 '정성스럽고 참됨이라는데, 여기에 반드시 추가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꾸준함을 바탕으로 한 기다림이다. 그래서 성실한 사람은 찾아보기 드물다. 인내를 겸비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게 내가 성실한 사람을 편애하는 이유다. p86
내 마음에 드는 내가 되고 싶어
1. 평균적으로 2,000개의 단어만 알면 일상생활을 하며 소통하는데 무리가 없다고 한다. 기왕이면 내 입술에 담긴 2,000개의 단어가 긍정이면 좋겠다. 가능하면 격려의 단어, 위로를 주는 문장, 상대방의 마음이 즐거워지는 말을 하고 싶다. 나 때문에 마음을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그 다친 마음을 내가 되받아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p42
2. 다른 사람들이 하는 정도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을 해주는 것을 뜻하는 말 '엑스트라 마일(extra mile)'. 상대방이 원하는 거리보다 조금 더 가주는 것이다. 상대방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베푸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렵다. 가능하면 엑스트라 마일을 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p99
3. 요즘은 누군가에게 먼저 베풀면 어디선가 그만큼 채워지는 일이 생긴다. 여유로워 베푸는 게 아니라 베풀고 났더니 다시 채워져 모자람 없는 것. 나눔과 채움의 순환이 이렇게만 되어도 내 꿈은 이뤄질 것 같다. 여유롭지는 않더라도 모자람 또한 없는 것이니까. 어쩌면 그것이 내가 추구해야할 소박함일 수도. p107
인간관계 유연해지기
1. 삶도 그런 것 같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늘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미적미적하다 일이 커진 후에는 수습하기가 더 어렵다는 걸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특히 내가 상처를 받거나 해치는 방향으로 관계가 자라고 있다면 끊어내는게 맞다. 통풍이 잘 되고, 햇빛을 잘 받도록 적당히 가지치기를 해야 나도 튼튼하고 나를 지탱해주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단단해진다. 그렇게 자란 나무는 어디서 보아도 참 예쁘고. p37
2. '우리'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마음과 시간을 쏟고 싶다. p89
어떻게 살아야할까?라는 질문에 얻은 답
1. Bloom where you're planted.
당신이 심겨 있는 자리에서 꽃을 피우세요. p115
2. 늘 무언가가 되려고 삶을 불태우듯 노력하며 살지만 결국 끝에 가서 남는 건 별로 없지 않았던가. 평범하든 평범하지 않든 나다움을 유지하면서 일상을 소중하게 살아내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일 같다. p128
'내 마음을 위로하는 건 방향을 제시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건 에베레스트에, 심연에, 우주 끝에 있는게 아니었다. 바로 내 곁에, 일상에 있었다. 보통 사람들의 보통의 언어 속에 그 모든 답이 있었다.'라는 저자의 말대로, 답은 가장 가까이 있는지도 모른다. 숨은 보석들을 무심결에 놓치지 않도록 마음을 활짝열고 귀담아 들을 마음을 준비해야지.
덧. 기회가 된다면 저자가 운영하는 제주책방 '섬타임즈'를 꼭 찾아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