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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om of her own: 누추합니다

듣다
‘최선’을 다하겠단 얘길 들었다. ‘최대’한 힘쓰겠다는 말도, ‘모든 걸 동원’하겠다는 약속도 들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 들었다. 그럴듯한 말들은 주로 ‘위’에서 내려왔다. 그 안에는 부사와 형용사, 서술어와 추상명사가 많았지만 시제와 동사, 주어와 고유명사는 잘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책임’이란 말이 들려왔다. ‘적폐’라는 말, ‘엄벌’이란 말도 등장했다. 그런데 그 말을 끝까지 들어도 대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죄송하다’는 말보다 ‘기다려달라’는 청보다 선명하게 들린 건 지도층의 막말과 실언이었다. 그리고 그중 어떤 말은 결국 유족을 거리로 나서게 했다. 어버이날, 두 팔을 올려 벌서듯 자식들의 영정을 들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정부가 말한 ‘최선’과 ‘최대’의 대상은 국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는 계속해서 명령을 내리고 민심을 달래는 ‘입’이길 자처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들이 간절히 원한 건 권력의 ‘귀’였다.
특히 유족들의 입장에서 그랬다. 5월 8일,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에 앉아 이들이 밤새도록 요구한 게 ‘대화’였던 것만 봐도 그랬다. 이날 유족들은 자신들은 싸우러 온 게 아니라고, 우리가 원하는 건 사과라고, 우리 마음을 좀 읽어달라는 것뿐이라며 영정을 안고 울었다. 이들을 막아선, 아마도 세월호 속 학생들보다 네다섯 살 많을, 고개 숙인 경찰의 팔뚝을 잡고 울었다. 하지만 만 하루도 지나도록 이들이 원했던 ‘대화의 길’은 열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미개방상태였다. 얼마 전 ‘미개(未開)’라는 말이 문제돼 그 뜻을 찾아봤다. ‘사회가 발전되지 않고 문화 수준이 낮은’ 이라는 뜻이 먼저 등장했지만 그 아래 ‘열리지 않은’이란 일차적인 뜻도 눈에 띄었다. 앞으로 우리는 누군가 타인의 고통을 향해 ‘귀를 열지 않을’ 때, 그리고 ‘마음을 열지 않을’ 때 그 상황을 ‘미개’하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답하지 못하다
뜨겁지 않게 이 글을 마칠 수 있을까. 차갑지 않게 지금을 말할 수 있을까. 지난달 16일,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배 안에서 한 여고생은 불안을 떨쳐내려는 듯 친구에게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기울기는 어떻게 구하더라?"
그러곤 그 농담을 끝으로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했다. 요즘 나는 자꾸 저 말이 어린 학생들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건네고 간 질문이자 숙제처럼 느껴진다. 이 경사(傾瀉)를 어찌하나. 모든 가치와 신뢰를 미끄러뜨리는 이 절벽을, 이윤은 위로 올리고 위험과 책임은 자꾸 아래로만 보내는 이 가파르고 위험한 기울기를 어떻게 푸나.
지금 진도에 ‘사실’은 차고 넘치나 ‘진실’은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듯하다. 그러면 이 자리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지난 몇 년 간, 요 며칠간 내가 가까스로 발견한 건 만일 우리가 타인의 내부로 온전히 들어갈 수 없다면, 일단 그 바깥에 서보는 게 맞는 순서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어쩌면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거였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 이해가, 경청이, 공감이 아슬아슬한 이 기울기를 풀어야 하는 우리 세대가 할 일이며, 제도를 만들고 뜯어고쳐야 하는 이들도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감시와 처벌 이전에, 통제와 회피 이전에 말이다.
그때 우리가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다는 건 수동적인 행위를 넘어 커커다란 용기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될 거다. 다만 무언가를 자주 보고, 듣고, 접했단 이유로 타인을 쉽게 ‘안다’고 해선 안 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과 불행을 구경하는 것을 구분하고, 악수와 약탈을 구별해야 하는 이유도 그와 같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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