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캐리어』**라는 소설을 알게 되었을 때는, 한 사람이 캐리어 하나를 끌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미스터리 소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펼쳐보니 예상과는 달랐다. 여행지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에는 저마다 다른 삶과 상처를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소설집이었다.
어쩌면 단편이라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한 편, 한 편이 짧은 여행처럼 느껴졌고,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잠시 멈춰 서서 인물의 감정을 곱씹게 되었다.
한지수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서사를 이끌어가는 힘이 참 독특했다. 조용히 이야기를 쌓아 올리다가도 어느 순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독자의 마음을 흔든다. 그렇다고 자극적인 반전을 위한 반전은 아니다. 인물의 선택과 감정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반전이다. 책장을 넘긴 뒤에도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를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여행은 보통 설렘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여행은 조금 다르다. 등장인물들은 아름다운 풍경만 바라보기 위해 떠난 것이 아니다. 누구는 상실을 안고, 누구는 죄책감을 안고, 누구는 말하지 못한 비밀을 품은 채 캐리어를 끌고 낯선 도시를 걷는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캐리어 안에는 옷과 짐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쉽게 내려놓지 못했던 삶의 무게도 함께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발리 그 섬에서〉**와 〈야(夜)심한 연극반〉이었다. 물론 〈그라나다 유기견〉, 〈목소리들〉, 〈코드번호 1021〉 역시 몰입해서 읽었지만, 이 두 작품에서 특히 한지수 작가만의 색깔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작품의 배경은 내가 실제로 여행했던 곳이기도 했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다. 소설을 읽다 문득 풍경이 궁금해져 여행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니,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도시의 풍경이 아니라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우리는 결국 여행을 마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달라진 것은 장소가 아니라, 그 시간을 지나온 우리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잠시 낯선 곳에서 숨을 고르고, 삶을 조금 떨어져 바라본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캐리어』는 여행을 소재로 하지만, 결국 사람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의 기분은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의 설렘과도 닮아 있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지는 동시에, 내 마음속 캐리어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지 조용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도서 협찬으로 읽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