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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장
  • 죽음을 그리다
  • 이연식
  • 15,300원 (10%850)
  • 2021-11-22
  • : 113


주변의 누구도 당사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절망적으로 고립된다. (41쪽)


사람들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종종 잊어버리고는 자신은 아주 긴 시간이 흐른 다음 천천히 세상을 떠날거라 믿는다. 누구도 내가 죽을 모습을 정해 둘 수 없다. 죽을 시간과 자리, 함께 있을 사람 등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사고나 재난으로, 또 전쟁과 학살로 사라졌던가. (2. 순교자와 암살자, 들어가는 글)


모든 인간은 죽는다. 죽은 자가 아니면 애도할 수 없다. (234쪽)


- 그림으로 보는 죽음의 다채로운 양상


 책 <죽음을 그리다>를 읽었다. 임종, 전사, 복상사, 자살, 황제의 죽음, 살인, 지옥, 사고사, 익사, 유령, 망자 등 죽음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수십 장의 그림과 설명, 그리고 죽음에 대한 글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곳에서 스쳐 지나가듯 봤을 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그림에 작가님의 설명이 더해지니 감명 깊은 그림으로 변한다.





- 수십 장의 그림에 담긴 이야기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라는 그림에 담긴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추남에 절름발이였던 형 잔초토와 사기 결혼을 하게 된 프란체스카와,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는 수려하고 늠름한 동생 파올로. 연민이 사랑으로 발전하여 두 사람은 금지된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 형 잔초토의 칼에 찔려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는 단테 <신곡>에서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을 돌아다니던 단테가 발견하게 되는 인물이기도 하단다.


 처음에 봤을 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그림이었는데, 작가님의 설명을 읽으니 그림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해서 좋았다. 이 그림 뒤에 가에타노 프레비아티가 같은 제목으로 그린 그림이 등장하는데, 같은 이야기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린 듯한 그림이라 또 재미있었다.




 이블린 드 모건 Evelyn De Morgan이 그린 <죽음의 천사>에서 가련한 소녀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천사가 나타난다. 표정이 그윽하기는 하지만, 옆에 커다란 낫을 들고 있어 누가 봐도 죽음의 천사다. 옛날 사람들은 사람이 죽을 때 죽음의 사자(使者)가 온다고 생각해 왔다. 그렇다면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매개하는 존재인 사자는 천사인가, 악마인가?

 이 그림에는 '사마엘'이라는 부제가 붙곤 한다. 히브리 전승에 따르면 '사마엘'은 천사였다가 악마가 된 존재다. (119쪽)


 그림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소설, 영화, 드라마, 성경, 작가 등 죽음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풀고 있어서 더 재미있었다. 지금은 저승사자가 검은 도포를 입고 온다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옛 기록을 보면 검은 옷이 아니라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등장했다는 이야기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미시마 유키오, <로마 제국의 양상>,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단테 <신곡>, 에밀 졸라의 소설 등 죽음에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작품을 다수 언급하고 있어서 흥미로웠고 또 감사했다. 좋은 책은 독자를 또 다른 좋은 책으로 안내해준다.


 기획부터 출간까지 4년이 걸린 책이라고 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세상에 나온 책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내가 이런 책을 좋아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이 나오고, 책을 사랑하는 독자인 나 또한 수많은 책을 보지만 첫 페이지 첫 문장부터 내 취향에 딱 맞을 것이라는 감이 들게 하는 책은 흔치 않다. 미리보기로 한번 읽어보고 느낌이 좋아서 혹시나 서평 이벤트에 당첨이 되지 않더라도 내 돈으로 사서 읽어볼 작정을 하고 있었는데 운이 좋게 당첨이 되었고, 또 실제로 읽었을 때 예상했던 대로 재미있게 읽어서 기분이 좋다.


 조용한 전시회에서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책은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모두가 이 책을 좋아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미리보기로 앞페이지 몇 장 읽어보고 느낌이 괜찮다 싶으면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이 책은 재미있는 책이다. 어렵지도 않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협찬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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