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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풍경















1. 남편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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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카슨은 노벨상 때문에 읽었다. 간만에 집에 온 아롱이가 엄마, 앤 카슨 알아요? 해서 몰라, 했더니. 몰라요? 누군데? 이번에 노벨 문학상 받은... 아. 그래? 하나도 안 읽었네. 대화가 이렇게 마무리되고 나서 밀리의 서재 들어가 보니 앤 카슨의 소설이 올라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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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소설이 남자, 아주 잘생긴 남자에게 미친 그저 그런 여자의 이야기로 읽힌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괜찮겠다. 소설은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본인의 느낌대로 읽으면 되니깐. 나는, 이런 장면에서 막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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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험이 한 번도 없었고, 기억할 만한 연인이 한 명도 없고, 아쉬운 추억이 하나도 없는데. 나는 그랬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름다움에 대한 항복으로 읽었다. 거부하고 싶지만, 부정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항복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신의를 저버리는 사랑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돌아오는 그를 다시 받아주고픈 마음에 동조하며 읽었다. 슬프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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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문장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였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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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와 피해로 단순하게 나누어 생각하고 싶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나는 자주 그런 식의 사고에 빠지는 사람이기는 하다. 앤 카슨은 이 소설의 주인공을 페르세포네에, 남편을 하데스에, 그리고 그와의 사랑을 반대하는 엄마를 데메테르로 그려낸다. 저자가 이탤릭체에 더해 볼드체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여기다. "어떻게 강제로 먹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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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 연결되는 절벽에 아름다운 꽃을 심어 페르세포네를 유혹한 사람은 하데스고, 페르세포네가 그 꽃을 잡는 순간 지하의 문을 열어 페르세포네를 납치한 사람도 하데스이다. 지하 세계의 음식인 석류를 먹게 함으로써 페르세포네가 지상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길을 막아버린 것도 하데스이다. 하지만, '하데스가 주어 석류를 먹었다'는 내용을 담은 『그리스 신화』가 있는가 하면,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의 정원을 거닐다 '스스로 석류를 먹었다'라고 표현한 『변신 이야기』도 있다. 저자는 후자 쪽에 더 무게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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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활한 그가 속여 강제로 그걸(석류) 먹게 했어요.라는 페르세포네의 말 뒤에 저자의 물음이 놓여있으니 그렇다. 어떻게 강제로 먹게 했을까? 굳이 따지자면, 나도 후자 쪽이다. 이유식을 먹는 아이도, 입맛에 안 맞으면 혀를 굴러 음식을 뱉어낸다. 페르세포네는 스스로 석류를 먹었고, '나'는 그의 아름다움에 속아 스스로 굴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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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메두사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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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펀딩할 때 구입해 두었는데, 북카트 밑에 깔려 있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정갈한 마음에 쌓인 책들 다 밀어내고 간신히 꺼내보니, 이런 예쁜 엽서가 보인다. 내 아이디 나온다.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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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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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있는 강의에서 사마천의 『사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인간 종이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이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하고, 권력의 중심부에서는 그러한 인간의 희로애락이, 질투와 충의와 사랑과 탐욕이 훨씬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캡처한 건 이렇게 두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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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아버지와 못된 새어머니와 효자 설정으로 우리에겐 심청이가 있는데, 중국에는 순(주의사항: 순이 아님)이 있었고. 알 속의 주몽을 깍듯하게 대했던 말과 소, 새들은 중국 주의 시조 후직에게도 그렇게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고 한다. 읽는 재미에 더해 보는 재미도 있어 7권까지 신나게 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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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라틴 아메리카의 혈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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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 않지만, 엄마 말씀으로는 내가 졸라서 아빠와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 다녀왔다고 했다. 두 무더기가 넘는 책을 사 왔는데 다른 책들은 기억이 안 나고, 위인전 4권은 또렷한데, 안창호, 안중근, 김정호였다. 나머지 1인도 남자였는데, 그 사람만 기억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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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새 책으로 사 준 전집은 두 질인데, 하나는 20권짜리 과학 전집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의 필수품, 70년대의 가정용 인공지능 브리태니커 전집이다. 과학 전집은 1권 <물질의 세계>부터 시작해 생물학이 주를 이루고, 20권에 미래 과학 기술까지를 망라하는 구성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획기적인 것이 세상에, '만화'였다. 동생과 내가 특히 좋아했던 건 13권이었던 <세계 7대 불가사의>였다. 첫 번째 꼭지가 이스터 석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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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내가 보기에도 이집트에 대한 부분은 불가사의라고 보기에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피라미드 발굴 과정에서 벌어졌던 불운한 사건을 불가사의라고 해석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관심이 생겨 여러 번 읽었던 대목은 잉카, 아스텍, 마야 문명의 흥망성쇠와 멸망에 관한 부분이었다. 그 땅의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던 백인의 관점에서 하는 말,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린 나는 아무것도 몰랐으니, 마츄피츄의 사진을 뚫어질 듯 쳐다보면서는 같은 질문을 쏟아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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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첫 번째 질문, (1) 수적으로 우세였던 선주민들은 수백 명의 유럽인들에게 왜 그렇게 쉽게 정복당했던가. 이 부분은 『총, 균, 쇠』와 『사피엔스』에 자세히 나온다. 백인이 가져온 천연두, 파상풍, 폐 질환, 장 질환, 성병, 트라코마, 티푸스, 한센병, 황열병에 의해 원주민들은 무기력하게 죽어갔다. 백인과의 조우 초기에 선주민들의 소극적인 대응에 대해서는 그들의 신화 때문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 외지인들이 "사슴들"을 데리고 왔는데, 사슴들이 그들을 "지붕처럼 높이" 태우고 있었다. 사방에서 몰려온 외지인들은 몸 전체가 갑옷으로 감싸여 있어서 "그들의 얼굴만 보인다. 얼굴이 석회처럼 하얗다. 그들의 머리카락은 노란색이었는데, 물론 일부는 검은색이었다. 기다란 수염이 ・・・・・・ ." 목테수마 황제는 케찰코아틀 신이 돌아왔다고 믿었다. ... 케찰코아틀 신은 동쪽에서 와서 동쪽으로 떠났었다. 그 신은 백인이고 수염이 많았다. 잉카의 양성 신인 우이라코차(Huiracocha)도 백인이고 수염이 많았다. 그리고 동쪽은 마야의 영웅적인 선조들의 출생지였다. (4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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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39) 이런 놀랄 만한 일치는 원주민 종교의 신들이 실제로 콜럼버스보다 훨씬 이전에 이 땅에 도착했다는 가설에 힘을 부여했다." 그렇다면, 그 신화는 신화라기보다는 실제 인디오들의 경험이 구전되었을 확률이 높다. 전설 속 얼굴이 하얗고 수염이 많은 케찰코아틀 신이 자애롭고 온화했던데 비해, 그들이 케찰코아틀의 현신이라 믿었던 스페인, 포르투갈의 군인들은 금에 눈이 먼 탐욕스러운 인간들이었다는 데에 선주민들의 불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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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게, 조상들의 내분과 무능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침략당했지만 침략하지 않았다고 자랑하기도 하지만, 그건 우리 민족이 특별히 평화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약했기 때문에, 무력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침략할 수 없었을 뿐이다. 남미 대륙에서 선주민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악행은 너무나 치밀하고 잔혹해서, 수전 손택의 이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The white race is the cancer of hum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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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uth is that Mozart, Pascal, Boolean Algebra, Shakespeare, parliamentary government, baroque churches, Newton, the emancipation of women, Kant, Marx, and Balanchine ballets don't redeem what this particular civilization has wrought upon the world. The white race is the cancer of human history; it is the white race and it alone—its ideologies and inventions—which eradicates autonomous civilizations wherever it spreads, which has upset the ecological balance of the planet, which now threatens the very existence of life 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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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모차르트, 파스칼, 불 대수, 셰익스피어, 의회 민주주의, 바로크 양식의 교회, 뉴턴, 여성 해방, 칸트, 마르크스, 그리고 발란신의 발레 작품들이 이 특정 문명이 세계에 저지른 일을 상쇄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백인종은 인류 역사의 암이다. 백인종, 오직 백인종만이 그 이념과 발명품을 통해 자신이 퍼져 나가는 곳마다 자율적인 문명들을 말살하고, 지구의 생태적 균형을 무너뜨렸으며, 이제는 생명 그 자체의 존립마저 위협하고 있다. (수전 손택, 1967년 겨울호 《Partisan Review》 57쪽, 「What's Happening in America」, 챗지피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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