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안다는 건 불가능하고, 어디까지나 사건의 당사자와 화자가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김대중 자서전』과 이 책을 비교하자면 그 차이가 확연할 텐데, 똑같이 자서전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김대중 자서전』 같은 경우 본인이 저술의 처음과 끝이다 보니 검수의 과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본인의 의견이나 판단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 『이해찬 회고록』은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후배이자 동지인 최민희 의원이 과거의 장면을 회상시키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이해찬 대표가 답을 하고, 그 상황에 대한 추가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하는 식으로 전개되는지라 읽는 과정이 전체적으로 수월할 뿐만 아니라, 대화를 듣고 있는 듯한 편안함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해찬 대표를 일직선상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밖에 없다. 김대중은 우리 역사에서 저평가된 측면이 적지 않다. 그는 정치가 이전에 사상가였고, 철학자였다. 당연히 현실(?) 적인 정치인, 민주당 출신 대통령 4명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해찬 대표는 김대중 대통령과는 좀 다른 언설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김대중 대통령은 과거를 기억함에 있어, '그때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급하게 미국 관료 000을 만나 이렇게 저렇게 설득했고, 그래서 한반도의 이런저런 위기를 막아냈다.' 이런 식이라면, 이해찬 대표는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좀 도와달라고 그러더만.' 이런 식이다. 그 많은 일을, 척척해냈던 사람치고는 가지기 어려운 묘한 겸손함. 책 전체를 통해 그런 겸손함이 느껴졌다. 항상, 결국, 종국의 문제는 실력이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에 겸손함이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다.
사람에게는 한 번의 삶이 주어진다. 윤회의 삶을 믿는 게 아니라면, 한 번. 단 한 번의 삶이다. 그 삶을 어떻게 쓸 것인지는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고 어깨의 짐이고 하나의 특권이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 정해진 직업, 강요된 현실을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모든 양태의 삶이 가능한 건 아니지만, 일정 부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정치는 전부가 아니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 하지만, 국가의 정책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직업 정치인들을 통해 정치적으로 '결정'되었을 때, 그러한 정치적 결정은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의 교복 비용을 지원받는다거나 집 앞 공터에 수영장을 겸한 도서관이 들어서는 일은 눈에 띄는 아주 자그마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통령 후보의 대북관이 왜 중요한 의제가 되어야만 하는가.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 세력과 북한을 동포로 규정하는 정치 세력이 펼쳐낼 한반도의 미래는 너무나도 극명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옳다,라는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이제 막 시작해서 겨우 30쪽 읽은 『조지 오웰의 정치적인 글쓰기』에서 오웰은 이렇게 썼다. 아주 유명한 바로 에세이의 바로 그 문단이다. 글쓰기의 네 번째 목적.

4.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단어는 최대한 넓은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세상을 이끌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사회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놓으려는 욕구 등을 가리킨다. 어떤 책도 정치적인 편향으로부터 100퍼센트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아무 관련이 없어야 마땅하다는 의견도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적인 태도이다. (『조지 오웰의 정치적인 글쓰기』, 17쪽)
정치란 무엇인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세상, 혹은 나와 생각이 비슷한 우리가 바라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상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상과 비전이 얼마나 훌륭하고, 이타적이고, 고매한 것인가 만큼 중요한 것이 그 이상의 실현과 실천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을 때, 사람들은, 표독스러운 어떤 사람들은 그 이상을 무력으로 강제하려고 한다. 윤석열이 '파렴치한 종북 반북가세력'들을 척결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고 했을 때, 국가와 경제와 국민을 혼란과 위험에 빠뜨리고서라도 그가 얻고 싶은 결과물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수도 있겠으나, 그가 그 말을 진짜 믿었을 확률도 적지 않다. 근간의 행동을 보아서는 그렇게 보인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을 위해, 그 이상의 실천을 위해 어떤 사람들은 바보가 되기도 하고, 폭군이 되기도 한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는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가 가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 줬어요. 로자 룩셈부르크의 주장은 20세기 초에나 통했을지 모르지. 칼 포퍼 같은 학자는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고 '개방사회' 개념과 함께 끊임없는 진보, 개혁을 주장했어요. 혁명은 짧고 단순한 과정이지만 개혁은 인내심을 갖고 계속해야 돼. 혁명보다 개혁이 더 어려운 거예요. 우리 사회는 일제강점기를 거쳐서 분단이 됐는데 여기에 교조적인 계급투쟁이 통할 수 없어. 우리만의 방법을 찾아서 개혁해야지. (173쪽)
그래서 이해찬 대표의 이 말이 더 기억에 남았다. 혁명이 아니라 개혁을 만들어가겠다는 말. 나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변화를 받아들이고 개혁해 나가겠다는 말이 좋았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을 믿고 가는 모습이 좋았다.
변혁의 주체는 결국 국민이고, 국민일 수밖에 없음을. 이해찬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믿었고, 그래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그래서 한결같을 수 있었다. 국민을 의지하는 그 마음 때문에.
최민희 2016년 10월 JTBC가 입수한 태블릿PC를 통해서 국정 농단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시민 저항이 일어났고 결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이 이뤄집니다. 촛불집회가 없었다면 국회가 탄핵까지 갈 수 없었겠지요?
이해찬 촛불 1만 명당 국회의원 한 명이었다고 보면 돼요. 무슨 말이냐. 당시 주말마다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잖아요. 12월 9일에 국회가 탄핵안을 가결했는데 찬성 의원이 234명이었어요. 근데 직전 주말인 12월 3일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이 234만 명 정도였지. 최대 규모였어요. 촛불집회가 그렇게 커지지 않았으면 탄핵을 못했을 거예요. 태블릿PC가 나오고 나서도 바로 탄핵 여론이 일어난 건 아니었어요. 박근혜가 스스로 물러나는 게 좋다는 분위기였지. 그게 안 먹히니까 탄핵 요구까지 나오게 됐고. ... 근데 촛불집회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여당 의원들도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된 거예요. 촛불 1만 명이 국회의원 한 명을 탄핵으로 이끌어 냈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야.(5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