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책이 있는 풍경















1. 아니 에르노의 말

한국의 아니 에르노라 불리는 열정의 아이콘인 바로 그분이 아주 예전에 사 준 것을 이제야 읽었다. 손때 탈까, 아껴서 아껴서 읽다가 어쩔 수 없이 마저 읽었다.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와의 케미가 책의 성패를 가늠한다. 서로에 대한 정보와 이해와 존중이 있을 때 성공할 테다. 아니, 하나만 있어도 성공이다. 모르고 질문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걸 다 인터뷰어의 잘못이라 할 수 없기도 한데, 푸코 인터뷰집(그 책 제목이 기억 안 난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에는 사회자가 말만 하면, 푸코가 그건 아니라고. 아니, 그건 그게 아니라고. 그런 말이 계속 나온다. 기억에 남는 건 필립 로스와 프레모 레비의 인터뷰인데 『왜 쓰는가』에 실려 있다. 그렇게나 까칠한 필립 로스가, 자기가 인터뷰 받는 입장일 때는 그렇게 요리조리 피해다니더만, 인터뷰어가 되었더니 진중한 질문을 연신 쏟아내고. 프레모 레비는 참 좋은 사람 같다. 인터뷰 전체가 따뜻하고 훈훈한 느낌이었다.

이 책의 인터뷰어는 로즈마리 라그라브이다. 모르는 사람이기는 한데, 아니 에르노와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서로에 대한 인정, 존중, 이런 느낌이 강해 읽는 내내 편안하고 즐거웠다. 샘내지 않으면서 상대를 맘껏 칭찬하고, 그의 업적을 인정하면서 자신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솔직하다는 건, 이미 자기 자신도 단단하다는 의미 아닌가 싶다. 자신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칭찬하지 못한다.

난 사회과학이 부르디외가 말한 그 이유 때문에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제일 먼저 확신한 사람이에요. 부르디외가 사망했을 때 나온 대부분의 증언들에도 그런 뜻이 담겨 있었잖아요. 우리는 많은 것을, 때로는 아주 오래된 것들을 뒤죽박죽 느끼면서 살아가고, 그러다가 그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내가 느낀 것에 대해서 말해주는 책을 만나게 되죠. 나에게는 1971년에 발견한 『상속자들Les Héritiers』이 바로 그런 책이었어요. 내가 지나온 것이 그가 말하는 "장학생"의 경로였다는, 그때까지 내가 지녔던 수많은 태도들, 거북함, 수치심, 예를 들어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나의 시집 식구들 사이에 있을 때 겪게 되는 감정이 전부 설명된다는 자각이 갑작스럽게 분출한 순간이 있었죠. (92쪽)

이 책, 에르노가 말한 부르디외의 『상속자들』이 집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거실 탁자 위 15층짜리 책아파트의 3층에 자리 잡고 있다. 언제 어떻게 샀는지 기억이 안 나서 북플에 들어가 보니 잠자냥님의 페이퍼가 똭! 아, 그 페이퍼 보고 혹해서 샀구나 싶다. 얼른 읽어야지,의 마음.


2. Do you Remember?

맥파든 14번째이다. 별 다섯이고, 다시 읽을 용의 있음. 가능성은 82% 이상. 맥파든 랭킹 수정해야 하는데, 그건 다음 기회를. 알라딘에서 책 제목과 저자 이름으로 찾으면 책이 안 나오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알라딘 참고 바람>

아침에 일어난 테스는 처음 본 남자가 자기 침대에 속옷 차림으로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젯밤에 나와 함께 한 남자, 결혼을 약속한 사이인 약혼자 해리를 소리쳐 부르는 테스. 테스의 절규에 잠에서 깨어난 남자는 놀라지도 당황해하지도 않는다. 그저 차분히 테스를 진정시키려 애쓰며, 자신을 소개하는데. 내가 당신의 남편입니다. 만난 기억이 전혀 없는 이 남자. 잘생기고 핫하지만 딱 내 스타일은 아닌 이 남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어젯밤까지만 해도 나와 함께 했던,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던 내 약혼자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남편이라는 사람이 건네는 편지 한 장. 거기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설명이 내 필체로 쓰여 있다. 내가 나에게 보낸 편지.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보낸 당부의 말.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보내는 확신의 말.


믿을 수 있을까. 이 남자의 말을, 그리고 바로 내 글씨로 쓰인 편지 위의 내 말을.










3. 박태웅의 AI 강의 2025

유튜브 알고리즘은 얼마나 무섭던지. 인공지능과 관련된 강의, 영상을 쏟아내고 있다. 나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나보다 더 정확히 알고 있는 유튜브. 알라딘의 '단발머리를 위한 추천작'에서는 그런 마음이 안 드는데, 유튜브 추천 동영상을 보면 자꾸 서늘해진다. 누구냐, 넌!

김대식은 과학자이면서도 장사꾼 느낌인데(그냥 저만의 느낌입니다^^), 뻔하고 지루한 학자풍의 퍼포먼스가 없기 때문이다. 옷, 헤어스타일에서부터 풍기는 분위기가 실험실에서 머리 박고 있을 사람은 아닐 것 같고, 그래서 그렇겠지만 책도 통통 튀는 느낌에 발랄하고 신랄하다. 박태웅의 책은 오히려 더 점잖고 차분한데, 인공지능의 역사와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 대한 부분은 살짝쿵 넘어갔다. 제일 흥미로운 지점은 휴머노이드 로봇, '몸을 가진 AI' (Embodied AI)에 대한 부분이다. 몸을 가진 인공지능이라니. 예전에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에 대한 리뷰를 썼을 때, 다락방님께서 <메이드(Subservience)>라는 영화에 대한 댓글을 달아주셨다.



'메이드'(메간 폭스)'는 아기 돌보기, 빨래, 청소, 식사 준비가 가능한 가정용 휴먼노이드이다. 아내의 입원을 앞둔 남자가 구입했는데, 인간의 감정에 대한 부분까지 학습하게 되면서 로봇이 아닌 가족, 휴먼노이드가 아닌 아내가 되려 한다. 옳고 그름의 경계를 가뿐히 넘어선 메이드는 자신의 구매자이자 사용자인 그 남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의 가족들을 해치려 한다. 그 모든 악행은 그 남자를 위한 것이다. 그 남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그 남자의 신체적 안정을 위해서, 그 남자의 행복을 위해서. 비극은, 진짜 비극은 사랑의 이름으로 온다.








4. 넥서스

유발 하라리는 인공 지능의 등장이 만 년에 한 번 등장할 만한 대변혁, 이른바 농업 혁명에 버금가는 커다란 변화라고 말한다. 이 일은 5년, 10년, 혹은 20년 안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데, 이를 제어할 만한 지혜와 통찰이, 제일 중요하게는 힘이, 그럴 힘이 인류에게는 없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는데, 나는 여기에 밑줄을 긋는다. 2024년 10월 번역인데. 직역일 텐데. 하하하. 일단 한 번 웃고, 다시 읽어보자. 찬찬히, 끝까지 읽어보자.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