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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의 『The Coworker』를 읽었다. 사회성이 부족하고 거북이를 사랑하는 한 여성과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는 아름다운 금발 여성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가고 그렇게 끝을 맺는다. 그런데, 아. 여기까지 읽었는데 67퍼센트네? 그럼 뒤에, 그만큼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말인가요?

상대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두 사람 사이의 역사. 아니, 그 사이에 또 다른 사람의 삶이 엮인 과거의 일들이 차례차례 소환된다. 오랜 시간 준비한 철저한 복수극은 이렇게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아, 근데 잠깐. 이야기가 왜 그리로 가나요? 아니, 왜, 옆 사람을 의심하고 그래요? 아니, 잠깐만요. 자꾸 그쪽으로 갈 거예요?

바로 이 순간, 윤석열 구속 취소 & 석방의 청천벽력과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 윤석열 석방은 지귀연의 미친 짓 때문이었지만, 이 석방은 원래부터 잘못된 것이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 아, 그럼 당신이 범인이 아니고, 아니 그러면 그 피해자는 또 어디에 있는 거죠? 아니, 그래서 이 이야기, 이거 지금 어디로 가나요?

이렇게 쫓아다니면서, 거의 마지막 부분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다가 결국, 마지막 가서야, 비로소 주인공은 진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갈등은 해소되고,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두 사람. 이 작품을 끌고 가는 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진실을, 거짓 속에 감춰진 진실을 알고 있다. 두 사람만 알고 있다. 서로가 알고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은 알고 있다. 그 비밀은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영원히 묻혀 있을 것이다.

프리다의 이 작품은 이 소설이 속한 장르가 스릴러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게 만들고, 시체 없는 살인에 대한 괴이한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잔인하거나 선정적이지 않고, 폭력적인 장면도 별로 없어서 나처럼 겁 많은 독자가 읽기에 적당한 스릴러인 듯하다.










프리다의 『The Housemaid's secret』에서 나는 '비밀'에 꽂혔더란다. 이 작품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상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 혼자 곰곰이.










이상화를 잘 하면 우리는 평범함과 특별함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연인이 평범한 사람이란 걸 잊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짜증 나는 버릇과 기벽이 있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나처럼 그에게도 초조함, 걱정, 의구심, 불안감, 우유부단함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과거 때문에 중압감과 갈등에 시달린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하버드 사랑학 수업』, 456쪽)


사랑에 빠졌을 때, 어떤 사람을 지독하게 사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이상화하게 된다. 눈이 하트로 가득 차 있을 때, 그 사람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손색없이 완벽하다. 하지만, 이는 그 사람의 한 면만을 보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 사람도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불안해하고 짜증 내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졌을 때, 내가 그녀/그를 정말 사랑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걸 모른다. 그 간단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Caleb believes I'm a better person than I am. He can never know the truth. (<The Coworker>, 353/361)


나는 나를 안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심보가 고약한 사람인지, 소심하게 복수하는 사람인지, 이중적인 사람인지에 대해서, 내가 제일 잘 안다.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다. 이런 나를, 내가 이상화하는 그 사람이 사랑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말할 때, 사랑을 고백할 때, 그 이야기는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믿을 수가 없다. 그 사람이 나라니. 그 사람이, 괜찮은 바로 그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 나라니, 당최 믿을 수가 없다. 그 말을 믿을 수 없을 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뭘까. 그가 '실제'의 나를 모르기 때문에 나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 잠깐, 본질과 정체성의 문제에 대해 논할 수 있지만, 이 글은 핑크 무드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생략) 나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그 엄청난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그가 나를 사랑하는 거라고 '짐작해' 버리는 것이다.










『The Love hypothesis』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잦은 인용 송구합니다ㅋㅋ 제가 계속 읽고 있는 책이 이 책입니다)



올리브는 애덤의 베프 홀든 교수를 통해 애덤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fake relationship의 상황에서 애덤이 예전부터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말에 올리브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같은 과에 속한, 애덤이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너(올리브)와 애덤이 사귀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고 홀든이 말한다. 애덤에 대한 호감이 점점 커져가는 걸 어렴픗이 느끼고 있던 올리브.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서로의 필요를 위해 사귀는 '척' 할 뿐인데, 그가 예전부터 짝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고? 그랬다면 그 사람은 내가 아니야. 홀든이 말했던, 같은 과의 'amazing girl'은 내가 아니야. 내가 될리 없잖아. 그럴 리 없잖아.

이건 자존감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다. 그런 사람, 스스로에 대해 만족하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사랑을 내어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을 때, 내가 그를 이상화시키고 있는 그 조건에서,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건 도대체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맡은 일에 진지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랑의 일은 다르다.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상화 때문에 그와 나와의 간극은 더 멀어진다. 그는 아름답고 나는 평범하다. 그는 멋져 보이고 나는 초라해 보인다. 그는 완벽해 보이고 나는 실수투성이로 보인다. 그러니 김수희가 노래한 거 아닌가.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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