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걸 너무 좋아하는)사람이 즐겨보는 유튜브는 <언더스탠딩: 세상의 모든 지식>이다. 아는 목소리네? 하고 물어보니 연세대 서은국 교수란다. 유퀴즈에 나오셨을 때 재미있게 봤던지라 뒷부분을 같이 시청했다.
외향성의 사람들이 내향성의 사람들보다 '전반적으로' 행복하다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신기하다. 오지랖이 독불장군보다 낫다는 건데, 그걸 극단적인 경우를 들어 설명하자면 금주, 금연 안 하고 식단 조절 안 하더라도 친구들과 잘 지내는 사람이 건강 요법에 충실한 고립된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은 항상 흥미롭다.
나는, 나를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향이 변하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지금의 내 모습이 어릴 때의 나와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 나름대로 노력하는 것. 그런 성향, 태도가 나의 일부이다.
만약 어떤 자리에서 내가 말이 없고 조용하다면 그건 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그 자리가 불편하거나 답답해서가 아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자기소개 시간에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이런 친구들이 '있었다'가 아니라 '많았다'. "처음에 사람을 만났을 때는 친해지기가 힘들고 어색해 하지만, 친해진 이후에는 말을 잘한다(대화를 주도한다)" 아... 친해진 이후에 친해진 사람과 대화가 어려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요는 친하지 않을 때의 대화다. 친하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 친밀하지 않은 사람과의 의사소통. 내가 생각하기에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의 차이점은 여기다. '잘 모르는, 친하지 않는' 사람과의 첫 번째 접촉에 어느 정도의 주도성을 갖는가.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가. 얼마만큼 불편해하는가.
큰아이가 알려준 재미있는, 내게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다. 친구 사이인 A(외향적)와 B(내향적)가 만났다. 둘은 맛있게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 B가 A에게 말한다.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 나 올영(올리브영) 들렸다 갈게. A가 말한다. 아, 그래? 나도 뭐 살 거 있을려나? 그래, 같이 가자. B의 속마음. (아... 그게 아닌데....) 나는 처음에 그게 무슨 이야기인줄 몰랐다. 왜냐하면 나는, 외향적인 나는 A처럼 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급한 일이 없고, 살 물건도 없지만, 기꺼이 B와 함께 올영에 갈 것이다. 하지만, B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같이 가자, 는 말이 아니라, 여기에서 그만 헤어지자는 말이었던 것.
어제 서은국 교수는 외향적인 사람에게 그런 것처럼 내향적인 사람에게도 가장 큰 자원(기쁨)은 사람이라 했다. 다만 내향적인 사람은 인간관계에 투자할 수 있는 에너지 자체가 '적다'는 것. 일주일에 6명을 만나도 피곤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틀 연속 약속이 있을 때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은 소설을 쓰는 것이고, 그건 혼자 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서 만약 혼자인 자신을 견뎌낼 수 없다면 그 일의 성공 또한 불투명했을 것이다. 달리기를 말하면서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It might be a little silly for someone getting to be my age to put this into words, but I just want to make sure I get the facts down clearly: I'm the kind of person who likes to be by himself. To put a finer point on it, I'm the type of person who doesn't find it painful to be alone. If I spening an hour or two every day runnning alone, not speaking to anyone, as well as four or five hours alone at my desk, to be neither difficult nor borning. I've had this tendency ever since I was young...(15p)
I'm the kind of person who likes to be by himself. ... ...
이제는 이런 사람들이 많아졌다. 흔해졌다. 유교를 숭상했던 동아시아 고유의 전통 문화와 급속한 경제 발전을 통해 이룩한 초밀집 사회. 이를 구체화한 도시화와 아파트. 나는 이 부분이 우리나라와 일본의 공통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어떤 나라의 사람들보다 국가를, 집단을, 사회를, 외부를 중시하는 문화가 우리나라와 일본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아닌 집단의 부품으로서의 개인. 반드시 인간들 '속'에서, 공동체 내부에서만 존재 가능했던 삶의 양식들. 하지만 바뀌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혼자 먹는 건 '식사'가 아니라 '사료'라고 말했던 철학자가 있었다. 공동체의 파괴와 파편화된 현대 사회를 경고하는 소리가 아무리 높아진다 해도 이런 변화를 막을 수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혼밥은 이제 선택의 자리를 넘어 하나의 풍경이 되어 버렸다.
이제 왔다. 오려고 했던 곳에 드디어 도착했다.
이제는 무라카미와 같은 사람, 혼자 있기를 즐겨하는 사람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혼자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활동이 무궁무진해졌다. 2023년 통계로 1인 가구 수는 782만을 넘어섰고, 1인 가구 비율은 35.5퍼센트에 육박한다.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은 혼자 있어도 되고, 그리고 다른 사람과 만나는 빈도수를 조금 줄여도 문제 될 게 없다.
문제는 혼자 있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접촉면이 줄어들어도 혼자 보내는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 혼자서. 하지만 외향적인 사람들에게는 내향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훨씬 더 넓은 접촉면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떻게 그들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요는 그런 사람을, 내 맘에 맞는 사람을, 나랑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옷은 새 옷이 좋고, 친구는 옛 친구가 좋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 말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린데, 물론 옷은 새 옷이 좋지만, 반드시 옛 친구가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어린이집 친구, 유치원 친구만큼 좋은 친구는 없을 테니 말이다. 나의 고민은 '사람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에 가 있다.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혼자서도 할 수 있는 활동을 시도해 봐야 한다. 목표를 세워 운동하고, 뜨개질에 도전하고, 혹 인테리어나 나만의 정원 꾸미기를 시도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을 권하고 싶다. 책을 읽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책을 읽어서 더 나은 인간이 된다거나 지혜로워진다거나 똑똑해지는 일은 정말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공감 능력이 키워지기도 하지만, 그게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책을 많이 읽어도 무식할 수 있고, 고민 없이 다른 사람의 말을 쉽게 무시하기도 한다. 그러니깐 책읽기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과의 상관관계는 그리 신뢰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책을 읽다 보면, 혼자 그 속으로 여행을 떠나가보면, 저자의 논증과 씨름하다 보면, 덜 외로울 수 있다. 탈출구이며 해방구로써 책이, 책읽기가 작동할 때가 있다. 시간을 잊고 집중하게 된다. 책 속 주인공과 같이 웃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책을 찾게 된다.
넷플릭스 보고, 운동하고, 마실 다니고, 차를 마시고, 멀리 여행을 떠나고 그리고 책을 읽고. 이런 일들로 행복하면 기쁜 일이다. 이런 일들을 혼자 해도 쓸쓸하지 않다면, 무라카미처럼 혼자 있는 시간이 힘들지 않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기쁜 일이다. 하지만, 언제나 곁에 인간을 둘 수 없는 우리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가, 찾아오는 외로움을, 고민을, 난관을 피해가는 길은, 극복이 아니라 피해 가는 길은, 책읽기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항상 필요한, 많이 필요한, 혼자 있을 때 그 혼자 있음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모든 외향인들에게 독서를, 책읽기를 권한다. 확고한 외향인인 나에게도 권한다, 책읽기를.
혼자 책 읽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