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 지하철역에 데려다주고 크린토피아에 바지 맡기고 은행 ATM 들렸다가 새로 생긴 빵집으로 갔다. 아빠 빵 하나, 내 빵 하나씩 사고, 던킨 쿠폰 있어서 도넛 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감기 다 나았나?)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상호대차 해두었던 책 세 권, 두껍고 부담스러우며 어려워 보이는 책 세 권을 들고 엄마에게로 갔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돈 쓰는 일인 우리 엄마가 윤가 체포 직후에 '우리 갈비탕 먹으러 갈래?' 하셔서. 맞아, 저녁에 파티가 어려울 수도 있으니 엄마랑 둘이 파티하자~ 해서 엄마 운동 다녀오신 다음에 둘이 같이 갈비탕을 먹으러 갔다. 밀린 이야기는 끝이 없고. 나는 대학교 3년간 국제 선교 단체에서 활동했고, 7-8개월 총학을 드나들었는데, 내 친구를 모두 아는 엄마는 이 친구들이랑 저 친구들을 자꾸 헷갈리시면서, '걔(A그룹)는 왔는데 걔(B그룹)는 안 왔더냐'고 물어보셨다. 안 왔다고, 걔는 안 왔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스스로 정치에 과몰입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사건 중의 사건인 '비상계엄' 이후 더 과몰입하는 거 아닌가 싶어, 맨날 자신을 다독였더란다.
그래도, 그럼에도. 정치는 무관심할 영역이 아니다. 내 삶은 모두 다 '사람들이 욕하는 국회의원'과 전 국민이 씹어대는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윤가가 예산을 반으로 잘라 먹어서, 올해 취업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윤가 체포할 때, 동원되었던 군인 어머니가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거기서 방패막이로 쓰냐!' 할 때 그것 역시 내 일인데, 작은애 입영 관련 건강 검진 통보를 받은 이후이니 더욱 그렇다. 5-6년 전인데 교회의 권사님들이 나라에서 받는 거 다 '박근혜'가 주는 거라고 하셔서. 하아. 박근혜 정부는 그 정책을 이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틀을 만든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이고, 구체화시킨건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 누구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그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그게 어디에서 오는지도 모르고.
건강한 보수는 지금 공중분해 되고 재편되어서야 탄생할 수 있다고 보지만,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내란 세력들이 쉽게 정권을 내놓지는 않을 테고, 이쪽은 이쪽대로 저쪽은 저쪽대로 바빠질 전망이다. 그 한쪽이 내란 정당인데도 그러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제는 참말로 기뻤고, 즐거웠다. 갈 길은 멀겠지만 기록으로 남겨둔다. 나도 오늘의 내 몫을 해야지, 밑도 끝도 없이 착한 결심을 하게 된다. 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