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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지난주부터였다. 권력과 공간의 관계. 권력이 공간에 미치는 영향등에 대해 혼자 생각하게 됐다.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크기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차지한 공간, 내가 점유한 공간은 교장쌤보다 30% 더 넓고, 교감쌤의 6배, 교무부장쌤의 8배 정도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정도의 권력을 소유한 건 아니니 말이다. 권력이 공간의 넓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는 뭘까.

난데없이 파친코의 배우 김민하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주인공 선자를 설명하던 중이었는데, 세련된 발음으로, 자연스러운 어조로 김민하가 말했다. "...she is fragile and also resilient" 귀에 꽂힌 건 fragile. 부서지기 쉬운, 손상되기 쉬운, 취약한.

내내 공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fragile이라는 단어가 꽂히니 이 단어를 내가 처한 상황에 집어 넣게 되었고, 이걸 공간의 문제로 치환시키자 하니 '방해받지 않는, 독립된'에 닿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 도착한 곳은 '공유하지 않음'이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교장쌤의 공간을 잠시 공유하겠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공실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공유한다는 건 이전 거주자(?) 입장에서는 침범이기에 결국 '공유'는 '사적인 공간'의 침해를 뜻한다. 권력이 없는 자는, 권리가 없는 자는 자신의 공간을 '공유'해야만 한다.

지속적으로 공유를 권고받았던 나는, 드디어 공유의 최극단을 지시받는다. 이동, 이주, 이사. 그렇게 나는, 우리는, 나와 우리의 그 무엇들은 퇴출을 명받아 이사를 감행한다. 그 와중에 임시조처의 임시변통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그렇게 힘없는 한 명의 개인인 나는 이사와 이사, 이사 다음 이사, 연속이사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제 생각은 공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내 생각은 이사에 고정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얼마만큼의 책이 필요한가. 나는 얼마만큼의 연필이 필요한가. 나는 얼마만큼의 노트가 필요한가. 꼭 필요한 건 무엇인가. 지금 바로 필요하지 않아서 놓고 갈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언제 필요할지 알 수 없는 물건을 꼭 가지고 가야하는가. 두고 가는 물건은 앞으로도 필요하지 않다는 뜻인가. 노마드의 삶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생필품'의 문제. 어디까지가 생필품인가. 나는 무엇이 필요한가.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요는 이번주 내내 이사와 청소와 정리와 정돈으로 내내 피곤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쉬는 시간 종은 빠짐없이 울리고, 나는 버섯책을, 섹스책을, 스트라우트책을 차분히 읽어나갔다.











10월의 어떤 날들이 그렇게 지나갔다. 시간이 나면 도전하고 싶은 책은 이 책이다. 푸코의 『권력과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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