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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님의 서재
  • 핀란드 신화
  • 엘리아스 뢴로트
  • 24,300원 (10%↓1,350)
  • 2026-09-07
  • : 3,025
흔히 핀란드를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와 같이 북유럽으로 묶지만, 사실 핀란드는 이들과 엄연히 다른 언어와 민족적 계보를 지닌 나라다. 신화 또한 마찬가지. 핀란드 신화의 세계관은 우리가 북유럽 신화에서 연상하는 오딘이나 토르, 로키와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이 책은 부제 <칼레발라: 노래로 싸우는 영웅들>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칼레발라>는 19세기 의사였던 엘리아스 뢴로트가 핀란드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민간에 전해지던 구전시를 모아 하나의 서사시로 엮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칼레발라>가 독특한 점은 영웅들이 무력만으로 싸우지 않고, 노래하고 주문을 외우며 마법을 펼친다는 점이다. 신들 역시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보다 기도에 응답하여 자연을 움직이는 형태로만 서사에 개입한다.

<칼레발라>의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베이네뫼이넨’이다. 그런데 영웅이 (전사가 아닌) 음유시인이라는 설정도 범상치 않고, 늙은 현자의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더욱 이채롭다. 이는 어쩌면 사물의 근원을 알고 노래로 전하는 것이 곧 진정한 힘이라는 핀란드 신화 고유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그러면서도 늙은 외모 때문에 번번이 구혼에 실패하는 걸 보면 위대한 지혜를 지닌 인물도 사랑 앞에서 굴욕을 겪는다는 점이 은근히 현실적이라 웃음이 났다.

여성 인물들도 흥미롭게 그려진다. 특히 북부 포욜라를 다스리는 마녀 ‘로우히’가 가장 눈에 띈다. 남부의 영웅들이 포욜라에 맞서고 정복하려 할 때, 로우히는 딸의 결혼을 통해 풍요로운 보물을 얻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강력한 마법으로 그들을 물리쳐낸다. 상대적으로 척박한 북부 지방의 지배자이자 여성으로서 자신의 땅과 힘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핀란드의 찬란한 자연 역시 <칼레발라>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짐승을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고 열매를 채집하며 금속을 다루는 과거 핀란드 사람들의 일상이 이야기에 녹아 있다. 긴 겨울과 눈 많은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스키와 썰매 같은 도구가 등장하는 것도 소소하게 재미있었다. 타 문화권에서 높이 숭배되곤 하는 농경의 신보다 숲과 바다의 신들이 더 자주 등장하는 것도 핀란드 특유의 자연이 미친 영향일지 모른다.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는 독특한 문장의 리듬을 느끼는 것이다. 인물들이 서로 같은 내용의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며 문장이 조금씩 변형되고, 여러 번 실패한 뒤에 옳은 답을 찾아나가는 구조가 반복된다. 비유하자면 마치 ‘금도끼 은도끼’ 같은 전개 방식이랄까. 처음엔 장황한 횡설수설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구전시를 정리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됐다. 아마 청자의 기억을 돕고 반응을 고조시키면서도 점차 의미를 쌓아나가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핀란드 신화를 오늘날에도 읽어야 할 이유를 찾는다면 무엇일까. 핀란드인의 정체성을 형성한 문화적 자산이자 톨킨에게 영감을 주어 현대 판타지 문학의 뿌리가 되었다는 역사적 의의는 분명 빼놓을 수 없다. 다만 작품 바깥뿐만 아니라 이야기 그 자체가 전하는 의미 역시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력보다 지혜의 노래로 대결하는 서사. 자연의 이치와 질서를 이해하고 다양한 생물의 도움을 구하며 공존하는 생활. 힘센 것만이 살아남는다고 믿기 쉬운 세상에서도 어쩌면 진정 강한 것은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삶의 방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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