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령 작가는 최근 국내 문학상에서 가장 돋보이는 성취를 거둔 작가로 반드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이름이다. 각각 두 차례의 젊은작가상과 이상문학상 수상에 이어 최근의 이효석문학상까지. 『대부호』는 등단 5년여 만에 어느덧 독보적으로 자리매김한 작가의 현현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소설집이다.
성혜령 작가의 스타일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몇 년 전부터 유행한 인터넷 밈, 가짜 광기와 진짜 광기가 떠올랐다. 극한의 상황에서 누가 봐도 미친 사람처럼 과장되게 행동하는 것이 가짜 광기라면, 진짜 광기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행동해 오히려 무섭게 느껴지는 경지라고.
『대부호』는 단연 ‘진짜 광기’가 감돌고 있는 작품이다. 인물들은 겉으로는 차분하지만 어느 순간 상식의 선을 넘어 돌아버린 모습을 내비친다. 오래전 자신을 내친 언니 앞에서 온 힘을 다해 웃는 얼굴로 상처를 드러내거나(<하악>), 사기범의 아내 곁에서 보살 노릇을 하는 여자처럼(<원경>). 네가 뭘 아느냐며 공격받았을 때 맞서 대거리하는 대신 조용히 누군가를 찾아가 저주하는 편(<나방파리>)이 훨씬 섬뜩하지 않은가.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지난 잘못의 결과를 알게 되니까.
성혜령 작가가 그리는 ‘진짜 광기’의 원류에는 나의 고통만 예민하게 여기고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지 않는 마음이 흐르고 있다. <베인>에서 직접적으로 말하듯, '눈앞에서 누가 총을 맞고 쓰러져도 종이에 베인 내 손가락 상처가 더 아픈 게 인간'이라는 문제에서 이야기가 출발하는 것. 단편 속 인물들은 종종 힘들이지 않고 타인을 외면하려 한다. 고통을 삼키는 모습을 ‘굴곡 없는 얼굴’이라 단순화하고(<운석>), 통제할 수 있는 삶이 아니면 쉽게 포기해버리길 택한다(<원경>). 더러는 진짜 아픈 것이 뭔지 모른다고(<나방파리>), 네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겠다고(<베인>) 폐부를 찔러 타격하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타인의 고통을 전혀 모르는 소위 ‘빌런’인 것은 아니다. <대부호>의 ‘나’가 영어 면접에서 얼떨결에 이야기하듯, 사실 말하지 않는 것도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다만 자신의 고통만을 기억하고 부풀리는 것이 더 쉽고 편하며, 그 너머에 연결된 타인을 들여다보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 멈추고 마는 것일 뿐. 내 생활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혹시 모를 상처를 더 받을 여력이 없기에 구태여 더 애쓰지 않기로 타협하는 것이다. 일종의 경제적 원리가 작동하는 이기심, 곧 ‘경제적 이기심’의 발로인 셈이랄까.
작가는 『대부호』에서 ‘경제적 이기심’으로 무장한 현대인들을 예리하게 포착하며 고통으로 연결된 이해의 범위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솔직히 내가 <대부호>의 주인공이더라도 엄마와 마주앉아 차분히 서로의 속을 내보이는 대화를 이어나갈 자신은 없다. 그리고 비단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얼마만큼 나를 깎아가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일지. 소설에도 분명한 정답은 없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사는 편이 나을까. 그러다가 문득 발 밑의 땅이 꺼지고 구덩이 속에 갇혀버리는 것처럼 서늘한 ‘진짜 광기’가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