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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브리즈의 서재
  •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 홍성욱
  • 15,000원 (750)
  • 2017-03-15
  • : 170

살면서 과학이나 수학과는 늘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 요즘의 과학은 인간과 인간의 소망을 닮은 듯 하면서도 점점 더 비인간적이고 차가운 다른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복잡하고 미묘해서 더 가치 있다고 믿었던 인간의 심리와 행동이 데이터로 손쉽게 환원되는 것을 보며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가져올 앞으로의 미래에도 내가 쓸모 있을지 남몰래 걱정해본 적이 있다. 또 인간을 가장 고귀한 존재라고 믿게 해주었던 의식에 대한 뇌 과학자의 설명을 들었을 때는 허탈하고 쓸쓸한 기분도 들었었다. 새로운 발견과 기술의 도약에 대한 소식은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데, 나는 아무리 읽어봐도 도무지 뭐가 뭔지 제대로 알아 듣는 것조차 벅찰 만큼 오늘 날의 나에게 과학은 낯선 얼굴과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과학에 의해 세상이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바뀐다는 맥락은 그럭저럭 간신히 이해하며 평소처럼 지내는데, 동생이 신입생 때 받아와 책장에 꽂아둔 듯한 이 책이 눈에 띄었다. 2009년 대한민국 학술원 선정 기초학문육성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데다가, 그새 엄청나게 바뀐 오늘의 과학 문화를 반영하기 위해선 2017년에 다시 개정판으로 출간된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낯설게만 느껴졌던 과학의 얼굴이 더욱 인간적으로 느껴졌음은 물론, 문화로서의 과학이 그동안 우리의 역사와 사회, 여러 학문 및 예술과 어떻게 함께 어우러져 왔는지를 새로이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과학과 인문학, 예술, 건축, 언어, 젠더, 법, 인권, 과학박물관의 상호작용과 교류, 융합의 과정과 역사를 풍부하게 다루고 있다. 내 생각에 과학과는 가장 연관성이 적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예술과 언어 영역에서도 과학과 매우 유사하거나 공통된 지점이 많았다. 

저자는 제 2장 <과학과 예술>에서 과학적 상상력과 창의성, 그리고 예술적 상상력과 창의성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밀접하게 교류, 융합해 왔으며 많은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고 밝힌다. 예술가가 자신의 경계를 넘고 다양한 시도를 하듯이 과학자들도 단순한 논리적 추론이나 실증에만 국한되지 않은 과학적 상상력과 직관이 필요하다. 미술작품에서처럼 과학실험과 이론을 통해서도 아름다움과 미적인 요소를 찾아 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말도 인상 깊었다.

제 4장 <과학과 언어>에서는 언어 역시 그동안 비과학적이고 모호하다는 이유를 들어 수학이나 논리보다 부정확한 것이라고 여겨졌지만, 사실 과학적 발견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실체를 부여하고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언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은 나머지 장에서도 과학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의 문화, 문학, 예술, 법, 생활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융합하며 존재해 나갈 것이라 단언한다. 따라서 과학을 하나의 중요한 문화 체계로 인식하고 다른 문화와 상호작용해 온 과정을 돌아봄으로써 미래를 그려나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일깨워 주고 있다. 그동안 과학이 거쳐온 다채로운 상호작용과 접점을 이해하고, 문화로서의 과학을 바로 보도록 새로운 통찰을 주는 책이었다. 

덧붙여 저자가 책에서 강조했듯이 과학이 낯설게 느껴지는 만큼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이 갈 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 혹은 과학자들이 인간의 예술과 법, 정치, 인권과 같은 분야에 가치 판단을 내려줄 수는 없기에 나처럼 비전문가인 시민들 역시 과학 문화에 익숙해지고, 어려워도 늘 관심을 가지고 배워야 한다. 어렵고 복잡한 것을 최대한 알기 쉽게, 그리고 왜곡 없이 새로운 기술과 발전이 인류의 문화와 사회, 정신에 가져올 중대한 변화와 의의를 전달하려는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앞으로도 과학이 예술, 문화,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역동적인 현장을 포착한 이런 유익한 책들이 더 많이 출간되고,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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