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 책 속에서 다시 만난 나의 옛 답사지들
책 소개
* 제목 : 아는 만큼 보인다
* 부제 : 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지은이 : 유홍준
* 출판사 : 창비
* 출간일 : 2023년 6월 9일
* 분량 : 416쪽
* 장르 : 인문기행, 역사문화 답사기
* 작품 특징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출간 30주년을 기념하여 기존 시리즈에서 대표적인 답사 글 14편을 선정하고, 내용을 수정하고 재구성한 선집
* 구성 : 제1부 「사랑하면 알게 된다」에서는 자연풍광과 문화유산의 조화를, 제2부 「검이불루 화이불치」에서는 한국 문화유산에 담긴 미학을 다룬다.
목차
제1부 사랑하면 알게 된다
1. 영암 도갑사, 강진 무위사
2. 안동 병산서원
3. 담양 소쇄원, 옛 정자와 원림
4. 청풍 한벽루
5. 아우라지강 정선 아리랑, 정선 정암사
6. 설악산 진전사터, 선림원터
7. 한라산 영실
제2부 검이불루 화이불치
8. 영주 부석사
9. 경주 대왕암, 감은사터
10. 경주 불국사
11. 서산 마애불
12. 부여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터
13. 서울 종묘
14. 서울 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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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는 만큼 보인다, 그러니까 내가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유홍준 청장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읽어온 책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출간된 시리즈 전권을 읽었으니, 내 독서 인생에서 유홍준 청장님이라는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우리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 주고, 답사의 길을 안내하고 밝혀 주신 분이다.
이분을 ‘유홍준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좋겠지만, 문화재청장을 지내셨던 분이라 내게는 ‘유홍준 청장님’이라는 호칭이 더 친근하고 좋다. 오랫동안 책을 통해 만나온 분이니 마음속에서는 이미 낯익은 어른이 된 셈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지난 30년간 펴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대표적인 글을 골라 엮은 책이다. 새로운 답사기라기보다는 그동안의 답사를 한 권에 정리한 선집에 가깝다.
이번 책에 수록된 14편의 답사 글 가운데 내가 직접 가본 답사지는 여덟 곳이다. 그중 서울의 종묘와 창덕궁은 생략하고, 담양 소쇄원, 정선 아우라지, 한라산 영실, 영주 부석사, 경주 불국사, 부여까지 여섯 곳에 대한 나의 답사 경험과 감상을 적어 보려 한다.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유홍준 청장님은 참 감탄도 잘하신다. 절 하나를 보아도 감탄하고, 정자 하나를 보아도 감탄하고, 산과 강을 바라보면서도 온갖 아름다운 말들을 쏟아낸다. 미술사학자이자 답사기의 저자이니 그만큼 많이 알고, 많이 보고, 깊이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책을 팔아야 하는 작가로서 독자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솜씨도 한몫하겠지만.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정도의 감흥까지는 느끼지 못하는 곳이 많았다.
책에 소개된 곳들이 아름답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가 보면 좋은 곳들이고, 그중에는 내 마음에 깊이 남아 있는 장소도 여럿이다. 영실이나 부석사처럼 청장님의 감탄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곳도 있다. 다만 저자가 감격하는 만큼 나 역시 똑같이 감동하느냐고 묻는다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책 제목부터가 『아는 만큼 보인다』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니 그만큼 보이지도 않고, 감동도 덜한 것이겠지.
참으로 절묘한 말이다. 감동을 덜 받은 독자에게 스스로 공부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만드니 말이다. 사람을 은근히 기죽이는 제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화유산에 대한 감동이 반드시 지식의 양에 비례하는 것일까.
사람마다 살아온 경험과 관심이 다르고, 같은 장소에서도 저마다 다른 것을 보고 느낀다. 청장님이 건축적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곳에서 나는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리고, 미술사적 가치를 설명하는 유적에서 역사 속 사람들의 삶과 고통을 생각하기도 한다.
더구나 책의 제1부 제목은 「사랑하면 알게 된다」다.
아는 것이 먼저인지,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인지. 어쩌면 이 둘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우리의 눈을 넓혀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다녀온 여섯 곳을 책 속에서 다시 만나니 오래전 기억들이 하나둘 되살아난다.
2. 담양 소쇄원, 빗속에서 만난 옛 정원
2011년 5월,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담양을 여행했다. 소쇄원에서 시작하여 죽녹원과 관방제림을 둘러보고, 영산강의 시원이라는 용소까지 찾아갔다.
소쇄원에서의 기억은 빗소리와 함께 남아 있다. 비가 내려 운치가 더했던 옛 정원, 아이들이 부채를 만들고 봉숭아 물을 들이던 모습, 한옥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경험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죽녹원에서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대나무 숲을 걸었다. 일본 교토 아라시야마의 치쿠린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었다. 한국의 치쿠린이라고나 할까. 관방제림에서는 자전거를 탔고, 담양의 명물 떡갈비도 뱃속에 투척했다.
유홍준 청장님은 소쇄원에서 조선 선비들의 자연관과 정원에 담긴 미학을 읽어낸다. 자연을 억지로 다듬기보다 지형과 물길을 살려 건물과 정자를 배치한 공간에서 옛사람들의 안목을 발견한다.
나 역시 소쇄원이 아름답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당시의 나는 제월당과 광풍각의 건축적 의미나 조선 선비들의 자연관까지 깊이 헤아리지는 못했다. 그저 비 오는 풍경이 참 좋았고,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을 뿐이다.
세월이 흘러 사진을 다시 보니 정원의 건축물보다 부채를 만들고 봉숭아 물을 들이던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더 정겹다.
유홍준 청장님이 소쇄원에서 옛 선비들의 정신과 건축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면, 나는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을 얻었다.
내게 소쇄원은 아름다운 문화유산이면서, 동시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우리 가족의 한 시절이기도 하다.
3. 정선 아우라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곳
아우라지. 아우라지.
나는 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왜 그런지는 나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저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은 이상향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2011년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2박 3일간 강원도를 여행했다. 마지막 날 구절리역에서 가족과 함께 레일바이크를 타고 아우라지로 향했다.
시원한 강원도 산골짜기, 굽이굽이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철길 위를 달리던 경험은 지금도 생생하다. 울창한 산과 맑은 강물, 어두운 터널을 지나 다시 펼쳐지는 풍경이 참으로 좋았다. 정선 동광식당에서 유명한 콧등치기도 먹었다.
이듬해에는 섬진강 레일바이크도 타 보았지만, 정선에서 느꼈던 재미에는 미치지 못했다. 너무 단조롭고 지루했다. 내게 레일바이크라면 역시 정선이다.
유홍준 청장님은 아우라지의 풍경에서 정선아리랑과 강원도 산골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읽어낸다. 강과 산,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질 때 풍경은 단순한 자연을 넘어 문화가 된다.
하지만 내게 아우라지란 그런 설명보다 먼저 다가오는 무엇이 있다.
정선아리랑의 애잔한 정서가 깃든 이름 때문일까. 아니면 아이들이 어렸던 시절 가족과 함께 달렸던 철길의 기억 때문일까.
아마 여러 감정이 한데 어우러져 있을 것이다.
아우라지에 관해서는 구구절절 해설을 늘어놓고 싶지 않다.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어쩌면 어떤 장소는 그 역사와 문화를 충분히 알기 전부터 마음속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내게 아우라지가 바로 그런 곳이다.
4. 한라산 영실, 백록담에 오르지 않아도 좋다
한라산은 여러 차례 올랐지만, 풍광만큼은 영실코스를 으뜸으로 꼽고 싶다. 백록담 정상에는 오르지 못하는 코스지만, 영실기암과 오백나한, 선작지왓의 드넓은 고산 초원, 웅장한 남벽의 풍광은 다른 어느 코스에도 뒤지지 않는다.
유홍준 청장님이 영실의 아름다움을 극찬하는 대목에는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번은 아내와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하루에 한라산을 두 번 오른 적도 있다.
아내가 정상 등반은 어렵겠다고 하여 혼자 관음사코스로 올라가 백록담을 거쳐 성판악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내려오고 나니 아내가 아쉬웠던 모양이다. 조금 쉬운 코스라도 가 보고 싶다고 하여 다시 영실로 향했다.
관음사에서 올라 성판악으로 내려온 뒤 다시 영실까지 올랐으니, 그날 하루 한라산에서 걸은 거리가 약 30km에 달했다. 나도 참 어지간히 산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영실은 그만큼 여러 번 찾았지만, 정작 진달래가 피어나는 봄철의 풍경은 아직 보지 못했다.
청장님이 영실 편에 붙인 제목도 「진달랩니까, 철쭉입니까」다. 여러 차례 영실을 찾고도 정작 꽃이 피는 계절의 풍경은 놓쳤으니, 언젠가는 꼭 그 시기에 다시 올라가 보고 싶다.
영실의 아름다움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병풍처럼 펼쳐진 기암과 그 아래의 푸른 초원, 수시로 몰려왔다가 걷히는 구름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이 만들어낸 풍광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아름다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면 더 많은 것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영실에서는 굳이 많이 알지 못해도 감동이 밀려온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때로는 그저 눈앞에 펼쳐진 풍경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곳이다.
5. 영주 부석사, 이만한 명당이 또 있을까
2013년 11월 10일부터 12일까지 가족과 함께 단양과 영주를 여행하면서 부석사에 들렀다. 이튿날에는 소백산 다리안코스로 비로봉까지 왕복 등산을 했다.
부석사는 여러모로 인상적인 절이지만, 내게 가장 깊이 남은 것은 절이 자리 잡은 위치다.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배치된 전각을 지나 무량수전 앞에 서면 시야가 탁 트인다. 멀리 겹겹이 이어지는 산줄기와 그 너머로 저무는 해를 바라보는 풍광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특히 해 질 무렵이 압권이었다. 붉은 해가 먼 산 너머로 내려앉고, 능선들이 하나둘 어둠에 잠기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절집의 앉은자리가 끝내주는 명당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풍수지리를 제대로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절터 하나는 기막히게 잡았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삼국유사』에 전하는 의상과 선묘의 설화가 떠오른다.
의상이 화엄의 가르침을 펼치려던 곳에는 이미 절이 있었고, 그곳에 500명의 무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자 선묘가 거대한 바위로 그들을 위협하여 내쫓았고, 의상이 그 절에 들어가 화엄경을 강의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부석사에 와 보니 왜 그 사람들을 쫓아냈는지 알겠다.
이만한 명당을 그냥 두고 지나칠 수는 없었을 테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설화에 대한 농담이다. 그러나 이 기록만 놓고 보면 의상은 악덕 부동산 개발업자요, 선묘는 강제 이주 용역업자나 다름없다.
위대한 고승의 창건 설화에서 정작 그곳을 떠나야 했던 500명의 목소리는 사라져 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고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별도의 감상문에서 길게 다룬 바 있으니 여기서는 더 따지지 않겠다.
설화에 대한 비판과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별개의 문제다.
청장님이 부석사의 입지와 건축을 그토록 칭찬하는 이유를 이곳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산을 좋아하고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부석사에서 바라본 저녁 풍경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아무래도 설화 속 의상대사는 부동산을 보는 안목 하나만큼은 탁월했던 모양이다.
6. 경주 불국사, 천년 고찰에서 만난 아들놈의 역사 체험
2016년 5월 15일, 처형네 식구들과 함께한 가족여행에서 불국사를 찾았다.
석가탑과 다보탑, 청운교와 백운교, 대웅전과 극락전 등 불국사의 건축과 석조유물은 이미 익숙한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다시 떠오른 것은 뜻밖에도 불국사의 옛 뒷간이었다.
유홍준 청장님이 「불국사 안마당에는 꽃밭이 없습니다」에서 언급한 그 화장실 유구 말이다.
당시 옛 뒷간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놓은 곳에서 아들 녀석이 기가 막힌 행동을 했다. 그 위에 쪼그리고 앉아 진짜로 엉덩이까지 까고 똥을 누는 시늉을 한 것이다.
아이고, 이놈아!
신라시대 생활문화를 체험하라니까 이놈은 아주 철저하게 체험한 셈이다.
남들은 천년 전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는데, 우리 아들놈은 직접 몸으로 재현해 버렸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역사 체험이었다.
유홍준 청장님은 불국사를 설명하면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건축의 질서와 배치, 공간에 담긴 뜻을 짚어낸다. 불국사를 여러 번 가 보았다고 해서 그 가치를 모두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화유산이란 위대한 예술품인 동시에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기도 하다. 불국사의 아름다운 석탑만큼이나 옛 뒷간 같은 생활 유구도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 점에서 아들놈의 장난도 아주 엉뚱한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석가탑과 다보탑 못지않게 오래 기억될 불국사의 한 장면을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7. 부여, 백제의 옛 도읍에서 들려온 망국의 함성
부여는 내 고향 보령과 바로 이웃한 곳이지만, 지금 살고 있는 대전에서도 가까워 자주 찾았다. 백제의 옛 도읍이라는 역사적 의미뿐 아니라,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함께 다녔던 친숙한 여행지이기도 하다.
아들이 유모차를 타던 시절부터 궁남지 연꽃축제를 찾았다. 아이들이 조금 자란 뒤에는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부소산, 낙화암, 고란사를 둘러보았다. 규암의 자온대에도 가보고, 구드래나루터에서는 배를 타고 백마강을 유람했다.
능산리 고분군(현 부여 왕릉원)에서는 사비시대 백제 왕들을 기리는 제향도 구경했다. 그곳에서 백제 왕들에게 올렸던 제삿밥으로 국수까지 얻어먹었으니, 왕의 제사에 참석해 음복까지 한 셈이다.
충화면의 서동요 세트장에서는 아이들과 옛 생활상을 체험했고, 국립부여박물관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를 감상했다.
그러나 부여에서의 기억은 가족여행에만 머물지 않는다.
부여의 산길도 여러 차례 걸었다. 부소산과 금성산을 잇는 트레킹을 했고, 올해 9월 5일에는 오석산과 월명산, 능산리 고분군을 잇는 길을 걸었다.
오석산과 월명산에서는 옛 청마산성의 흔적을 찾아보았지만, 오랜 세월에 묻혀 산성의 자취를 알아보기조차 쉽지 않았다. 부여 나성에도 올라 사비의 옛 도읍을 지키던 방어시설을 살펴보았다.
나성에 올라 너른 부여벌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평화로운 들판이지만, 내 눈앞에는 서기 660년 백제 최후의 날들이 펼쳐지는 듯했다.
신라군이 벌떼처럼 밀려오는 함성, 무너져가는 사비성의 피울음이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한때 찬란했던 왕국이 무너지고, 그곳에 살던 백성들이 겪었을 비극을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나는 뼛속까지 충청도 사람이다.
백제의 옛 땅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스스로 백제인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천삼백 년도 더 지난 일이건만, 그 들판을 바라보고 있자니 망국의 설움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유홍준 청장님은 부여의 유적에서 백제문화의 아름다움과 망국의 역사를 읽어낸다. 나 역시 부여를 찾을 때마다 그 역사에 마음이 움직인다.
그러나 내게 부여는 책에서 배운 백제의 역사만으로 이루어진 곳이 아니다.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남아 있는 가족여행의 장소이면서, 산성과 옛 성벽을 걸으며 사라진 왕국의 운명을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부여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다른 답사지에서 느끼는 감정과는 조금 다르다.
소쇄원에서는 가족의 추억이 먼저 떠올랐고, 영실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그러나 부여에서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땅의 역사가 가슴 깊이 파고든다.
백제가 사비에 도읍을 정한 지 천오백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내게 그 역사는 먼 옛날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성에서 내려다본 너른 부여벌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백제의 마지막 함성과 함께 남아 있다.
8.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하면 알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를 덮으며 다시 생각해 본다.
유홍준 청장님은 30년 넘도록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그 속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일깨워 주셨다. 나 역시 그 책들을 읽으며 여러 곳을 찾아다녔고, 우리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눈을 조금씩 넓혀 왔다.
그런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더 있다.
아무리 같은 곳을 찾아가도 사람마다 보고 느끼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비 오는 소쇄원에서는 가족의 추억이 남았고, 아우라지는 그 이름만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영실에서는 자연의 장엄함에 감탄했고, 부석사에서는 아름다운 절터와 함께 설화 속에서 쫓겨난 500명을 떠올렸다. 불국사에서는 아들놈의 장난이 웃음으로 남았으며, 부여에서는 사라진 백제의 역사가 가슴을 울렸다.
같은 문화유산이라도 사람마다 그곳에 쌓아놓은 기억과 감정이 다르다.
청장님의 해설은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 그러나 그분이 감탄하는 만큼 나도 감탄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분이 발견한 의미만이 그 문화유산의 전부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30년 넘게 책을 읽어온 지금은 청장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때로는 의문을 품게 된다.
부석사의 창건 설화에서 나는 선묘의 숭고한 헌신보다 쫓겨난 500명의 처지가 궁금했다. 『삼국유사』의 표훈대덕 설화를 읽으면서는 불교가 신라 사회에 수용되고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신통력과 기복 신앙이 어떻게 결합했는지를 생각했다.
이런 의문이 든다고 해서 유홍준 청장님에 대한 존경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분의 책을 통해 배운 지식과 쌓아온 답사 경험이 이제는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바탕이 된 것이 아닐까.
책의 제목은 『아는 만큼 보인다』다.
처음에는 이 말이 사람을 은근히 기죽인다고 생각했다. 청장님처럼 감탄하지 못하면 내가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 탓인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책의 제1부 제목은 「사랑하면 알게 된다」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 말도 참으로 옳다.
나는 아우라지를 왜 그토록 좋아하는지 아직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우라지가 좋아서 그곳을 기억하고, 정선아리랑에 관심을 갖고, 다시 찾아가고 싶은 마음을 품는다.
소쇄원도 마찬가지다. 그곳의 건축적 의미를 모두 알지는 못했지만, 비 오는 정원에서 가족과 함께한 시간을 사랑하기에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이 쌓이면 더 알고 싶어지고, 알게 되면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도 하나둘 눈에 들어올 것이다.
결국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다만 한 가지는 덧붙이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맞지만, 살아온 만큼 보이는 것도 있고, 사랑하는 만큼 느끼는 것도 있다.
유홍준 청장님 덕분에 우리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눈을 얻었다면, 그동안 내가 살아온 세월과 경험은 그 눈에 나만의 빛깔을 더해 주었다.
30년 넘게 내 답사의 길을 밝혀 주신 청장님께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그분의 책을 읽고,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다니며, 그 아름다움을 배우고 즐길 것이다.
그러면서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의문을 품고, 또 때로는 내 방식대로 웃어볼 생각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 그리고 살아온 만큼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