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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서재
  • 아는 만큼 보인다 : 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
  • 유홍준
  • 19,800원 (10%↓1,100)
  • 202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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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아들 청탁과 천상계 민원대행업자 표훈대덕

— 『아는 만큼 보인다: 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불국사 안마당에는 꽃밭이 없습니다」에 소개된 『삼국유사』 권2 「기이」 편의 「경덕왕·충담사·표훈대덕」 설화를 읽고

1. 옥경은 여덟 치인데 아들이 없다고?

유홍준의 『아는 만큼 보인다: 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 「불국사 안마당에는 꽃밭이 없습니다」를 읽다가 참으로 기막힌 이야기를 만났다. 일연의 『삼국유사』 권2 「기이」 편에 수록된 「경덕왕·충담사·표훈대덕」 설화다.

이야기는 첫 문장부터 심상치 않다.

경덕왕의 옥경(玉莖)은 길이가 무려 8촌이나 되었는데 아들이 없어서 왕비를 폐했다는 것이다.

아니, 왕의 거시기가 여덟 치라는 사실부터 왜 역사책에 기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누가 측정했으며, 측정할 때는 또 어떤 상황이었는지도 궁금하다. 당시 왕실에는 별의별 일을 다 기록하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더구나 그 크기와 아들을 낳는 일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왕의 생식기 크기가 아무리 크다 한들 그것이 곧 생식 능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아들이 없으니 왕비를 폐했다고 한다.

아들을 낳지 못한 책임은 무조건 여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왕의 몸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은 애초에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던 모양이다.

왕의 거시기는 여덟 치나 된다고 자랑스럽게 적어놓고, 아들이 없는 책임은 왕비에게 떠넘겼으니 참으로 편리한 논리다.

결국 경덕왕은 첫 왕비를 내보내고 만월부인을 새 왕비로 맞아들인다.

그런데 새 왕비를 맞았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왕은 여전히 왕위를 물려줄 아들이 없다는 사실에 안달하고 있었다.

여기서 불교의 고승 표훈대덕이 등장한다.

2. 천상계 출입이 가능한 왕실 민원대행업자

경덕왕은 표훈을 불러 아들을 얻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호소한다.

그러면서 천상의 상제에게 부탁해 아들을 얻게 해달라고 청한다.

이쯤 되면 표훈은 승려라기보다 왕실의 후계자 문제를 해결하는 민원대행업자다.

그런데 이 양반의 능력이 보통이 아니다. 하늘나라를 제집 드나들듯 오갈 수 있다고 한다.

표훈이 천제에게 올라가 왕의 부탁을 전하자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딸은 가능하지만 아들은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민원에 대한 회신이 명확하다. 그런데 경덕왕은 포기하지 않는다.

딸로 태어날 아이를 아들로 바꿔달라고 다시 부탁한다.

표훈은 또 하늘로 올라간다.

요즘으로 치면 한 차례 반려된 민원을 보완해서 다시 제출한 셈이다. 그것도 단순한 재신청이 아니라 태어날 아이의 성별을 바꿔달라는 특례 요청이다.

천제의 두 번째 답변은 더 기가 막히다.

가능하기는 하지만 아들이 태어나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천제는 표훈에게 하늘과 인간 세상을 이웃 마을 드나들듯 왕래하며 천기를 누설했다면서 다시는 오지 말라고 경고한다.

천상계의 출입 권한까지 정지당한 셈이다.

왕의 개인적인 소원을 들어주려다가 하늘나라 출입금지 처분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정말 놀라운 인물은 표훈보다 경덕왕이다.

표훈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천제의 경고를 전하자 왕은 이렇게 말한다.

“나라는 비록 위태하더라도 아들을 얻어 뒤를 잇게 한다면 만족하겠소.”

아니, 이 양반은 대체 어느 나라 왕인가.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데 자기 아들만 얻으면 만족하겠다니!

국왕의 첫 번째 책무는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것 아닌가. 그런데 경덕왕에게는 국가의 안위보다 자기 혈통으로 왕위를 계승하는 일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이 정도면 왕이 아니라 왕실 가문의 사적 이익을 관리하는 집안 어른에 가깝다.

더구나 이미 하늘에서 나라가 위태로워진다고 경고했는데도 아들을 얻겠다고 고집했으니, 나라가 어지러워진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도 분명해 보인다.

3. 여자아이의 놀이가 나라를 망하게 했다고?

결국 만월왕후는 아들을 낳는다.

그 아이가 훗날의 혜공왕이다.

여기까지는 왕실의 아들 얻기 소동이라고 웃어넘길 수도 있겠다. 그런데 설화는 그다음부터 더 황당해진다.

혜공왕은 원래 딸로 태어날 운명이었는데 아들로 바뀌었으므로 어려서부터 여자아이들이 하는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비단주머니를 차고 도사들과 어울려 놀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라에 큰 혼란이 일어나 마침내 혜공왕이 죽임을 당했다고 설명한다.

이건 또 무슨 논리인가?

비단주머니를 좋아하면 나라가 망하는가?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들의 놀이를 즐기면 왕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인가?

옛날 사람들이 남녀의 행동을 엄격하게 구분했다는 사실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런 편견을 나라의 정치적 혼란과 연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혜공왕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고, 귀족들이 권력을 놓고 다투었으며, 여러 차례 반란이 일어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이 복잡한 정치적 혼란을 원래 여자였던 아이가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로 설명해 버린다.

이렇게 되면 왕권을 둘러싼 귀족들의 갈등도, 당시 신라의 정치구조도, 반란을 일으킨 세력들의 책임도 모두 뒷전으로 밀려난다.

오히려 경덕왕이 국가의 안위보다 아들에 집착했다는 이야기는 앞에 떡하니 적어놓고 말이다.

원래 딸이었기 때문에 여성적인 행동을 했고, 그 때문에 나라가 혼란스러워졌다는 식의 설명에는 당시 사회의 남아선호사상과 여성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드러난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경덕왕의 옥경이 여덟 치였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결국 아들의 여성적인 행동을 나라가 어지러워진 원인처럼 서술한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왕실 남성의 생식과 남성성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한 이야기다.

이쯤 되면 왕실의 후계자 문제보다 그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더 궁금해진다.

4. 불교의 고승이 왜 부처님이 아니라 천제를 찾아가는가

그런데 내가 이 설화에서 가장 흥미롭게 생각한 것은 따로 있다.

표훈대덕은 누구인가.

신라 화엄종을 발전시킨 의상의 제자이며, 당대의 이름난 고승이었다. 『삼국유사』에서는 표훈 이후 신라에는 성인이 나오지 않았다고 할 정도다.

그런데 이 위대한 고승이 하는 일을 보자.

왕이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부탁하니 천제에게 올라가 청탁하고, 딸밖에 안 된다고 하자 다시 올라가 성별을 바꿔달라고 부탁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초월적 존재는 부처가 아니라 상제 또는 천제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을 통해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는다고 알고 있는데, 여기서는 천제가 아이의 성별을 결정하고 나라의 운명까지 좌우한다.

도대체 불교와 하늘을 숭배하는 토속 신앙이 어떻게 연결된 것일까?

물론 불교에도 제석천을 비롯한 여러 천신이 등장한다. 그러니 불교 설화에 천제가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교리에 어긋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이야기에서는 불교의 수행과 깨달음보다 초월적 존재의 힘을 빌려 현실의 소원을 이루려는 모습이 훨씬 두드러진다.

내가 여러 종교 가운데 불교를 좋아하는 이유는 스스로 마음을 닦고 깨달음을 얻으라는 가르침 때문이다.

집착을 버리고 욕망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것이 내가 이해하는 불교의 핵심이다.

그런데 경덕왕은 아들을 얻겠다는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표훈은 그 집착을 해결해 주기 위해 하늘나라까지 올라간다.

고승이라면 먼저 왕에게 집착을 내려놓으라고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

천제가 나라가 위태로워진다고 경고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표훈이 그 경고를 왕에게 전하기는 했지만, 애초에 왕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려고 두 번이나 천제를 찾아갔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왕실의 후계자 청탁을 해결하려다가 천상계 출입금지까지 당한 고승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불교의 수행자보다는 뛰어난 신통력을 가진 무속인에 가까운 모습이다.

여기서 문득 얼마 전 같은 책에서 읽었던 부석사 창건 설화가 생각났다.

의상은 화엄경을 강의할 절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선묘가 바위를 띄워 500명을 쫓아낸 덕을 보았다.

그런데 그 의상의 제자인 표훈은 이번에는 왕실의 후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늘나라를 왕래한다.

스승은 부동산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제자는 왕실의 출산 민원을 해결했으니 사제간에 사업 분야가 제법 다양했던 모양이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 두 사람이 그런 일을 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전해지는 설화 속 모습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바로 이 두 설화가 당시의 종교관을 생각하게 만든다.

5. 신라 불교와 토속 신앙의 습합, 그 역사적 한계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미 오랫동안 믿어온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하늘을 숭배하고, 산과 강에 깃든 신령을 섬기며, 초월적인 힘을 빌려 질병을 고치거나 재앙을 피하고 복을 얻으려 했다.

불교가 들어왔다고 해서 이런 신앙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 없었다.

새로운 종교가 뿌리내리려면 기존 사회의 문화와 신앙을 받아들이고 조화를 이루어야 했을 것이다.

불교와 토속 신앙이 결합하는 습합(習合)은 그런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교가 신라 사회에 정착하는 데 기존 신앙과의 융합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한국 불교의 독특한 모습도 형성되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불교의 본래 가르침이 뒷전으로 밀려난 측면이 있었다면 그것은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왕실과 귀족들은 불교를 통해 왕권을 뒷받침하고자 했고, 백성들은 현실의 고통을 덜어줄 신령한 힘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 요구에 부응하는 과정에서 수행과 깨달음보다 기복과 신통력이 강조되는 모습도 나타났을 수 있다.

표훈대덕의 설화는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불교의 고승이 하늘나라를 오르내리며 왕실의 소원을 해결하고, 나라의 운명까지 천제의 결정에 따라 바뀌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다만 역사적 시기는 구분해야 한다.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것은 6세기 법흥왕 때이고, 경덕왕과 표훈의 이야기는 이미 불교가 깊이 뿌리내린 8세기를 배경으로 한다. 게다가 『삼국유사』는 13세기 고려의 승려 일연이 편찬한 책이다.

따라서 이 설화만으로 불교 도입 초기의 실제 모습을 단정할 수는 없다. 오랜 세월 전해진 이야기에 후대의 종교관이 반영되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불교가 신라에 전래되어 왕실 및 토속 신앙과 결합하고,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어떤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불교 자체의 한계가 아니다. 외래 종교인 불교가 신라 사회에 수용되고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역사적 한계다.

불교의 깊은 철학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과 불교의 신통력을 이용해 현실의 소원을 이루려는 일은 분명 다르다.

나는 그 차이를 이 설화에서 발견한다.

6. 위대한 고승의 신통력보다 중요한 것

『아는 만큼 보인다』를 읽으며 다시 만난 『삼국유사』의 설화들은 참 재미있다.

역사와 전설이 뒤섞여 있고,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많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야기 속에 당시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던 방식과 믿음이 담겨 있다.

경덕왕의 옥경이 실제로 여덟 치였는지, 표훈이 정말 하늘나라를 다녀왔는지, 혜공왕이 원래 딸로 태어날 운명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 기록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아들을 얻기 위해 왕비를 폐하는 이야기에서는 남아선호사상을 볼 수 있고, 나라가 위태로워져도 아들을 얻겠다는 왕의 고집에서는 혈통과 왕위 계승에 대한 집착을 볼 수 있다.

혜공왕의 여성적인 행동을 정치적 혼란과 연결하는 대목에서는 당시의 성별에 대한 편견이 드러난다.

그리고 표훈이 천제를 찾아가는 이야기에서는 불교와 토속 신앙, 왕권이 결합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왜 이러한 이야기가 고승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설화로 전해졌느냐는 점이다.

표훈은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경고를 전했지만, 왕의 집착을 내려놓게 하지는 못했다.

의상은 화엄경을 강의할 절을 얻었지만, 설화 속에서 기존의 500명을 교화했다는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이 두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다시 불교의 가르침을 생각한다.

부처의 가르침이 위대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하늘을 날고, 바위를 띄우고,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능력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욕망을 돌아보고, 집착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며 스스로 마음을 닦으라는 가르침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설화들에서는 신통력이 전면에 등장하고, 정작 그러한 가르침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후대 사람들이 위대한 인물의 권위를 높이려고 신통력을 강조하다 보니,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가르침은 오히려 가려진 것이 아닐까.

어쩌면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마음을 닦는 일보다 기적을 바라는 일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부처는 집착을 버리라고 가르치는데 왕은 아들에 집착하고, 그 집착을 해결하려고 고승이 하늘나라까지 올라간다.

그런데 결국 나라가 위태로워졌다고 한다.

아들을 얻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나라를 잘 다스리는 일이었고, 하늘의 뜻을 바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왕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었다.

그 쉬운 이치를 깨닫는 데에는 천상계를 몇 번씩 왕래하는 신통력도 별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하긴, 바위를 공중에 띄우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 하나를 움직이는 일이 더 어려운 법이니 말이다.


王玉莖長八「寸」, 無子, 廢之, 封沙梁夫人. 後妃滿月夫人, 諡景垂太后, 依忠角干之女也. 王一日詔表訓大德曰, 朕無祐, 不獲其嗣, 願大德請於上帝而有之. 訓上告於天帝, 還來奏云, 帝有言, 求女卽可, 男卽不宜. 王曰, 願轉女成男. 訓再上天請之, 帝曰, 可則可矣, 然爲男則國殆矣. 訓欲下時, 帝又召曰, 天與人不可亂, 今師往來如隣里, 漏洩天機, 今後宜更不通. 訓來以天語諭之, 王曰, 國雖殆, 得男而爲嗣足矣. 於是滿月王后生太子, 王喜甚. 至八歲, 王崩, 太子卽位, 是爲惠恭大王. 幼冲故, 太后臨朝, 政條不理, 盜賊蜂起, 不遑備禦, 訓師之說驗矣. 小帝旣女爲男, 故自期晬至於登位, 常爲婦女之戲, 好佩錦囊, 與道流爲戲, 故國有大亂, 修(終)爲宣德與金良相所弒. 自表訓後, 聖人不生於新羅云.

왕옥경장팔「촌」, 무자, 폐지, 봉사량부인. 후비만월부인, 시경수태후, 의충각간지녀야. 왕일일조표훈대덕왈, 짐무우, 불획기사, 원대덕청어상제이유지. 훈상고어천제, 환래주운, 제유언, 구녀즉가, 남즉불의. 왕왈, 원전녀성남. 훈재상천청지, 제왈, 가즉가의, 연위남즉국태의. 훈욕하시, 제우소왈, 천여인불가란, 금사왕래여린리, 누설천기, 금후의갱불통. 훈래이천어유지, 왕왈, 국수태, 득남이위사족의. 어시만월왕후생태자, 왕희심. 지팔세, 왕붕, 태자즉위, 시위혜공대왕. 유충고, 태후임조, 정조불리, 도적봉기, 불황비어, 훈사지설험의. 소제기녀위남, 고자기수지어등위, 상위부녀지희, 호패금낭, 여도류위희, 고국유대란, 수(종)위선덕여김양상소시. 자표훈후, 성인불생어신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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