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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서재
  • 아는 만큼 보인다 : 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
  • 유홍준
  • 19,800원 (10%↓1,100)
  • 202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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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창건 설화에 등장하는 악덕 부동산 개발업자와 강제 이주 용역

— 『아는 만큼 보인다: 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다가 만난 억울한 500명의 사람들

1. 천년 고찰에서 만난 수상한 부동산 개발사업

나는 유홍준의 글을 좋아한다. 대학 1학년 때부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기 시작했으니 그 인연도 벌써 수십 년이다. 우리나라 답사기는 물론 북한, 일본, 중국을 다룬 책들과 산사 순례, 인생만사 답사기까지 두루 읽었다. 그의 책을 읽고 직접 여행과 답사를 다닌 곳도 많다. 문화유산을 찾아다니는 재미를 알게 된 데에는 그의 영향이 컸다.

그런데 좋아하는 저자의 글이라고 해서 모든 생각에 동의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를 읽다가 부석사의 창건 설화를 접하고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거,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악덕 부동산 개발업자와 강제 이주 용역의 이야기가 아닌가?

경북 영주의 부석사(浮石寺)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찰이다. 국보인 무량수전과 그 유명한 배흘림기둥, 안양루에서 내려다보는 소백산의 풍경까지, 우리 건축문화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사찰이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인 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창건 과정에는 의상과 그를 흠모했던 당나라 여인 선묘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당나라에서 의상을 만난 선묘는 그를 사모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의상의 귀국길에 용이 되어 그를 지켰다고 한다. 이후 의상이 신라에서 화엄의 가르침을 펼칠 터전을 마련할 때도 선묘는 그를 도왔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2. 사교의 무리 500명, 그 절에 먼저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

설화에 따르면 의상이 화엄의 가르침을 펼칠 장소를 찾아갔을 때, 그곳에는 이미 500명가량의 무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책은 이들을 ‘잘못된 주장을 하는 종파’라고 풀이한다.

그들이 어떤 주장을 했고, 무슨 사정으로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의상이 들어가려던 곳에는 이미 절이 있었고, 그곳에 500명의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자신들이 머물던 절에 새로운 사람이 찾아와 다른 가르침을 펼치겠다며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오늘날의 말로 바꾸면 기존 시설의 점유자를 내보내고 새로운 사업자가 들어서는 것이다. 화엄경 강의를 위한 종교시설 개발사업이라고나 할까.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다음이다.

설득이나 협의 과정도 없다. 의상의 뜻을 알아챈 선묘가 곧바로 거대한 바위로 변해 공중에 떠올랐다고 한다. 그 위협에 놀란 무리는 흩어졌고, 의상은 그 절에 들어가 화엄경을 강의했다.

그야말로 신통력을 동원한 강제 이주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사업시행자는 의상대사, 강제 이주를 집행한 용역은 선묘룡인 셈이다. 선묘는 의상을 향한 지극한 정성으로 행동했겠지만, 쫓겨난 사람들 입장에서는 무시무시한 존재였을 것이다.

기존 시설을 확보하고, 점유자 500명을 내보내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신규 부지를 확보하거나 건물을 신축할 필요도 없었다. 더구나 이주 업무까지 선묘가 해결해 주었으니, 의상은 그저 들어가 화엄경만 강의하면 되는 것이다.

사업 추진 실적만 놓고 보면 요즘 부동산 개발업자도 혀를 내두를 만한 수완이다.

물론 이것은 설화를 오늘날의 사회현상에 빗댄 풍자다. 실제 토지 소유권이나 점유 권리를 따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설화가 그들의 사정을 설명하지 않은 채 의상이 화엄경을 강의하기 위해 사라져야 할 무리로만 등장시킨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혹시 그들은 국가의 수탈과 조세 부담을 피해 깊은 산중으로 숨어든 백성들이 아니었을까?

물론 확인된 사실은 아니고 나의 상상이다.

옛날 그 험한 산중에 누가 살고 싶어 들어갔겠는가. 관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심심유곡을 찾아 들어온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밤이면 호랑이와 늑대가 돌아다녔을 것이고, 겨울이면 추위와 굶주림도 견뎌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 살 수 없으니 하나둘 모여 서로 의지하며 공동체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마련한 터전에서 이제 좀 살아보려는데, 이번에는 불교계의 강제 이주 용역을 만난 셈이다.

승리한 사람의 시각에서 쓰인 이야기는 아름다운 기적이 되지만, 쫓겨난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3. 사람을 교화하러 갔는가, 쫓아내러 갔는가

내가 이 설화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중생을 깨우치겠다는 목적과 신통력으로 사람을 위협하는 방법이 서로 어긋난다는 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란 무엇인가. 어리석은 중생을 깨우치고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사람들이 어떤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든,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들을 설득하고 교화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물론 직접 바위로 변해 사람들을 위협한 것은 선묘다. 의상이 선묘에게 그런 행동을 지시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선묘가 의상의 뜻을 알아채고 스스로 행동한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그 절에 들어가 화엄경을 강의한 사람은 의상이었다.

그런 신통력까지 동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바위를 공중에 띄워 겁을 줄 것이 아니라, 그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모습을 보여 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설령 그 500명이 산적이나 도적이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었다면 올바른 가르침을 설파하고, 그 잘못을 깨닫도록 이끌었어야 한다.

그게 불법을 전하러 간 승려가 할 일 아닌가.

그런데 이 설화에서는 교화는커녕 머리 위에 바위부터 띄워놓고 쫓아냈다니!

적어도 이 설화 속 의상에게서는 중생을 깨우치는 위대한 고승의 모습보다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킨 뒤 그 자리를 차지하는 승리자의 모습이 더 두드러진다.

그런 이야기를 위대한 고승의 행적으로 전하는 설화부터 잘못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역사적 인물로서 의상이 실제로 그런 행동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의상은 한국 화엄불교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승려이고, 그 업적은 별도로 평가할 문제다.

도리어 후세 사람들이 위대한 고승의 권위를 높이려다가 그가 전하려던 불교의 가르침과 모순되는 이야기를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정말로 그의 위대함을 드러내고 싶었다면 신통력으로 500명을 겁주어 쫓아내는 것보다, 그들을 감화시켜 함께 불법을 공부하도록 이끌었다는 이야기가 훨씬 그럴듯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자비도 실천하고, 중생도 교화하고, 화엄경 강의라는 사업 목적도 달성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설화의 사업 추진 방식이 잘못되었다.

4. 누구 마음대로 사교라고 부르는가

나는 여러 종교 가운데 불교에 가장 호감을 갖고 있다.

다른 종교에서는 흔히 자신이 믿는 절대자를 믿으라고 가르치지만, 내가 이해하는 불교는 자신의 마음을 닦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일을 중시한다.

부처를 무조건 믿으라는 것보다 네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고 수양하라는 가르침이 내게는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설화가 더욱 마음에 걸린다.

책에서는 그 500명을 ‘잘못된 주장을 하는 종파’라고 풀이한다. 같은 불교 안의 다른 교파였다 해도, 다른 교리를 따른다는 이유로 사교라 부르고 쫓아냈다면 자비와 포용에는 더욱 어긋나는 일이 아닐까.

나는 종교에 관한 한 상당히 포용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두 사람이 모여 믿어도 그들 나름의 정교로 인정해 주는 사람이다. 신도가 두 명이든 이백만 명이든 사람 숫자로 정교와 사교를 나눌 생각은 없다.

물론 특정 집단이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다른 사람을 해쳤다면 그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교리가 다르다는 것과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어느 교리가 옳고 그른지를 논쟁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과 다른 교리를 따른다는 사실 자체가 배척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설령 그들이 정말 잘못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하더라도, 그들과 논쟁하고 설득하는 과정이야말로 불교의 자비와 지혜를 보여 줄 기회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단순한 신통력의 기적담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5. 좋아하는 저자의 글에도 이견은 있다

오랫동안 좋아해 온 저자지만, 그렇다고 그의 모든 표현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문제 삼는 것은 유홍준이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의 글에 나타난 특정한 표현과 관점이다.

특히 마음에 걸렸던 것은 선묘의 목조상 앞에서 합장의 예를 올리며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대신한다고 말한 장면이다.

책 219쪽에서 저자는 일본 교토박물관에 보관된 선묘 목조상을 보고 이렇게 적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대신해서 사과드리는 합장의 예를 올렸다.”

처음에는 무슨 이유로 국민 모두를 대신해 사과한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220~221쪽을 읽으면 그 이유가 나온다.

선묘는 신라의 승려 의상을 위해 헌신한 중국 여인이었다. 그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전해졌으며 부석사에는 선묘를 기리는 선묘각도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미 약 800년 전에 묘에 스님이 선묘를 기리는 사찰을 세우고 목조상까지 만들어 봉안했다.

저자는 일본인들이 12세기에 의상과 선묘의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남기고, 선묘를 위한 사찰과 조각상까지 만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선묘각은 규모도 작고 역사도 짧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한국인의 강한 애국심과 애향심을 긍정하면서도, 그것이 외국과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성과 폐쇄성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비판한다.

그런 맥락에서 221쪽에 이렇게 썼다.

“나는 그 점을 사과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저자가 왜 사과했는지는 알겠다.

신라의 승려를 위해 헌신한 중국 여인을 우리나라에서는 충분히 기리지 못했는데, 오히려 일본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그 희생을 기념해 왔다는 사실이 미안했던 것이다.

그 마음은 이해한다.

국적과 민족을 넘어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한 이를 기억하고 기리는 일은 뜻깊다. 선묘의 희생에 감사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도 없다.

다만 선묘의 헌신과 그 헌신이 낳은 결과는 구분해야 한다. 의상을 향한 사랑과 희생은 기릴 만하더라도, 그 힘이 500명을 위협해 쫓아내는 데 쓰였다는 설화의 내용까지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정작 문제 삼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아니, 지가 뭔데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대신한다는 것인가?

대한민국에는 불교 신자만 사는 것이 아니다. 개신교 신자도 있고, 천주교 신자도 있으며, 이슬람교나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그 사람들이 선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앞에서 사과할 필요를 느끼는지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 모든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저자가 무슨 재주로 안단 말인가.

나야 앞서 말했듯이 두 사람이 믿어도 정교로 인정해 주는 아주 포용적인 사람이다. 선묘에게 합장을 하든 절을 하든 상관할 바 아니다.

다만 남의 이름까지 가져다 쓰지는 말라는 것이다.

참으로 지식인들이란!

가끔 보면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많이 알고, 제일 올바르게 생각하며, 국민의 마음까지 대표한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지식인이란 자신의 지식과 식견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지, 국민 모두의 양심을 대표할 권한까지 가진 사람은 아니다.

나는 그 표현에서 지식인이 자칫 빠지기 쉬운 오만을 느꼈다.

더욱이 저자는 한국인의 배타성과 폐쇄성을 비판하고 있다.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를 존중하자는 취지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서로 다른 생각과 신앙 역시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민족을 넘어 타인을 이해하자면서 정작 국민 모두가 자신과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그 또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과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다고 여기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선묘에게 감사하고 싶다면 감사하고, 사과하고 싶다면 자신의 이름으로 사과하면 될 일이다.

거기에 굳이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을까.

좋아하는 저자의 글이라고 해서 무조건 찬성하는 것 역시 제대로 읽는 태도는 아닐 테니까.

6. 바위 아래에서 사라진 500명의 목소리

부석사라는 이름은 공중에 떠올랐다는 바위, 곧 부석(浮石)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람들은 그 바위에 얽힌 선묘의 헌신을 이야기하고 의상의 위대한 불법을 칭송해 왔다.

그런데 나는 그 바위를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그 아래에서 바위를 올려다보던 500명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신통력에 감탄했을까. 불법의 위대함을 깨달았을까. 아니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황급히 달아났을까.

설화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없다. 그들은 잘못된 주장을 하는 무리로 등장했고, 의상이 그 절에 들어가 화엄경을 강의할 수 있도록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만 그려졌다.

부석사의 건축적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의상의 화엄사상과 불교사적 공헌을 깎아내리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라고 해서 모든 행동을 미화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천년 고찰의 아름다운 전설을 읽으며 악덕 부동산 개발업자와 강제 이주 용역을 떠올린 것은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설화를 반드시 설화가 의도한 방향으로만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설화는 의상의 승리를 기록했다. 그러나 바위 하나를 띄우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 하나를 움직이는 일이 더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나는 위대한 고승의 신통력보다, 그날 산을 내려갔을 500명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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