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대장정 서재

벨라스케스는 세비야에서 활동하며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로마에 가기 직전 스페인 궁정에서 그린 작품에서도 카라바조 스타일이 열보입니다. 바로 앞 페이지의 작품, 바쿠스의 승리죠.
그림 속 인물은 당장이라도 스페인에 가면 만날 법한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술의 신 바쿠스도 신이라기보다 평범한 인간으로 보이죠. 그림 속 인물들의 사실적인 모습에서 카라바조의 바쿠스가 떠오르지 않나요?- P550
이 작품은 1625년에 벌어진 전투 장면을 담아냈는데요. 네덜란드 독립전쟁에서 스페인군이 네덜란드 도시 브레다를 함락시킨 사건을 그렸습니다. 네덜란드의 장군이 도시의 열쇠를 스페인 장군에게 바치면서 항복하는 장면에서 스페인 군대의 권위가 잘 드러납니다.- P552
스페인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마지막 몸부림이 아니었을까요.
1640년에는 바르셀로나가 있는 카탈루냐에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프랑스와 연합하면서 카탈루냐의 반란군 세력이 커지고, 설상가상으로 포르투갈까지 독립을 시도합니다. 이베리아반도 안팎으로 반란이 일어나자1648년 스페인은 결국 네덜란드 독립을 인정하고 맙니다.- P553
공주의 시중을 깍듯하게 드는 시녀와 달리 화면 오른쪽의 난쟁이는 여유로워 보입니다. 심지어 개의 등을 발로 툭 차고있지요. 화면 중앙의 시녀와 시종은 왕가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난쟁이는정적인 그림에 움직임을 넣어 단조로움을 깨고 있습니다.- P557
그림 속 벨라스케스는 캔버스에 무엇을 그리고 있었을까요? 프랑스 철학자미셸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이 그림에 주인공은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 그림의 거울 앞에 가장 오래 서 있던 사람은 화가 자신일 겁니다.
그러나 정작 거울 속에 그의 모습은 없는데요. 거울은 모든 것을 보여주지만 결국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P561
카를로스 2세와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종말다시 스페인 왕가 이야기로 돌아갈까요. 마르가리타 공주가 태어났지만,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고민하던 펠리페 4세는 1661년 기대하던 아들을 품에 안습니다. 바로 카를로스 2세죠. 이토록 귀한 아들을 얻고 4년후 펠리페 4세가 죽음을 맞이하고, 4살이었던 카를로스 2세가 왕위에 오릅니다.- P562
합스부르크 왕가는 사촌이나 조카끼리 결혼하는 근친혼이 흔했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16세기 중반 카를로스 1세의 양위 과정에서 스페인계와 오스트리아계로 나뉘는데요. 이후 양쪽 집안이 근친혼을 더 강하게맺어나갑니다. 다른 가문과 결혼할 경우 영토나 권력이 분산될 우려가 있어 근친혼을 통해 양쪽 가문의 이익을 보호하려 했던 겁니다.- P562
펠리페 4세를 기준 삼으면 1621년부터 1665년까지를 스페인 바로크 미술의 골든 에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벨라스케스가 마드리드 궁정에서일한 시기를 기준으로 하면 1623년부터 1660년까지고요. - P565
결국 황금기는 40년 남짓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스페인 미술은 1660년 이후 다시 화려하게 날아오릅니다. 이 재도약은 세비야에서 펼쳐집니다.- P566
세비야라면 이장을 시작한 곳이네요. 벨라스케스의 고향이기도 하고요그렇습니다. 17세기 후반 세비야는 마드리드를 이어 스페인 미술의 새로운 도전을 이어 나갑니다. 이후 스페인 미술의 발전 과정은 더 감동적인니다. 이와 맞물려 동시에 펼쳐진 바로크 미술의 전 지구적 확산은 다음장에서 알아보겠습니다.- P566
1600년의 세비야는 파리나 런던에 견줄 만큼 큰 도시였다. 세비야 출신 벨라스케스는 스승인 파체코의 전폭적인 지지로 스페인이 배출한 최고의 화가로거듭난다. 궁정 화가로 활동한 그는 초기에 카라바지즘을 추구했으나, 로마유학 후 화려하고 다양한 색채를 사용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다.- P567
바로 무리요입니다. 부드럽고 우아하면서도 놀라울 만큼 강렬한 바로크회화의 세계를 보여준 작가입니다. 그는 벨라스케스의 뒤를 이어 17세기후반 스페인 바로크 미술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세비야 미술관입니다. 이름에서알 수 있듯이 중세부터 현대까지 세비야의 다양한 미술 세계를 감상할 수있는 곳이지만 핵심 컬렉션은 17세기 바로크입니다.- P569
이러한 연유로 빈민 문제가 큰 사회 문제가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때부터 무리요는 가난한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거리에서 음식을 주워 먹는 거지, 가난한 아이들의 비참한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냅니다.- P575
당시 세비야의 지배층이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합니다. 1674년 세워진 세비야 자선병원 Hospital de la Cariclad도 이중 하나인데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병원에서 살게 해주고, 환자를 돌보는 데서 나아가 경제적 문제로 장례를 치르기 힘든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줍니다. 심지어 사형수들의 장례까지 치르는 등 세비야 사회를 재건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P576
추리게라 양식에는 기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690년부터 상당히 독특한 기둥이 스페인에 출현하는데요. 왼쪽처럼 오벨리스크를 거꾸로 집어넣은 혹은 옥수수 모양의 기둥이 나타납니다.- P581
요즘 연경에 사신으로 다녀온 사람들이 서양화를 사다가 대청에걸어 놓는다. 처음에 한 눈을 감고 다른 한 눈으로 오랫동안 주시하면 건물 지붕의 모퉁이와 담이 모두 실제 형태대로 튀어나온다.
이익, 『성호사설』 제4권, 「만물문」- P587
천주당 가운데 벽과 천장에 그려져 있는 구름과 인물들은 보통 생각으로는 헤아려 낼 수 없었고, 또 보통의 언어, 문자로는 형용할수도 없었다. 천장을 우러러보니 수없는 어린아이들이 오색구름 속에서 뛰노는데, 허공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 살결을만지면 따뜻할 것만 같고 팔목이며 종아리는 살이 포동포동 쪘다.
갑자기 구경하는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놀라 어찌할 바를모르며 손을 벌리고서 떨어지면 받을 듯이 고개를 젖혔다.
박지원, 열하일기, 양화- P589
처음 천주당 안에 들어가 얼굴을 들어 언뜻 보니, 벽에 커다란 감실이 있고, 그 안에 구름이 가득하고 구름 속에 대여섯 사람이 서 있어아른하고 황홀한 것이 신선과 귀신이 환상으로 변한 것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본즉 벽에 붙은 그림이었다.
이기지, 일암연기- P590
이기지는 북경 천주당에서 만난 서양 선교사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견문을 넓힙니다. 서양 문물을 마주한 놀라움과 신선함은 그림에서 그치지 않는데요. 서양 디저트를 처음 맛본 느낌을 고스란히 담은 기록도 함께 전해집니다.

부드럽고 달았으며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았으니 참으로 기이한 맛이었다. 만드는 방법을 묻자 사탕과 계란, 밀가루로 만든다고 했다.
이기지, 「일암연기』- P591
포도주 석 잔을 내왔는데 지난번에 마신 것보다 맛이 더 좋았다. 나는 연거푸 두 잔을 마셨을 뿐인데도 많이 취하였다. 입에 들어갈 때는 상쾌하고 목으로 넘어갈 때는 부드러워 그 맛을 형언할 수 없었다. 선인의 음료라 하더라도 이보다 낫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지,『일암연기- P592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