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광장은 내전의 참상에 대한 기억을 품고 있다. 1938년 1월 30일 프랑코의 공군이 바르셀로나를 폭격했을 때 민간인 마흔두 명이 거기에서 목숨을 잃었는데 대부분이 마드리드에서 피란 온 어린이였다. 광장과 성당 외벽에 포탄이 터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프랑코 추종자들은 아나키스트 집단이 성당 신부들을 총살한 흔적이라고 거짓말을 퍼뜨렸지만,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속지 않았다.
이사벨 1세는 보석과 왕관을 팔아가면서까지 성공 확률이 높지 않았던 콜럼버스의 1차 항해에 투자했고 2차 항해 때는 더 큰돈을 썼다. 안달루시아 서부의 항구에서 1차 원정을 떠났던 콜럼버스는 ‘왕의 광장’에서 여왕을 알현하고 1차 항해 결과와 2차 항해 계획을 보고했다.
‘왕의 광장’은 또한 종교재판이라는 이름의 국가 범죄 현장이었다. 이사벨-페르난도 공동왕이 레콩키스타를 완료한 후 유대인과 무슬림을 쫓아낸 경위는 마드리드 편에서 살펴보았으니 여기서는 종교재판에 대해서만 짚어보겠다. 피해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스페인 종교재판의 야만성이 유럽 사회에 널리 알려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엄밀하게 보면 그것은 종교재판이 아니라 세속 권력의 비호를 받은 악당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재산을 강탈한 조직범죄였다.
인간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종교에도 명암이 있다. 종교는 삶의 도덕적 기초를 제공하며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이타 행동을 격려한다. 그러나 종교는 또한 사람의 생각을 옭아매어 권력자가 민중을 착취하는 도구로 쓰인다. 신의 이름으로 타인을 증오하고 죽이도록 부추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인간 집단에 종교가 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종교 없이도 우리가 도덕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신앙심 없이도 이타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구원이나 다음 생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고도 삶에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몬주익은 ‘산(mont)’과 ‘유대인(juic)’을 합친 말이다. 1992년 올림픽 때 황영조 선수가 언덕 오르막에서 치고 나와 마라톤 금메달을 땄다. 이름의 유래에 대해 여러 설이 있는 몬주익은 유대인 묘지가 있는 도시 바깥의 바위 언덕이었는데 엑샴쁠레지구가 생긴 뒤 고딕지구와 이어졌다.
나이 든 여자들이 표를 살 때는 계산대 모니터에 입장료 7유로가 찍혔는데 내가 살 때는 15유로가 떴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젊은 여자 직원이 눈치를 챘는지 말을 건넸다. "님, 65살 넘었음?" "아하, 경로 우대! 내년에 다시 와야겠네." "정말? 64로는 안 보이는 걸." 계산대 모니터에 37유로가 찍혔다. 동행한 여인 둘은 각각 15유로, 나는 7유로란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쨌든 깎아준 건 고마운 일이었다. "감사요." "별 말씀을!"
피카소는 자유분방하고 정력적인 스타 예술가로서 대중의 관심을 받으면서 떠들썩한 가십을 생산한 반면 미로는 조용하고 소박하게 살면서 창작에 집중했다. 두 예술가의 작품은 스릴러 소설과 동화만큼이나 확연한 차이가 있다. 피카소의 그림은 강렬한 호오(好惡)의 감정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미로의 작품은 편안하게 보는 이의 직관에 다가선다.
19세기 후반 모더니즘부터 1960년대의 낙관주의 작품까지 까딸루냐 미술 대표 작품들을 보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가우디·피카소·미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가 아니야. 그들의 예술은 까딸루냐의 문화적 토양 위에서 핀 꽃이라고.’
까딸루냐 미술관 바로 아래편에 ‘몬주익 마법의 분수’가 있다. 1929년 만국박람회를 앞두고 만든 분수는 어둠이 깔린 직후 클래식 음악과 조명과 물줄기가 어우러지는 쇼를 한다. 관람객이 많아서 키 작은 동양인은 애로사항이 있기 때문에 까딸루냐 미술관 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서 큰길에 늘어선 분수들을 배경에 두고 보아도 나쁘지 않으며, 쇼를 본 다음 가까운 ‘스페인 마을’에서 저녁밥을 먹으면 편리하다. ‘스페인 마을’은 스페인 여러 지역의 대표 건축물을 실제 크기로 만든 테마파크다.
어느 순간 사람들이 색종이를 들고 일어나 일제히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도 영문도 모른 채 일어섰다. 맞은편 관중석을 보니 카드섹션이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 바르셀로나 구시가를 탐사하면서 알았다. 바르사 팬들은 경기 시작 17분 14초에 이벤트를 한다. 왜 하필 17분 14초인가? 앞에서 말했지 않은가. 1714년 바르셀로나 공방전의 참혹한 패배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까딸루냐 독립운동이 최고조에 올랐던 2017년에는 ‘independencia(독립)!’이라는 구호를 외쳤다는데, 우리가 갔던 날 관중들이 뭐라고 소리 질렀는지는 모른다. 까딸루냐를 힘으로 정복하고 민족 지도자를 학살했던 일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는 구호였을 거라 생각한다. 다른 팀 경기에도 늘 하는 이벤트라서 레알 팬들도 문제 삼지는 않는다고 한다.
스포츠가 전쟁 대용이라는 말이 있는데 축구가 특히 그런 것 같다. 축구는 격렬한 신체 접촉을 동반하는 단체 경기다. 손과 팔을 제외한 몸 전체를 쓰고 어깨싸움을 관대하게 용납한다. 물리적인 힘과 스피드가 경기의 흐름을 좌우하며, 적절한 전술과 선수들의 협동력으로 팀의 잠재 능력을 최대로 발현하면 더 강한 상대를 제압할 수도 있다. 전쟁과 가장 비슷한 스포츠여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게 아닌가 싶다.
호전성을 부추긴다고 스포츠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전쟁보다는 스포츠가 낫다. 그날 바르사가 홈에서 졌지만 죽거나 다친 이는 없었다. 스페인 광장에서 흩어졌던 바르사 팬들은 마음에 복수의 칼날을 품었을 뿐 그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다음에는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오늘의 패배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스포츠는 전쟁보다 훌륭하다. 바르사가 레알을 이기는 것으로 마드리드의 왕이 1714년 바르셀로나에서 저질렀던 대학살에 대한 복수심을 충족한다는 것, 이 얼마나 평화로운 해법인가.
요즘은 서울 거리에서 외국인 여행자를 흔히 볼 수 있다. 경복궁 근처에는 한복을 입고 무리지어 다닌다. 북촌 한옥마을 골목에서는 한국 사람을 보기 어려울 정도다. 남산-숭례문-독립문-인왕산-북악산-혜화동-낙산-동대문-남산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 안이 모두 북촌이나 인사동 같은 형태로 남아 있다고 생각해 보라. 바르셀로나 구시가는 그런 곳이다. 옛길이 그대로 있고 사람들은 옛집을 고쳐가며 산다. 코엑스가 있는 강남과 여의도는 신시가지 엑샴쁠레에 해당한다. 사대문 밖의 마포·영등포·연신내·청량리 같은 곳을 그라씨아지구로 보면 된다. 바르셀로나는 서울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작은데 구조는 비슷한 데가 있다는 말이다.
서울이 경복궁에서 홍대를 거쳐 코엑스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시라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매력적이겠는가. 바르셀로나가 바로 그런 곳이다. 구엘 공원에서 그라씨아와 엑샴쁠레와 고딕지구를 거쳐 바르셀로네따 해변까지 걸으면 로마 시대부터 서고트 왕국과 무슬림 왕조를 거쳐 스페인 왕국과 오늘의 민주주의 사회까지 모든 시대의 역사를 품은 공간을 만나게 된다. 현지인은 현지인대로 여행자는 여행자대로 자신이 선택한 공간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머무를 수 있다. 몇몇 관광 ‘핫 스폿’을 제외하면 어디서나 현지인과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뒤섞여 움직인다.
리스본 시내 어디서든 시선을 북쪽으로 돌리면 초록빛 가파른 비탈 위로 높이 솟은 오벨리스크 비슷한 조형물이 보인다. 폼발 후작의 동상이다. 어째서 왕도 아닌 일개 후작의 동상이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을까?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리스본을 지금 모습으로 되살린 사람이라서다. 우리는 리스본 여행을 거기서 시작했다
1755년 11월 1일 가톨릭 만성절(萬聖節) 오전 시간이었다. 신실한 교인들이 성당에서 미사를 올리고 있을 때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 지진은 왕궁과 귀족 저택부터 대성당과 수녀원까지 성과 속을 가리지 않고 땅 위에 선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예나 지금이나 리스본의 중심은 대서양에 합류하는 타구스(Tagus) 강변에서 북쪽으로 펼쳐진 평지 바이샤(Baixa)지구다
당시 기록을 근거로 추정하면 리히터 규모 9가 넘는, 지형 변화를 일으키는 수준의 초강력 지진이었다. 리스본은 언덕과 비탈이 많아 피해가 더 커졌다. 첫 본진이 5분 동안 땅을 흔드는 동안 바이샤의 건물이 대부분 무너졌고 좌우 비탈의 집들이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건물만 무너진 게 아니었다. 공포에 질려 강변으로 달아난 사람들은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물이 빠진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지진해일의 전조 현상이라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파도가 밀려와 사람과 선박과 무너진 궁전의 잔해를 쓸어갔고, 바닷물이 닿지 않은 곳은 무너진 주택의 화로에서 번져 나온 불길이 집어삼켰다
건물만 무너진 게 아니었다. 공포에 질려 강변으로 달아난 사람들은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물이 빠진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지진해일의 전조 현상이라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파도가 밀려와 사람과 선박과 무너진 궁전의 잔해를 쓸어갔고, 바닷물이 닿지 않은 곳은 무너진 주택의 화로에서 번져 나온 불길이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