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대장정 서재

유럽 도시의 숲은 중세 왕의 정원이거나 사냥터인 경우가 많은데 레티로 공원도 그렇다.
그보다는 시민들의 일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가벼운 차림으로 뛰는 젊은이, 유모차를 미는 커플, 손자와 산책하는 노인, 뱃놀이하는 연인, 버스커, 저글러, 여느 도시의 공원과 다를 게 없었다.
공원을 나오면서 상상해 보았다. ‘똘레도를 떠다가 여기에 심으면 어떨까? 마드리드가 온전한 역사 도시가 되겠지.’
아토차역까지 5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그랑비아역에서 메트로 1호선을 타고 네 정거장만 가면 아토차역 길 건너 예술역이었다. 길 찾기 앱을 무작정 따라갔다가 시간과 돈을 허비한 것이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면서 앱을 써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유럽 도시에서는 이동 시간 계산을 할 때도 길 찾기 앱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말아야 한다. 일찍 나서지 않았다면 보안 검사 시간 때문에 그날 바르셀로나행 기차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스페인은 한국만큼 대중교통이 편리하지 않다. 마드리드 시내 전철은 노선마다 요금 체계가 달랐고 환승 요금 할인도 없었다. 인터시티 열차도 그랬다. 2022년 서비스를 시작한 민간 고속철도회사(iryo)는 국영 철도회사(renfe)보다 요금이 약간 싸고 서비스가 좋다.
마드리드에 다시 간다면 뭘 할지 생각해 보았더니 세 가지가 떠올랐다. 미술관 감상, 똘레도 소풍, 플라멩코·재즈 공연이다. 미술관을 딱 한 곳만 볼 수 있다면 어디가 좋을까? 대가들의 작품을 최대한 넓게 감상하려면 TB가 좋겠지만 스페인 미술을 깊이 있게 보고 싶다면 프라도가 최선이다. TB와 비슷한 미술관은 다른 곳에도 있지만 프라도는 그렇지 않다. 프라도에는 마드리드에 가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작품이 많다.
마드리드가 어떤 도시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스페인의 수도이지만 제일 잘사는 도시도 아니고 가장 아름다운 도시 또한 아니다. 하지만 이 도시가 무엇을 바라면서 어디로 나아가려 하는지는 분명했다. 총칼 앞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정치인의 이름을 국제공항에 걸었다. 폭력이 난무한 시대에 인간의 이성을 깨웠던 예술가를 잊지 않았다. 실패했지만 옳은 길을 가려 했던 지도자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제국의 영광이 사라진 광장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사랑을 나누는, 먹고 마시며 늦은 밤까지 함께 웃는 삶의 터전으로 바꾸었다. 죽은 왕들의 권위를 과시하는 왕궁보다 벨라스케스와 고야 같은 예술가를 품은 미술관을 더 높이 자랑한다. 한국 여행사들이 스페인·포르투갈 관광 일정에 마드리드를 스치고 지나가듯 끼워 넣은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마드리드는 깊게 들여다보아야 멋을 알 수 있는 도시다.
까딸루냐의 주도(州都)인 바르셀로나는 중세 아라곤 왕국의 수도였으나 이사벨-페르난도 공동왕의 스페인 왕국 창설 이후 줄곧 마드리드에 억눌렸고 때로는 짓밟혔다.
무역의 중심지였고 근대 스페인 산업화를 주도했으며 제일 잘 사는 지역인 까딸루냐 주민들은 이런 역사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까딸루냐 말을 제1 공용어로 쓴다. ‘스페인 국민’이기에 앞서 ‘까딸루냐 시민’임을 자처한다.
카를로스 1세 왕이 국가의 통합에 기여한 공으로 작위를 내렸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스페인의 정치인이기에 앞서 까딸루냐의 시민이라고 주장했다. 바르셀로나시는 2019년 따라데야스의 이름을 공항에 넣음으로써 ‘스페인의 도시’이기에 앞서 ‘까딸루냐의 수도’임을 선언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