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하는 일본 북알프스 여행기
여행 4일차, 2026.05.25.(월요일)
드디어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를 넘다-2편
19. 오전 9시 40분, 드디어 유키노오타니를 걷다
무로도 고원을 한 바퀴 돌아 다시 터미널 쪽으로 돌아왔다.
오전 9시 30분이 지나면서 드디어 유키노오타니 설벽 산책로가 개방됐다.
우리는 오전 9시 40분경 설벽으로 향했다.
아까 버스를 타고 지나왔던 바로 그 길을 이번에는 직접 걷는다.
밖으로 나가자 먼저 ‘立山・雪の大谷, Tateyama Snow Wall’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해발 2,390m.
기온 8℃.
그리고 오늘의 설벽 높이 11m.
2026년 5월 25일이라는 날짜까지 정확하게 적혀 있었다.
“11미터구만.”
예전에 유키노오타니의 가장 높은 설벽이 20m에 육박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조금은 아쉬웠다.
“4월 개장하자마자 왔어야 했나.”
5월 말이다 보니 그동안 눈이 많이 녹은 모양이었다.
우리가 찾은 이날 현지 안내판에 표시된 최고 높이는 11m였다.
그래도 막상 그 앞에 서보니 11m도 엄청났다.
사람 키의 몇 배나 되는 눈벽이 도로 양쪽으로 길게 이어졌다.
마님과 나는 설벽에 붙어 사진부터 찍었다.
한쪽 다리를 들고 벽에 기대보기도 하고,
두 팔을 활짝 벌려보기도 하고,
설벽을 기어오르는 시늉도 해봤다.
“ㅎㅎ 이거 재밌네.”
눈벽에는 겨울 동안 쌓인 눈의 층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하얀색과 회색빛 선들이 여러 겹 겹쳐져 있었다.
한 번에 쌓인 눈이 아니라 수많은 눈과 바람,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낸 벽이라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조금 더 걸어가자 ‘雪の大谷 最高地点 11m’라고 적힌 표지판이 나타났다.
오늘 가장 높은 설벽 지점이었다.
그 앞에서도 마님과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은 계속 몰려들었다.
설벽 사이 도로가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우리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
눈벽을 만져보는 사람,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탄하는 사람들.
가끔 고원버스도 설벽 사이 도로를 지나갔다.
아까 우리가 버스를 타고 지나왔던 모습을 이제는 밖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영화 『비밀』이 떠올랐다.
영화에서 처음 보고
“저기가 어디여. 언젠가는 꼭 가봐야겄다.”
생각했던 바로 그곳이다.
그 장소를 지금 사랑하는 마님과 함께 직접 걷고 있었다.
사진으로 볼 때와는 전혀 달랐다.
눈벽의 높이도,
차가운 공기도,
파란 하늘과 하얀 눈의 대비도 직접 와봐야 느낄 수 있었다.
5월 말에 이렇게 거대한 눈벽 사이를 걷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고 즐거웠다.
“오…… 내가 진짜 여길 왔구만.”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뒀던 장소 하나를 이렇게 직접 밟았다.
20. 오전 10시 10분, 이번에는 산속을 뚫고 다이칸보로
유키노오타니에서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다시 무로도 터미널로 돌아왔다.
이제 알펜루트 횡단을 계속해야 한다.
오전 10시 10분경 다이칸보로 가는 다테야마 터널 전기버스에 올랐다.
조금 전까지는 파란 하늘 아래 눈밭을 걷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산속으로 들어간다.
버스는 다테야마 산체를 뚫어 만든 터널 속을 달렸다.
창밖 풍경은 없다.
콘크리트 벽과 터널 조명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이것 역시 알펜루트의 재미였다.
산을 올라오는 동안 케이블카와 고원버스를 탔고,
이제는 산 자체를 관통하는 전기버스를 탄다.
눈 위로 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산속을 뚫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셈이었다.
다테야마를 횡단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
약 15분 뒤.
오전 10시 25분경 다이칸보에 도착했다.
21. 해발 2,316m 다이칸보, 설산과 구로베호를 내려다보다
다이칸보는 해발 2,316m.
역 밖 전망대로 올라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는 순간 또 감탄사가 나왔다.
“와…….”
우리가 조금 전까지 있던 무로도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앞쪽으로는 검고 뾰족한 산들이 거대한 벽처럼 솟아 있었고, 산 아래 깊은 골짜기에는 에메랄드빛 구로베호가 보였다.
그 뒤로 또다시 눈을 뒤집어쓴 북알프스의 산들이 길게 이어졌다.
오늘 정말 설산은 원 없이 본다.
하지만 볼 때마다 또 좋았다.
마님과 전망대 난간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둘이 셀카도 찍고,
마님 혼자도 찍고,
나도 설산과 구로베호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다.
전망대에는 주변 산들의 이름과 높이를 표시한 안내판도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산들이 그냥 이름 모를 산이 아니라 하나하나 이름과 높이를 가진 북알프스의 봉우리들이었다.
그리고 다이칸보에는 재미있는 곳이 하나 더 있었다.
눈을 파서 만든 터널 같은 공간이었다.
‘雪のポケット’, 눈의 포켓.
사람 키보다 높은 눈을 파내 마치 동굴처럼 만들어 놓았다.
밖은 햇빛이 쨍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완전히 눈 동굴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마님과 나란히 입구에 서서 사진도 찍고,
안쪽에서도 또 사진을 남겼다.
“오늘 눈은 정말 원 없이 만져보네.”
무로도에서는 넓은 설원과 유키노오타니의 높은 설벽을 봤다면,
다이칸보에서는 설산 아래로 깊게 내려앉은 구로베호와 북알프스의 험준한 산세를 내려다봤다.
같은 알펜루트 안에서도 장소를 하나 옮길 때마다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22. 오전 10시 50분, 로프웨이를 타고 허공을 건너다
다이칸보에서 다음 목적지는 구로베다이라다.
이번에 탈 것은 다테야마 로프웨이.
오전 10시 50분 출발편이었다.
역 안으로 들어가니 또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승강장 앞에는 로프웨이를 타려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줄을 서 있었다.
“야, 오늘 사람 머리 구경도 원 없이 허네.”
ㅋㅋㅋ.
드디어 차례가 되어 로프웨이에 올라탔다.
이번에는 정말 공중에 매달려 가는 케이블카였다.
다이칸보와 구로베다이라 사이를 지지기둥 없이 한 번에 연결한다.
출발하자 발아래로 산비탈이 멀어졌다.
아래에는 아직 눈이 많이 남아 있었고,
멀리에는 구로베호와 험준한 산들이 펼쳐졌다.
맞은편에서는 반대 방향 로프웨이가 산비탈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알펜루트가 얼마나 깊은 산속에 만들어져 있는지가 더욱 실감났다.
조금 전까지 우리가 서 있던 다이칸보는 점점 멀어졌다.
한쪽에는 눈 덮인 산,
한쪽에는 초록이 올라오기 시작한 산.
겨울과 봄의 경계 위를 공중으로 건너는 느낌이었다.
“이야…… 이것도 끝내준다.”
오늘은 타는 것마다 다 재미있었다.
23. 오전 11시경, 구로베다이라에서 또 설산 구경
오전 11시경 구로베다이라에 도착했다.
다이칸보에서 내려오니 고도는 조금 낮아졌지만 여전히 주변에는 눈이 많이 남아 있었다.
구로베다이라 전망대로 올라갔다.
밖으로 나가자 다시 산들이 펼쳐졌다.
조금 전 다이칸보에서 바라보던 산들을 이번에는 다른 높이와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있었다.
검은 바위산 사이로 하얀 눈이 골짜기를 따라 길게 남아 있었다.
반대편으로는 우리가 로프웨이를 타고 내려온 다이칸보 쪽 산이 올려다보였다.
맑은 하늘 아래 설산의 윤곽이 아주 선명했다.
“오늘 진짜 설산 원 없이 본다.”
마님과 전망대를 천천히 돌아다니며 또 사진을 찍었다.
이날 하루 도대체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는지 모르겠다.
사진을 찍다가 전망대 야외 테이블에 잠시 앉았다.
아침에 가져온 간식도 조금 꺼냈다.
바나나 하나를 들고 또 설산을 바라봤다.
“이야, 바나나 맛도 좋네.”
해발 높은 산속 전망대에 앉아 눈 덮인 산을 바라보며 먹는 간식.
별것 아닌데 이런 것도 여행에서는 기억에 남는다.
마님은 또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로 산을 찍고,
마님은 휴대전화로 또 찍고.
오늘 둘이 완전히 사진에 미쳐 있었다.
파란 하늘과 설산.
눈이 녹으면서 초록빛을 되찾기 시작한 산비탈.
그리고 저 멀리 계속 이어지는 북알프스 산줄기.
잠시 전망대에서 쉬며 풍경을 충분히 바라봤다.
이제 다음은 구로베호다.
오전 11시 30분.
이번에는 구로베 케이블카를 타고 산속 터널을 따라 아래로 내려갈 차례다.
24. 오전 11시 30분, 구로베 케이블카를 타고 구로베호로
구로베다이라에서 설산 풍경을 충분히 즐긴 뒤 다시 이동할 시간이 됐다.
오전 11시 30분.
이번에는 구로베 케이블카를 타고 구로베호로 내려간다.
승강장으로 내려가니 빨간색과 크림색으로 칠해진 작은 케이블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구로베 케이블카는 지금까지 타고 온 교통수단들과 또 달랐다.
산비탈을 따라 밖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전 구간이 터널 속에 있다.
차량에 올라 자리를 잡았는데, 이 케이블카 좌석이 엄청나게 좁았다.
가방을 벗고 앉았어야 하는데 나는 백팩을 등에 멘 채 그대로 앉아버렸다.
등을 뒤로 기대면 가방이 등받이에 걸리고, 그렇다고 공간이 좁아서 다시 일어나 가방을 벗을수도 없었다.
결국 가방이 의자 뒤에 닿지 않도록 몸을 앞으로 잔뜩 숙이고 고개까지 푹 숙인 우스꽝스러운 자세가 되어버렸다.
마님이 그 모습을 놓칠 리가 없다.
사진을 찍는데 나도 내 꼴이 우스워 웃음이 터졌다.
조금 쪽팔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내려가는 모습까지 사진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그래도 이동시간은 길지 않았다.
약 5분 뒤 구로베호역에 도착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역명판 앞에서도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이제 드디어 오늘 알펜루트 횡단에서 꼭 보고 싶었던 또 하나의 장소,
구로베댐이다.
25. 터널을 빠져나오자 나타난 구로베댐
구로베호역에서 사람들을 따라 터널을 걸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통로를 지나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시야가 확 트였다.
“와…….”
눈앞에 거대한 구로베댐과 구로베호가 나타났다.
아까 다이칸보와 구로베다이라에서 멀리 내려다보던 구로베호를 이제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물 색깔이 참 예뻤다.
푸른빛과 초록빛이 어우러진 구로베호의 물빛이 햇빛을 받아 더욱 선명했다.
호수 주변에는 연두색 신록이 한창이었고,
그 뒤로는 아직 눈을 잔뜩 이고 있는 산들이 솟아 있었다.
하늘까지 맑았다.
5월 말의 봄과 겨울이 한 화면 안에 함께 들어와 있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호수를 막아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구로베댐이었다.
댐 위를 직접 걸어 반대편까지 건너가야 한다.
마님과 나는 천천히 댐 위를 걷기 시작했다.
26. 높이 186m, 구로베댐 한가운데 서다
구로베댐 위를 걸어가다 중간쯤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난간에는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ここは黒部ダム中心」
‘여기는 구로베댐 중심.’
그리고 그 옆에 숫자가 적혀 있었다.
댐 높이 186m.
댐 길이 492m.
표고 1,454m.
“186미터여?”
숫자로만 보면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난간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찔했다.
댐 아래쪽 계곡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였다.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이 웬만한 고층건물 꼭대기보다도 높은 곳이라는 사실이 그제야 몸으로 느껴졌다.
반대쪽을 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거대한 구로베호가 산 사이로 길게 뻗어 있고,
멀리 눈 덮인 산들이 호수 끝을 둘러싸고 있었다.
마님과 함께 구로베호를 배경으로 셀카도 찍었다.
오늘 아침부터 수없이 많은 풍경을 봤는데 또 사진을 찍는다.
그래도 이건 안 찍을 수가 없었다.
거대한 댐 한가운데 서서 한쪽으로는 호수를 보고,
다른 한쪽으로는 186m 아래의 계곡을 내려다보는 경험은 흔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27. 역시 우리 토목기술자의 위대함이여
댐을 건너며 가까이서 보니 구로베댐의 규모가 더욱 실감났다.
댐은 일자로 뻗은 벽이 아니라 산과 산 사이를 막으며 활처럼 휘어져 있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계곡을 가로막고 있었고, 한쪽에는 푸른 구로베호의 물이 가득 차 있고 벽 하나 너머는 까마득한 계곡이었다.
높이 186m, 길이 492m.
숫자로만 보면 큰 댐이라는 정도인데 직접 그 위를 걸어보니 규모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댐이 만들어진 역사를 생각하면 더 놀랍다.
구로베댐과 구로베가와 제4발전소 건설은 1956년에 시작해 1963년에 완성됐다.
무려 7년에 걸친 대공사였다.
총공사비는 당시 513억 엔.
이것이 어느 정도의 돈이었는지 감이 잘 오지 않아 1963년 물가를 기준으로 현재 가치로 환산해보면 약 2,657억 엔, 현재 환율로 우리 돈 약 2조 4천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다목적댐인 대청댐과 비교해보면 그 규모가 조금 더 실감난다.
대청댐은 1975년 착공해 1980년 준공했으며 총사업비는 당시 약 1,557억 원이었다. 이를 1980년 소비자물가를 기준으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9천억 원 정도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현재 가치로 보면 구로베댐 건설에는 대청댐의 약 2.7배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 셈이다.
연인원 약 1,000만 명이 공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오마치 쪽에서 터널을 뚫던 중에는 물과 부서진 암반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파쇄대를 만나 공사가 한동안 막혔다.
길이 약 80m에 불과한 그 구간을 돌파하는 데만 7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조사와 건설 과정에서 17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전기버스를 타고 터널을 지나고, 댐 위를 걸으며 경치를 보고 있지만 이 모든 시설은 당시 사람들의 엄청난 노동과 희생 끝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댐을 바라보는 느낌도 조금 달라졌다.
“야…… 역시 우리 토목기술자의 위대함이여.”
토목기술자인 내 눈에는 단순한 관광지로만 보이지 않았다.
이 깊은 산속에 길을 내고, 터널을 뚫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우고, 물을 막아 발전까지 가능하게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했다.
사진으로 볼 때는 그저 큰 댐이었는데 직접 그 위를 걸어보고 역사를 알고 나니 왜 구로베댐이 일본 토목사의 상징처럼 여겨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더구나 주변 풍경도 기가 막혔다.
짙은 녹색의 산, 막 돋아난 연두색 신록, 그 사이로 이어지는 깊은 계곡, 그리고 그 뒤에 솟아 있는 하얀 설산.
인간이 만든 거대한 댐과 북알프스의 자연이 한눈에 들어왔다.
28. 전망대로 올라가는 끝없는 계단
댐을 건넌 뒤 안내판을 보니 위쪽으로 ‘댐 전망대’와 ‘방수 관람 스테이지’가 표시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다.
“전망대 올라가야지.”
그런데 계단을 보니 만만치 않았다.
산비탈을 따라 빨간 계단이 끝없이 이어졌다.
마님과 함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무로도 고원을 걷고, 유키노오타니 설벽도 걸었고, 계속해서 타고 걷기를 반복한 뒤라 다리가 슬슬 무거워질 때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구로베댐 전망대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한 계단,
또 한 계단.
계단을 오르다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았다.
올라갈수록 조금 전 우리가 걸어왔던 댐이 아래로 내려가고, 활처럼 휘어진 구로베댐의 모습이 점점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구로베호의 예쁜 물빛도 위에서 내려다보니 더욱 선명했다.
“야, 올라오길 잘혔다.”
힘은 들었지만 높이 올라갈수록 풍경이 그만큼 보답해주었다.
29. 표고 1,508m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구로베댐
마침내 전망대에 올라섰다.
‘黒部ダム 展望台休憩所
KUROBE DAM REST HOUSE
標高 1,508M’
표지판이 서 있었다.
댐 위가 표고 1,454m였으니 50m 넘게 더 올라온 셈이다.
그리고 여기서 내려다보니 구로베댐의 진짜 규모가 제대로 보였다.
활처럼 휘어진 거대한 댐의 곡선,
그 뒤를 가득 채운 구로베호의 물,
호수 양쪽을 감싸고 있는 초록빛 산,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하얀 설산까지.
아래에서 볼 때와는 또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이야…… 여기가 제대로네.”
짙은 산과 하얀 설산 사이에 푸른빛과 초록빛이 감도는 호수가 길게 들어앉아 있었다.
마님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마님 혼자도 찍고,
나도 찍고,
둘이 셀카도 찍었다.
나는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구로베댐을 찍었다.
아침부터 카메라와 휴대전화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눈앞에 이런 풍경이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오늘 하루 날씨가 도와준 것이 정말 고마웠다.
파란 하늘 아래 구로베호의 물빛도 선명했고 멀리 설산까지 깨끗하게 보였다.
알펜루트를 횡단하며 하루 종일 보아온 설산과 신록,
그리고 거대한 구로베댐과 구로베호가 한 장면 안에 모두 들어와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오길 정말 잘했다.
30. 다시 내려와 오기사와행 전기버스 승강장으로
전망대에서 충분히 구로베댐을 내려다본 뒤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올라올 때 힘들었던 계단을 이번에는 거꾸로 내려간다.
알펜루트 횡단도 이제 거의 마지막이다.
오기사와행 전기버스 승강장으로 가는 길은 우리가 올라왔던 길과 달랐다. 반대편 산속으로 이어지는 터널식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조금 전까지 파란 하늘 아래 구로베댐과 설산을 보고 있었는데 다시 콘크리트 터널 속으로 들어왔다.
통로 한쪽에는 물이 흘러나오는 곳도 있었다.
마님이 손을 내밀어 물을 만져봤다.
그렇게 터널을 따라 걸어 전기버스 승강장으로 향했다.
오기사와(扇沢)로 가는 전기버스 안내가 보였다.
전광판에는 우리가 탈 버스가 표시되어 있었다.
‘扇沢行 12:35発’
오기사와행 오후 12시 35분 출발.
시간이 조금 남아 승강장에서 잠시 기다렸다.
새벽부터 산을 오르고 눈길을 걷고 여러 교통수단을 갈아타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 이 산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교통수단 하나만 남았다.
31. 오후 12시 35분, 알펜루트 마지막 전기버스에 오르다
오후 12시 35분.
드디어 오기사와행 전기버스가 출발할 시간이 됐다.
승강장에는 흰색 차체에 붉은색 선이 들어간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앞에서도 사진을 한 장 남겼다.
나는 카메라를 멘 채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렸다.
“자, 이제 오기사와로 진격의 거인.”
오늘 아침 비조다이라에서 무로도로 올라갈 때는 내가 에렌, 마님이 미카사라고 했는데 벌써 알펜루트의 마지막 구간이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다시 터널이었다.
구로베댐과 오기사와를 잇는 산속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오늘 하루 참 별것을 다 타봤다.
다테야마역에서 시작해 여러 교통수단을 차례로 갈아타며 산 하나를 통째로 넘어왔다.
버스가 천천히 출발했다.
구로베댐을 뒤로하고 오기사와를 향해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32. 오후 12시 50분경, 오기사와에 도착하다
오후 12시 35분 구로베댐을 출발한 전기버스는 긴 간덴터널 속을 달렸다.
이번 터널은 느낌이 조금 달랐다.
이 터널을 빠져나가면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 횡단이 사실상 끝난다.
오후 12시 50분경.
전기버스가 오기사와(扇沢)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괜히 마음이 뿌듯했다.
“마님, 우리 진짜 넘어왔네.”
도야마 쪽 다테야마역에서 산으로 들어와 북알프스를 완전히 넘어 나가노현 오기사와까지 온 것이다.
그토록 기대했던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 횡단이 드디어 끝났다.
밖으로 나오니 조금 전까지의 설원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주변은 짙은 초록색이었다.
버스터미널 앞에는 여러 대의 버스가 서 있었고 주차장에는 자동차들이 빼곡했다.
산 위 무로도에서는 눈벽 사이를 걸었는데 불과 몇 시간 뒤 이곳에서는 신록이 한창이었다.
하나의 산 안에서 겨울과 봄을 모두 지나온 셈이었다.
이제 나가노로 간다.
33. 오기사와에서 잠시 숨을 돌리다
나가노행 버스 출발은 오후 1시 40분경이었다.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 버스 승차장을 확인했다.
안내판에는 나가노역과 시나노오마치역 방면 버스가 표시되어 있었다.
시간이 남아 터미널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2026年 05月25日’ 날짜가 들어간 알펜루트 포토스팟도 있었고 한쪽에는 커다란 곰 박제도 전시되어 있었다.
“야, 이런 놈 산에서 실제로 만나믄 큰일나겄네.”
벽에는 ‘고생하셨습니다. 알펜루트 마지막 매점입니다’라는 안내도 보였다.
정말 알펜루트의 끝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부터 계속 시간을 맞춰 움직였던 터라 잠시 쉬는 시간도 반가웠다.
34. 오후 1시 40분, 오마치의 산과 마을을 지나 나가노로
오후 1시 40분경 나가노행 버스에 올랐다.
이제 북알프스를 등지고 나가노로 가는 길이다.
오기사와를 벗어나자 산길이 이어졌다.
조금씩 고도가 낮아지면서 넓은 계곡과 초록색 산들이 나타났고 버스는 오마치온센쿄(大町温泉郷)를 지나 시나노오마치 시가지로 들어갔다.
창밖으로 붉은 지붕의 시나노오마치역(信濃大町駅)도 보였다.
시나노오마치를 지나자 다시 논과 밭, 작은 농가들이 이어졌다.
물이 찬 논과 초록빛 마을 뒤로는 아직 눈을 이고 있는 북알프스의 산들이 계속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 산에서 그렇게 내려왔는디도 아직 설산이 보이네.”
산 아래는 완전히 봄인데 멀리 높은 산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조용한 산촌과 작은 마을, 물길을 차례로 지나며 버스는 나가노를 향해 계속 달렸다.
한참 뒤 건물들이 점점 많아졌다.
버스 앞 모니터에 마침내
‘長野駅東口’
나가노역 동쪽 출구가 표시됐다.
길었던 산길이 끝나고 다시 도시로 들어왔다.
35. 오후 3시 20분경, 나가노역에 도착
오후 3시 20분경 나가노역 동쪽 출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역으로 걸어갔다.
조금 전까지 산과 논, 작은 마을 사이를 지나왔는데 이제 눈앞에는 커다란 JR 나가노역이 있었다.
우리가 탈 열차는 오후 3시 56분 쓰루가행 호쿠리쿠신칸센이었다.
승강장으로 올라갔다.
역명판에는 ‘長野 NAGANO’.
시간이 조금 남아 승강장에서 쿠키도 하나 먹었다.
잠시 뒤 우리가 탈 신칸센이 들어왔다.
이제 다시 도야마로 돌아간다.
36. 오후 3시 56분, 신칸센을 타고 다시 도야마로
오후 3시 56분.
쓰루가행 호쿠리쿠신칸센에 올랐다.
붉은색 계열 좌석이 이어진 객차에 마님과 자리를 잡았다.
하루 종일 걷고 이동한 뒤 푹신한 좌석에 앉으니 몸이 편안해졌다.
열차가 나가노역을 출발했다.
창밖으로 시가지와 산들이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갈 때는 하루 종일 북알프스를 직접 넘어왔지만 돌아오는 길은 신칸센이라 금세 지나갔다.
마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창밖도 바라보며 도야마로 돌아왔다.
오후 4시 55분경 도야마역에 도착했다.
11시간 걸려 도야마역에서 나가노역까지 알펜루트로 횡단한 거리를 신칸센으로 단 1시간만에 주파하여 돌아왔다.
신칸센의 위용이여
새벽에 이곳을 떠난 지 거의 12시간 만이었다.
37. 여행의 마지막 저녁, 스시 우미토야마
도야마역에 도착한 뒤 저녁을 먹으러 갔다.
오늘 저녁은 ‘鮨 海富山(うみとやま)’, 스시 우미토야마였다.
“오늘은 제대로 먹자.”
역시 일본에 왔으면 스시다.
테이블에는 여러 종류의 초밥이 차려졌다.
연어와 참치, 흰살생선 등 여러 가지 스시를 먹고 별도로 한 판을 더 주문했다.
바삭하게 튀긴 튀김도 곁들였다.
도야마에서 유명한 반딧불오징어도 먹었다.
조그만 몸집에 통째로 먹는 오징어인데 도야마를 대표하는 해산물 가운데 하나였다.
“역시 일본에서는 스시여.”
새벽부터 산을 넘고 눈길을 걸어 다닌 뒤라 더 맛있었다.
마님과 천천히 저녁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자기야, 오늘 날씨 진짜 잘 걸렸지?”
정말 그랬다.
어제 쿠로베 협곡에서는 비와 구름이어서 좋았고 오늘 다테야마에서는 쨍하게 맑아서 좋았다.
이번 여행은 날씨까지 우리 편이었다.
38. 다시 HOTEL JAL CITY TOYAMA로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객실에 들어오니 이제야 정말 모든 일정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시작한 긴 하루였다.
몸은 피곤했지만 기분 좋은 피곤함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를 바라던 날씨 속에서 제대로 넘어왔다.
내일은 고마쓰공항으로 가서 인천으로 돌아가면 된다.
씻고 짐을 정리한 뒤 편하게 쉬었다.
39. “마님, 이번 여행도 고생했수다.”
드디어 이번 여행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이번에도 언제나 옆에는 마님이 있었다.
내가 사진을 찍느라 한참을 서 있으면 기다려주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 또 서주고,
좋은 풍경이 나타나면 같이 감탄하고,
내가 이상한 포즈를 취하면 같이 웃었다.
오늘도 새벽부터 함께 일어나 하루 종일 북알프스를 넘어왔다.
“마님, 이번 여행도 고생했수다.”
이제 내일이면 일본을 떠난다.
고마쓰공항으로 가서 인천으로 돌아간다.
이번 여행도 이렇게 끝이 났다.
새하얀 다테야마의 설산과 유키노오타니,
푸른 구로베호와 거대한 구로베댐,
그리고 그곳을 마님과 함께 걸었던 기억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이번 여행도 참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