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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서재
  • 항일로드 2000㎞
  • 김종훈
  • 18,900원 (10%1,050)
  • 2025-07-22
  • : 7,595
아내와 함께하는 일본 알펜루트 여행기

여행 1일차, 2026.05.22.(금요일)


1. 항일로드 2000km의 시작

이번 여행을 계획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의 『임정로드 4000km』를 읽으면서부터였다.

책에는 중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책을 읽으며 언젠가는 그 길을 직접 찾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임정로드와 약산로드의 대부분은 중국 땅에 있어 마음먹은 대로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비교적 자주 여행하면서도 정작 우리 독립운동사의 현장을 제대로 찾아본 적이 없었다.

도쿄, 교토, 오사카,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미야기, 나가사키, 후쿠오카….

그동안 여러 차례 일본을 다녔으면서도 그 도시 어딘가에 남아 있는 우리의 역사를 모르고 지나쳐버린 곳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앞으로 일본을 여행할 때마다 가능하면 그곳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하나씩이라도 찾아가 보자고.

그 첫 번째가 가나자와였다.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 후 체포된 매헌 윤봉길 의사가 생의 마지막 밤을 보냈고, 결국 순국한 곳이 바로 가나자와였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의 후반부에는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에게 여행의 첫 목적지는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발자취였다.

5월 22일.

사랑하는 마님과 함께 그 첫발을 내디뎠다.


2. 자정에 집을 나서 인천공항으로

집을 나선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한밤중 고속도로를 달려 새벽 3시경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출발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잠에서 깬 뒤 터미널로 들어가 출국수속을 시작했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공항은 크게 붐비지 않았고 수속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진행됐다.

이번 여행에는 카메라도 단단히 챙겼다.

가나자와와 도야마의 거리, 구로베 협곡, 그리고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까지 제대로 담아오고 싶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준비했다.

인천공항에서 소주 ‘처음처럼’ 한 병을 샀다.

윤봉길 의사님을 찾아뵐 때 빈손으로 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타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께 한국에서 가져온 술 한잔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대한항공 KE2189편.

고마쓰공항으로 가는 오전 7시 30분 출발편이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3. 활주로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비행기

예정대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탑승구를 떠나 이륙을 위해 활주로 쪽으로 이동했다.

이제 곧 뜨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엔진 이상이었다.

이륙하기 위해 활주로까지 나갔던 비행기가 결국 다시 돌아가야 했다. 잠시 뒤 견인차가 와서 비행기를 끌고 갔다.

“아이고, 첫날부터 일정 뻐그러졌네.”

원래 오전 7시 30분이었던 출발 시각은 오전 10시 20분으로 밀렸다.

거의 세 시간 지연이었다.

가나자와에서 보내야 할 귀중한 오전 시간이 인천공항에서 사라져버렸다.

처음부터 계획이 틀어졌다.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그렇게 기다림 끝에 다시 비행기에 올랐고, 이번에는 무사히 일본을 향해 날아올랐다.

기내식도 먹고 창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구름 아래로 일본의 해안과 들판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비로소 멈췄던 여행이 다시 움직이는 것 같았다.


4. 자위대 전투기와 공룡이 반겨준 고마쓰공항

우여곡절 끝에 낮 12시 30분경 고마쓰공항에 도착했다.

착륙한 뒤 창밖을 바라보니 민간공항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활주로 건너편에 일본 항공자위대 군용기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고마쓰공항은 민간항공과 일본 항공자위대가 함께 사용하는 비행장이다. 그래서 민항기를 타고 도착하면서도 바로 옆 고마쓰기지의 군용기와 시설을 볼 수 있었다.

첫날부터 비행기 엔진 이상으로 세 시간 가까이 지연된 뒤 도착한 곳에서 전투기부터 마주하니 일반적인 관광공항에 도착한 것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런데 공항 안으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전혀 다른 녀석이 우리를 맞았다.

공룡이었다.

벽을 뚫고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커다란 공룡 한 마리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첫날부터 비행기 엔진 이상으로 세 시간 가까이 발이 묶여 지쳐 있던 우리를 보고

“인자 왔냐?”

하고 묻는 것 같았다.

뜻밖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고 자연스럽게 카메라부터 들었다.


5. 오후 1시 20분, 가나자와로

고마쓰공항 밖으로 나와 가나자와행 리무진버스를 탔다.

승차권은 1인 1,300엔.

오후 1시 20분경 고마쓰공항을 출발했다.

버스가 공항을 벗어나자 창밖으로 초여름의 호쿠리쿠 지방 풍경이 이어졌다.

물을 가득 댄 논에는 어린 모가 반듯하게 줄을 맞추고 있었고 낮은 집들과 농경지가 연이어 나타났다.

중간에는 바다를 바로 옆에 둔 대규모 공사현장도 지나갔다.

비행기가 늦어지면서 첫날 계획은 이미 크게 틀어졌지만, 이렇게 버스 창밖으로 일본의 논과 마을을 보고 있으니 그제야 일본에 들어왔다는 실감이 났다.

약 50분을 달려 오후 2시 10분경 가나자와역에 도착했다.


6. 하얏트 센트릭 가나자와에 짐을 풀다

가나자와역에 도착하자 우선 숙소부터 찾았다.

이날 묵을 곳은 하얏트 센트릭 가나자와(Hyatt Centric Kanazawa).

가나자와역에서 아주 가까웠다.

장거리 이동을 끝내고 캐리어를 끌고 한참 걸어야 하는 숙소가 아니라는 것부터 마음에 들었다.

객실 문을 열자 첫인상도 좋았다.

트윈베드와 소파,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도 답답하지 않을 정도로 방이 넓었다. 전체적으로 깔끔했고 시설도 쾌적했다.

자정에 집을 나와 새벽 3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비행기 고장으로 세 시간을 기다린 뒤에야 일본에 들어왔으니 이 넓고 쾌적한 방이 더욱 반가웠다.

하지만 아직 누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짐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돌린 뒤 다시 밖으로 나섰다.

이미 오전 일정은 날아갔지만 남은 시간이라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7. 가나자와역, 츠즈미몬과 매잡이 부녀

호텔을 나와 다시 가나자와역으로 향했다.

역 밖으로 나오자 가나자와를 상징하는 거대한 츠즈미몬이 눈앞에 나타났다.

굵은 목재가 서로 비틀리듯 솟아올라 커다란 지붕을 받치고 있었고 뒤편으로는 유리와 철골로 된 모테나시 돔이 이어졌다.

역 앞에는 물줄기로 숫자와 글자를 만들어내는 재미있는 분수도 있었다.

시각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물줄기가 모여 ‘ようこそ金沢へ’, ‘가나자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글자를 만들어냈다.

안내석을 읽어보니 단순한 분수도 아니었다.

이곳에는 에도시대부터 가나자와 시내를 흘러온 다쓰미 용수의 물을 끌어다 사용하고 있었다.

가나자와에는 사이가와와 아사노가와 두 하천 외에도 총연장 약 150km에 이르는 55개의 용수가 도시를 그물처럼 흐른다고 한다.

그저 역 앞의 현대적인 분수인 줄 알았는데 그 물줄기 속에도 오래된 가나자와의 역사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역 앞에서 또 재미있는 광경을 만났다.

매를 데리고 나온 아저씨가 딸과 함께 사람들에게 매를 보여주고 있었다.

두꺼운 장갑 위에 올라앉은 매가 날개를 활짝 펼치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멈춰섰다.

고마쓰공항에서는 공룡이 우리를 맞더니 가나자와에 오자 이번에는 매다.

여행 첫날부터 동물들과의 인연이 제법 많았다.


8. 오미초시장을 지나 오야마신사로

가나자와역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보도에는 오미초시장까지 370m라는 안내표시가 붙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나자와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오미초시장이 나타났다.

당초 계획에는 이곳도 제대로 둘러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전에 비행기가 세 시간이나 지연되면서 여유가 없었다.

가나자와성과 겐로쿠엔까지 돌아봐야 했기 때문에 시장 안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구경할 시간이 없었다.

결국 오미초시장은 그냥 지나갔다.

조금 아쉬웠지만 여행은 때로 버릴 것을 버려야 한다.

오미초시장을 지나 계속 걷다가 예정에는 없던 오야마신사에 들렀다.

가나자와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으니 그냥 지나치기 아까웠다.


9. 오야마신사, 그리고 연잎 위의 개구락지들

오야마신사는 가가번의 초대 번주 마에다 도시이에를 모신 신사다.

입구부터 평범한 일본 신사와는 조금 달랐다.

특히 독특한 모습의 신문은 일본 전통양식에 중국과 서양 건축의 요소가 섞인 독특한 건축물이었다.

경내에는 마에다 도시이에의 기마상도 있었고, 울창한 나무와 연못, 작은 다리 등이 어우러져 있었다.

신사라기보다 작은 정원에 들어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내 눈길을 가장 끈 것은 따로 있었다.

커다란 연잎 모양의 수반 위에 개구락지 세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한 녀석은 몸을 앞으로 잔뜩 내밀고 있고, 가운데 녀석은 입을 쩍 벌리고 금방이라도

“개굴!”

하고 울어댈 것 같은 표정이었다.

옆 녀석도 연잎 가장자리에 매달려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근엄한 신사 안에 이런 익살스러운 개구락지들이 자리하고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마님과 한참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었다.

유명한 문화재와 거창한 건축물만 여행의 기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정에도 없던 신사에 들어갔다가 만난 개구락지 세 마리가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는다.


10. 가나자와성, 아름다운 성곽 뒤에 숨은 일본군 제9사단

오야마신사를 나와 가나자와성으로 향했다.

지금의 가나자와성은 잘 복원된 성곽과 넓은 잔디밭, 정원으로 관광객을 맞는다.

그러나 이곳에는 또 하나의 역사가 겹쳐 있다.

메이지유신 이후 가나자와성은 일본 육군의 군사시설로 사용됐고 제9사단의 거점이 됐다. 성 안에는 제9사단 사령부가 자리하고 있었다.

제9사단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참전했고 한반도에도 주둔하며 우리 민족을 짓밟았다. 1932년 제1차 상하이사변 때에는 상하이에 투입됐다.

당시 제9사단을 지휘했던 사람이 우에다 겐키치 중장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윤봉길 의사의 역사와 이어진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은 일본군 수뇌부가 모여 있던 단상을 뒤흔들었다.

상하이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은 중상을 입고 이후 사망했고, 제9사단장 우에다 중장 역시 크게 다쳤다.

그리고 의거 후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은 윤 의사가 그해 12월 마지막으로 이송되어 온 곳 역시 제9사단의 본거지였던 가나자와였다.

이 기막힌 연결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윤 의사를 굳이 제9사단의 본거지인 가나자와까지 옮긴 데에는 복수의 의미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것은 내가 이곳을 걸으며 떠올린 생각이다. 현재 확인되는 사료에는 가나자와 이송의 이유를 ‘우에다 중장에 대한 복수’라고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11. 윤봉길 의사가 마지막 밤을 보낸 곳

가나자와성을 걸으며 내가 가장 찾아보고 싶었던 곳에 도착했다.

윤봉길 의사가 수감됐던 가나자와 위수구금소 터였다.

1932년 12월 18일 윤 의사는 오사카에서 가나자와로 이송돼 제9사단 위수구금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이곳에서 생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 날인 12월 19일 아침, 윤 의사는 이곳을 떠나 당시 이시카와현 우치카와무라 미쓰코지 일대의 육군 작업장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총살형으로 순국했다.

스물다섯 살이었다.

순국 후 유해는 노다야마 묘지 일대에 암장됐다.

해방 뒤인 1946년에야 유해가 발굴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윤 의사가 마지막 밤을 보냈던 위수구금소 터를 찾아가 보니 지금은 화장실이 들어서 있었다.

참….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관광객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화장실을 드나들고 있었고, 주변은 너무나 평온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스물다섯 살의 청년이 다음 날이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마지막 밤을 보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마음이 참 묘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인천공항에서 사온 ‘처음처럼’ 한 병이 문득 생각났다.

아직 윤 의사님께 술을 올릴 곳은 남아 있었다.

가나자와성은 여행지였지만 내게는 이날부터 다른 의미의 장소가 됐다.

드디어 윤 의사님 참배길의 일부가 시작된 것이다.


12. 이시카와몬을 나서 겐로쿠엔으로

위수구금소 터를 마지막으로 가나자와성을 나왔다.

이시카와몬을 통과해 밖으로 나오자 바로 맞은편에 겐로쿠엔이 있었다.

참 기막힌 위치였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윤 의사가 마지막 밤을 보낸 일본군 주둔지가 있었고, 맞은편에는 일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정원 가운데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윤 의사의 마지막 밤을 생각하며 마음이 먹먹했는데 몇 걸음 옮기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윤 의사님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뒤로하고 겐로쿠엔으로 향했다.


13. 일본 3대 정원, 겐로쿠엔

입구의 나무 간판에는 ‘특별명승 겐로쿠엔(兼六園)’이라고 적혀 있었다.

겐로쿠엔은 가나자와성과 나란히 자리한 다이묘 정원으로, 일본 3대 정원의 하나로 꼽힌다. 가가번을 다스린 마에다 가문이 여러 세대에 걸쳐 조성하고 가꾼 정원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정원을 참 기가 막히게 꾸며놓았다.

연못과 물길, 오래된 소나무와 고목, 작은 다리와 석등, 이끼 낀 땅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분명 사람이 오랜 세월 손질한 곳인데도 억지로 꾸민 느낌이 거의 없었다.

나무 한 그루와 돌 하나까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풍경 속에 녹아 있었다.

철쭉도 한창이었다.

둥글게 다듬어진 철쭉나무에는 분홍빛 꽃이 빼곡하게 피어 있었고, 짙은 녹색의 소나무와 연못 사이에서 유난히 선명했다.

굵은 소나무 가지들은 물 위로 길게 뻗어 있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 가지마다 나무 지지대를 받쳐놓았는데, 그 모습조차 정원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다.

연못 건너편으로 오래된 건물들이 비치고, 물가를 따라 걷다 보면 작은 다리와 숲길이 다시 나타났다.

조금 걸으면 또 다른 풍경이 나왔다.

정원이 한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걷는 방향과 위치에 따라 계속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마님과 나도 연못 앞에서 사진을 남겼다.

높은 곳에서는 가나자와 시내도 내려다보였다.

조금 전까지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흔적을 따라 무거운 마음으로 걸었던 것이 사실인데, 눈앞의 정원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대비가 오히려 마음을 더 복잡하게 했다.

한쪽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과 침략의 역사가 있었고, 그 바로 옆에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가꾸었다.

아름답다는 생각과 씁쓸하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그래도 정원 자체만 놓고 보면 역시 이름값을 했다.

일본 3대 정원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14. 일본에 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스타벅스

겐로쿠엔을 충분히 둘러본 뒤 가나자와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역에 도착하자 그냥 숙소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스타벅스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에 오면 이상하게 스타벅스를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익숙한 초록색 로고인데, 일본 여행 중에 만나면 괜히 한 번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어진다.

결국 가나자와역 스타벅스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

자정부터 시작된 긴 하루였다. 비행기 고장으로 인천공항에서 세 시간을 허비했고, 일본에 도착해서는 가나자와 시내를 쉬지 않고 걸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으니 긴장이 조금 풀렸다.

마님도 이제는 완전히 지친 표정이었다.

이날 마님과 함께 가나자와성과 겐로쿠엔 등을 돌아본 기록은 총 9.8km였다.

이동시간은 2시간 49분 39초, 평균속도는 3.9km/h였고, 최고점은 170m, 누적 상승고도는 283m였다.


15. 가나자와역 도시락으로 때운 저녁

스타벅스를 나와 가나자와역에서 저녁으로 먹을 도시락 두 개를 샀다.

다시 밖으로 나가 식당을 찾아다닐 기운도 없었다.

도시락을 들고 하얏트 센트릭 가나자와로 돌아왔다.

객실에 들어와 마님과 마주 앉아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웠다.

거창한 저녁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정에 집을 나선 뒤 비행기 지연에, 고마쓰공항에서 가나자와까지 이동하고, 오미초시장과 오야마신사, 가나자와성, 겐로쿠엔까지 돌아다닌 뒤 먹는 저녁이었다.

마님은 이미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손으로 얼굴을 받친 채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오늘 하루 얼마나 고단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

이제 마님에게는 오늘 일정이 끝났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한 곳이 남아 있었다.


16. 다시 혼자 길을 나서다 ― 윤봉길 의사 유해안치소 터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은 뒤 나는 혼자 다시 숙소를 나섰다.

마님은 방에서 쉬게 하고, 윤봉길 의사님의 유해가 한때 안치되었던 장소를 찾아가 보기 위해서였다.

낮에 가나자와성의 위수구금소 터를 찾아가 윤 의사님이 생의 마지막 밤을 보낸 자리를 확인했다.

그것만 보고 하루를 끝내기에는 마음 한구석에 허전함이 남아 있었다.

윤 의사님이 순국하신 뒤 그 육신이 거쳐간 자리 역시 직접 찾아보고 싶었다.

유해안치소로 향하기에 앞서 가나자와역에 먼저 들렀다.

다음 날 아침 찾아갈 곳은 윤 의사님이 순국하신 미쓰코지의 옛 육군 연습장이었다. 처음 가보는 곳인 데다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미리 승강장을 확인해두는 편이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역 앞 버스승강장을 하나씩 확인했다.

미쓰코지 방면으로 가는 21번 버스.

타는 곳은 9번 승강장이었다.

“오케이. 내일은 여기서 타믄 되겄네.”

9번 승강장의 위치를 눈에 확실히 익혀두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다음 날 아침부터 버스 타는 곳을 찾아 우왕좌왕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사전정찰이었다.

내일 윤 의사님의 순국지를 찾아가는 첫 동선까지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제야 가나자와역을 떠나 유해안치소 터를 향해 걸었다.

낯선 가나자와의 저녁거리를 혼자 걸었다.

낮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도시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차분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윤 의사님의 유해안치소가 있었던 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옛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은 병원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자동차가 드나드는 평범한 주차장.

이곳이 윤봉길 의사님의 유해가 한때 안치되었던 자리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낮에 찾아간 위수구금소 터가 지금은 화장실로 사용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번에는 유해안치소 터가 병원 주차장으로 남아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이 없어지고 도시의 모습은 바뀌었지만, 그곳에서 있었던 역사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자리에 직접 서보니 이런 장소를 찾아보고 기록하는 일이 더욱 의미 있게 느껴졌다.

한동안 그 자리를 바라보다가 숙소를 향해 돌아섰다.


17. 천하영웅 윤봉길 의사를 찾아가는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숙소에서 유해안치소 터를 찾아갔다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이날 저녁 혼자 이동한 거리는 6.3km.

이동시간은 1시간 49분 54초, 평균속도는 4.2km/h였고, 최고점은 132m, 누적 상승고도는 213m였다.

낮에 마님과 함께 가나자와성과 겐로쿠엔 등을 돌아본 9.8km의 기록과는 별개의 거리였다.

하루 종일 걸어 이미 몸은 피곤했지만 이상하게 이 길만큼은 그냥 걸어야 할 것 같았다.

윤 의사님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내일의 일정을 생각했다.

버스를 탈 가나자와역 9번 승강장도 이미 확인해두었다.

내일은 그곳에서 21번 버스를 타고 윤봉길 의사님께서 순국하신 미쓰코지의 옛 육군 연습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일제가 의사님의 유해를 몰래 묻었던 노다야마 암장지도 찾아갈 예정이다.

인천공항에서부터 챙겨온 ‘처음처럼’ 한 병도 그때 비로소 꺼내게 될 것이다.

윤 의사님께 직접 술 한 잔 올리러 간다.

항일로드 2000km의 시작.

가나자와에서의 첫날이 그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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