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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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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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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하는 일본 북알프스 여행기, 끝.

여행 4일차, 2026.07.20.(월요일)

1. 새벽 4시, 월드컵 결승전으로 시작한 마지막 날

여행 마지막 날은 새벽 4시부터 시작됐다.

2026 FIFA 월드컵 결승전, 스페인과 아르헨티나의 경기였다.

이번 월드컵이 시작되고 나서야 나는 마님이 이렇게 월드컵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 여행을 와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대회가 시작한 뒤 집에서도 거의 매일 경기를 챙겨봤다. 특히 메시와 아르헨티나를 응원하는 팬이었다.

반면 나는 이번 대회 경기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결승전이 처음이었다.

막상 경기를 보니 내 눈에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몸이 전체적으로 무거워 보였다. 스페인은 젊은 선수들이 계속 움직이며 짧게 공을 돌렸지만 아르헨티나는 긴 패스가 많았고, 공격이 풀리지 않으면 다시 골키퍼에게 공을 돌리는 시간이 길었다.

“아르헨티나는 왜 이렇게 안 뛰어. 스페인은 발발이처럼 뛰어댕기는디.”

마님이 응원하는 팀이니 나도 당연히 아르헨티나를 응원했다. 거기에 아르헨티나가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역사까지 떠올리니, 옛 지배국과 옛 식민지가 월드컵 결승에서 맞붙는 구도도 묘하게 아르헨티나 쪽에 마음이 더 가게 했다. 아르헨티나는 1816년 에스파냐 왕정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경기는 영 시원치 않았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한 명이 퇴장당한 뒤 연장전까지 가서 0대 1로 석패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부터 마님은 응원하던 아르헨티나가 지는 것을 봐야 했다.


2. 마지막 호텔 조식, 김치 한 조각이 아쉬운 밥상

경기가 끝난 뒤 오전 7시가 조금 넘어 호텔 2층 식당으로 내려가 조식을 먹었다.

도큐 스테이 히다 다카야마 무스비노유에서 먹는 마지막 아침이었다.

달걀말이와 생선, 몇 가지 반찬, 미소된장국을 가져오고 흰밥을 한 그릇 담았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쌀밥 자체는 꽤 맛있다. 이날 아침밥도 윤기가 돌고 밥맛이 좋았다.

그런데 역시 내 입맛에는 밥하고 같이 먹을 만한 반찬이 조금 부족했다.

“김치만 있으믄 딱인디.”

이럴 때는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아침을 먹은 뒤 마님은 호텔 대욕장에서 목욕을 하며 쉬겠다고 했다. 전날 노리쿠라다케 산행까지 마쳤으니 마님에게는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혼자 마지막 아침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히다노사토(飛驒の里)였다.


3. 혼자 나선 마지막 아침 산책

7시 40분쯤 호텔을 나섰다.

아침이라고는 하지만 햇볕이 벌써 강했다. 히다노사토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가기로 했다.

호텔이 다카야마역 바로 옆이니 다카야마역을 기준으로 보면 히다노사토까지 도보거리는 약 2.2km, 걸어서 대략 30~35분 정도다. 단순 왕복으로만 계산하면 약 4.4km에 걷는 시간은 1시간~1시간 10분 정도다.

호텔 주변에는 머큐어 호텔과 다카야마 오완 같은 숙박시설이 보였고, 조금 더 걸어가자 다카야마역과 철길도 내려다보였다.

도심을 벗어나면서 풍경은 조금씩 달라졌다.

노히버스 차고지도 지나갔다.

초록색 무늬가 들어간 노히버스들이 여러 대 줄지어 서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참 신세를 많이 진 녀석들이었다.

가미코치로 갈 때도, 히라유에서 움직일 때도, 노리쿠라다케로 오갈 때도 노히버스를 이용했다. 여행의 중요한 이동마다 이 버스가 함께했다.

차고지에 가지런히 서 있는 녀석들을 보니 괜히 정이 갔다.

“니들 덕분에 여기저기 잘 댕겼다.”

이제 여행을 마치고 다카야마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사흘 동안 그렇게 신세를 졌던 노히버스 녀석들과 헤어지는 것마저 조금 아쉬웠다.

다카야마역 주변의 현대적인 건물과 상가를 지나자 곧 주택가와 작은 수로가 이어졌다.

그 뒤로는 논과 밭이 나타나고, 아침햇살을 받은 벼가 선명한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다카야마의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났는데도 금세 산촌 분위기가 났다.

길가에는 오래된 목조 창고가 있었고, 집과 논 사이로 좁은 수로가 흐르고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집과 논, 산이 이어지는 모습이 한가로웠다.

그러다 도로 안내표지판에서 반가운 글자를 발견했다.

백천향(白川郷), 시라카와고.

지난해 1월 겨울여행 때 다녀왔던 곳이다. 눈 덮인 합장촌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전혀 다른 계절에 다카야마 외곽을 걷다 도로표지판에서 그 이름을 다시 보니 반가웠다. 백천향, 시라카와고.

“어, 백천향이네.”

이번에는 그쪽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지만 표지판의 ‘白川郷’ 세 글자만으로도 지난해 여행의 장면들이 잠깐 떠올랐다.

조금 더 걸어가다 이번에는 무궁화꽃을 만났다.

일본의 산골 마을을 걷다가 뜻밖에 무궁화를 보니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보던 꽃인데 이국땅에서 만나니 느낌이 전혀 달랐다. 멀리 일본에 와서 우리나라 꽃을 마주하니 괜스레 반갑고 감개가 무량했다.

아침 산책이라고 하기에는 날씨가 벌써 꽤 더웠지만, 이런 동네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4. 문학산책로에서 만난 이노우에 야스시

히다노사토로 이어지는 길에서 히다민속촌 문학산책로(飛驒民俗村 文学散歩道) 안내판을 만났다.

안내판에는 다카야마와 히다 지역에 인연이 있는 문인들의 문학비가 산책로를 따라 세워져 있었다.

안내판에 적혀 있는 문인은 모두 여덟 명이었다.

후쿠다 유사쿠(福田夕咲), 하야후네 치요(早船ちよ), 에마 슈(江馬修), 에나쓰 미요시(江夏美好), 다나카 스미에(田中澄江), 오도리 유키오(小鳥幸男), 다키이 고사쿠(瀧井孝作),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

대부분 나에게는 낯선 이름이었지만 그중 하나는 바로 알아봤다.

이노우에 야스시.

그의 작품은 딱 한 권, 『둔황』을 오래전에 감명 깊게 읽었다.

주인공은 송나라 사람 조행덕(趙行徳)이다. 과거시험에 실패한 조행덕이 우연히 서하 여인과 인연을 맺고 서하문자를 접하면서 서역으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주왕례(朱王礼), 서하의 이원호(李元昊) 등과 얽히며 전쟁과 권력의 소용돌이를 겪고, 점차 둔황의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은 것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둔황의 방대한 경전과 문서들이 어떻게 남게 되었는지를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을 엮어 풀어냈다는 점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다카야마의 아침 산책길에서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의 작가를 다시 만났다.

여행하다 보면 이런 우연한 만남도 생긴다.


5. 히다노사토, 실제 살던 집 안으로 들어가다

오전 8시 30분 무렵 히다민속촌 히다노사토(飛驒民俗村 飛驒の里)에 도착했다.

입구 안내판에 적힌 관람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운영시간 08:30~17:00, 연중무휴
입장료 성인 700엔, 초·중학생 200엔

입장료 700엔을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히다노사토는 단순히 옛날 집 모양을 새로 만들어놓은 민속촌이 아니었다. 히다 지방에서 실제 사람들이 살았던 전통가옥을 옮겨 보존한 야외민속박물관이다.

근대화와 댐 건설, 산촌 인구 감소, 생활방식의 변화로 오래된 민가들이 철거되거나 사라질 처지에 놓이자 보존가치가 있는 가옥들을 이곳으로 옮겨 복원했다. 사라질 뻔했던 실제 집들을 한곳에 모아 히다 산촌의 생활문화를 함께 보존한 곳인 셈이다.

입구를 지나자 고아미 연못 주변으로 초가지붕을 얹은 집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여름의 짙은 녹음 속에 오래된 집들이 흩어져 있었고, 연못 주변과 초가지붕에는 칠석 장식이 매달려 있었다.

고아미 연못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 갓쇼즈쿠리 가옥들을 보니 시라카와고의 축소판처럼 보였다.

나는 원래 갓쇼즈쿠리, 즉 합장조 가옥과 합장촌을 좋아한다.

지난해 시라카와고에 갔을 때도 마을 풍경 자체가 무척 좋았다. 그때는 실제 가옥 안을 제대로 들어가 보지 못했다.

히다노사토에서는 문이 열린 집은 신발을 벗고 직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일부 가옥은 2층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이게 특히 마음에 들었다.

밖에서는 거대한 삼각형 초가지붕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그 지붕 아래에 어떤 생활공간을 만들고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6. 합장조 가옥의 속살을 보다

특히 구 니시오카가 주택(旧西岡家住宅)이 기억에 남았다.

안내판에 따르면 시라카와고 가즈라 지역에 있던 실제 집으로, 에도시대 후기에 지어진 합장조 가옥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굵은 나무기둥과 보가 전체 구조를 받치고 있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목재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지붕 안쪽에서는 굵은 새끼줄로 목재를 단단히 묶어놓은 부분이 그대로 보였다.

못이나 금속철물에 의존하지 않고 목재와 새끼줄을 이용해 큰 지붕구조를 만들어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2층까지 올라가봤다.

급경사의 지붕 아래인데도 내부에는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있었고, 이곳에서는 누에를 길렀다.

양잠에 사용했던 시설과 도구, 옛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지붕 아래쪽에는 판을 촘촘히 깔아 누에를 치던 공간이 있었고, 통풍과 채광을 위한 구조도 보였다.

농경지가 넉넉하지 않은 산간지역에서 집의 상층부까지 생업공간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7. 이로리부터 농기구, 소 외양간과 똥통까지

집 안을 돌아다니는 재미가 상당했다.

한가운데에는 이로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떤 집에서는 지금도 이로리에 실제 불을 피우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기둥과 천장 아래에서 작은 장작불이 타고 있었고, 그 위에는 솥을 걸 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주위로는 사람들이 둘러앉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집 안에는 다다미방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짚으로 만든 옷과 신발, 바구니, 농기구, 목재 운반도구, 눈길에서 사용하던 썰매 등이 곳곳에 전시돼 있었다.

농기구도 상당히 다양했다.

써레와 비슷한 도구, 괭이, 목재를 운반하던 장비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눈이 많은 지역답게 짐과 목재를 실어 나르던 썰매도 보였다.

집 옆 외양간에는 소 모형도 만들어놓았다.

“소도 집에서 같이 키웠구먼.”

더 돌아보니 옛 화장실과 분뇨를 모으던 시설까지 남겨놓았다.

“똥통도 있네. ㅋㅋ”

깨끗하게 꾸민 옛집만 보여주는 곳이 아니었다.

밥을 짓고, 불을 피우고, 누에를 치고,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고, 배설물을 처리했던 공간까지 실제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다미방과 게다 같은 옛 신발, 각종 생활도구까지 함께 보고 있으니 당시 사람들이 이 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가 훨씬 구체적으로 느껴졌다.


8. 눈의 고장 히다에서 살아가는 방법

가옥들을 둘러보다 보니 눈 많은 히다에서 살아가기 위해 집과 생활방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자연스럽게 보였다.

긴 겨울을 보내려면 눈에 견딜 수 있는 지붕뿐 아니라 땔감을 마련하고 목재를 옮기는 방법, 농사를 짓기 어려운 계절에 생계를 이어가는 방법도 필요했다.

양잠이 집의 위층까지 올라간 것도 그런 생활의 한 모습이었고, 목재와 짚으로 만든 여러 생활도구 역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한 결과였다.

밖에서 보는 합장조 가옥이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면, 안에서 보는 합장조 가옥은 눈 많은 산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낸 생활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종루와 신사, 도리이도 있었고, 고아미 연못 건너편에서는 초가지붕 집들이 숲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시라카와고가 지금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합장촌 전체의 풍경을 보는 곳이라면, 히다노사토는 가옥 안으로 직접 들어가 구조와 생활공간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곳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나한테는 이 점이 상당히 좋았다.


9. 관람시간 40~50분, 시간이 부족해 남은 아쉬움

문제는 시간이었다.

집 하나만 제대로 보려고 해도 1층을 살피고 2층까지 올라가 지붕구조와 전시된 생활도구를 하나하나 봐야 했다.

그런데 이날은 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호텔로 돌아가 체크아웃을 해야 했다.

짐은 아침에 일어나서 이미 거의 다 정리해놓은 상태였지만, 돌아가 샤워도 해야 하고 남은 물건도 챙겨야 했다.

결국 히다노사토 관람시간은 40~50분 정도였다.

들어가 보지 못한 집도 많았고, 들어간 집에서도 안내판과 전시물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다.

그게 아쉬웠다.

나는 원래 이런 옛집을 좋아한다.

특히 일본 북알프스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산간지역에서 사람들이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어떤 집을 만들고,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 재미있다.

시라카와고에서는 제대로 하지 못했던 집 내부 관람을 히다노사토에서는 해볼 수 있었다.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 더 천천히 보지 못한 것이 더욱 아쉽게 남았다.


10. 한여름 다카야마의 더위, 스타벅스를 거쳐 호텔로

히다노사토를 나와 호텔 방향으로 다시 걸었다.

아침 산책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아침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더웠다.

햇볕이 따갑고 그늘을 벗어나면 열기가 그대로 몸으로 올라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다시 주택가와 논길을 지났다.

수로에는 풀이 무성했고, 파란 나팔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길에서 맞은편으로 혼자 걸어오던 서양인 여성 여행자를 만났다.

눈이 마주치자 먼저 밝게 인사를 했다.

“Hello!”

나도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별것 아닌 한마디였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모르는 여행자와 이렇게 인사를 주고받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스타벅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땀이 잔뜩 났다.

매장에 있던 직원들은 모두 젊은 여직원들이었는데 하나같이 친절했고, 무엇보다 인사성이 너무 밝았다.

들어갈 때부터 주문하고 나올 때까지 마주치는 직원들마다 환한 표정과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상큼하고 발랄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아가씨들이었다.

억지로 친절한 표정을 짓는 느낌이 아니라 매장 전체 분위기 자체가 밝았다. 뜨거운 햇볕 아래 한참을 걷고 들어갔는데 그렇게 환하게 인사를 받으니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을 마님 것은 그란데로 주문했다.

스타벅스에 앉아 마신 것은 아니었다.

커피 두 잔을 받아 들고 그대로 호텔을 향해 다시 걸었다.

10시가 되기 전에 호텔에 도착했다.

마님은 대욕장에서 목욕도 하고 쉬고 있었고, 나는 히다노사토까지 왕복으로 걸어갔다 온 덕분에 완전히 땀범벅이었다.

이날 아침 산책을 기록한 자료를 확인해보니 총거리 7.5km, 소요시간 2시간 15분 04초, 평균속도 3.4km/h였다. 히다노사토를 향해 올라갔다 내려온 길답게 최고고도 709m, 총 획득고도 228m도 기록돼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이라고 가볍게 나선 산책이었지만, 막상 기록을 놓고 보니 꽤 제대로 걸었다.

커피를 내려놓고 곧바로 샤워부터 했다.

그렇게 다카야마에서의 마지막 아침 일정이 끝났다.


11. 체크아웃, 다카야마와 작별하다

샤워를 하고 아침에 미리 정리해놓은 짐에 남은 물건들을 마저 챙겼다.

사흘 동안 머물렀던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가미코치와 노리쿠라다케를 오갈 때 계속 이곳으로 돌아왔고, 아침마다 이곳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숙소를 나서니 이제 정말 여행이 끝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카야마역으로 향했다.

역 앞 광장 분수대에는 비둘기 두 마리가 물속에 들어가 있었다.

녀석들도 더웠던 모양이다.

사람만 더운 게 아니었다.

분수대 물속에 발을 담그고 돌아다니는 비둘기들을 보니 웃음이 났다.


12. 특급 히다 8호, 산을 내려가다

우리가 탈 열차는 특급 히다 8호였다.

다카야마 11시 35분 출발, 나고야 도착 예정시각은 14시 04분.

좌석은 8호차 14C와 14D였다.

운임과 특급요금을 포함해 두 사람 표가 각각 6,340엔이었다.

플랫폼으로 내려가니 특급 히다 8호는 이미 들어와 얌전히 대기하고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짐을 끌고 온 승객들도 하나둘 열차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출발시간이 되어 열차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다카야마에서 나고야까지 다시 산을 내려가는 길이었다.

차창 밖으로는 논과 마을, 산이 계속 이어졌다.

강가에서는 물속에 들어가 릴낚시를 하는 사람도 보였다.

큰 바위 사이로 물살이 세게 흐르는데, 한 사람이 물속에 서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야, 이렇게 더우니께, 저 션헌 물에 들어가 낚시를 허니 을매나 좋을까나? ㅎㅎ”

철교와 작은 마을, 산골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13. 기후를 지나며 다시 만난 국보 이누야마성

열차가 기후 주변으로 내려오면서 풍경은 점점 도시로 바뀌었다.

그러다 달리는 열차의 차창 너머로 낯익은 성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국보 이누야마성(犬山城)이었다.

지난해 1월에 직접 다녀왔던 곳이다.

이누야마성은 1537년 오다 노부나가의 숙부인 오다 노부야스(織田信康)가 기존 기노시타성을 옮겨 현재의 위치에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기소강을 사이에 두고 오와리와 미노가 맞닿는 전략적 요충지였던 만큼 전국시대에는 여러 차례 전투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옛 모습을 간직한 일본의 현존 12천수 가운데 하나이며, 천수는 국보로 지정돼 있다.

지난해 찾아갔을 때는 성 아래 성하마을을 지나 직접 천수각까지 올라갔다.

천수각 안의 계단은 좁은 데다 경사도 상당히 급했다. 거의 기어오른다는 느낌으로 가파른 나무계단을 타고 한 층 한 층 올라가 마지막 꼭대기에 닿았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올라간 뒤 밖으로 나서는 순간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발아래로는 이누야마 성하마을이 내려다보이고, 성 바로 북쪽 절벽 아래로는 기소강(木曽川)이 넓게 흘렀다. 강 너머로는 기후 쪽 땅이 펼쳐지고 멀리 기후성 방향까지 시야가 이어졌다.

높은 천수각 위에서 사방으로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정말 장쾌하고 시원했다.

그러면서 문득 지금 내가 서 있던 곳이 단순히 전망 좋은 관광지가 아니라 전국시대의 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기소강 건너에서 적군이 강을 건너 공격해오고, 성 아래에서는 이를 막아내려는 군사들이 뛰어다녔을 것이다.

잠시 상상을 하고 있으니 강을 건너오는 적들의 함성과 성을 지키는 군사들의 고함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그때 그렇게 천수각 꼭대기에서 내려다봤던 이누야마성을 이번에는 기차를 타고 가다 차창 너머로 멀리서 다시 만난 것이다.

“자기야, 저기 이누야마성이네. 작년에 우리 올라갔었자너”

작년에 내 발로 성하마을을 지나 천수각 꼭대기까지 올라갔던 성을 이번 여행에서는 달리는 기차의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며 보게 되니 더욱 반가웠다.

같은 장소를 다른 계절, 다른 위치, 다른 방식으로 다시 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14. 나고야에서 먹은 마지막 일본 점심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나고야역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JR 나고야 다카시마야 13층으로 올라갔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돈가스 전문점 게이테이(恵亭)였다.

나는 미소 히레카츠를 주문했다. 2,080엔.

마님은 로스카츠 정식을 주문했다. 1,800엔.

합계 3,880엔이었다.

나고야니까 마지막 점심으로 미소카츠를 먹는 것도 괜찮았다.

두툼한 돈가스에 진한 미소소스가 올라갔다.

아침부터 히다노사토까지 걸어갔다 오고, 열차를 타고 산을 내려왔으니 점심도 제법 맛있게 먹었다.


15. 다시 뮤스카이를 타고 중부국제공항으로

점심을 먹은 뒤 메이테쓰 나고야역으로 이동했다.

공항으로 가는 뮤스카이 시간표를 확인했다.

15시 49분 출발하는 뮤스카이가 있었다.

열차를 타고 중부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여행 첫날에도 이 열차를 타고 공항에서 나고야로 들어왔는데, 나흘 만에 반대방향으로 다시 타게 됐다.

나고야 도심을 빠져나가자 창밖으로 다시 바다와 항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중부국제공항은 바다 위 인공섬에 있는 공항이라 열차가 공항으로 접근할수록 주변 풍경이 완전히 바뀐다.

바다와 항구, 작은 배들이 보였고, 공항섬에 가까워질수록 수면이 넓게 펼쳐졌다.

멀리 바다 위로 작은 배가 달리며 흰 물보라를 만들고 있었다.


16. 중부국제공항, 여행의 마지막 대기

공항에 도착해 출국수속을 했다.

탑승할 항공편은 진에어 LJ348편. 인천행이었다.

내가 흔히 ‘청바지항공’이라고 부르는 진에어였다.

이번 항공편은 대한항공과 공동운항으로 표시된 편이기도 했다.

예정 출발시각은 오후 7시였다.

탑승구 전광판에는 18시 40분부터 탑승을 시작한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 안에서 기다렸다.

창밖으로 해가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붉은 햇빛이 번지더니 주기장에 세워진 일본항공 여객기 뒤편으로 해가 걸렸다.

며칠 동안 그렇게 맑고 뜨거웠던 여름 하늘이 여행을 마치는 순간에는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17. 20분 늦은 출발, 비와호 상공으로

비행기는 예정시각보다 약 20분 늦게 이륙했다.

활주로를 이동하는 동안 창밖에서는 다른 항공기 한 대가 석양을 배경으로 착륙하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기 직전의 하늘과 활주로의 불빛이 겹치면서 여행의 마지막 장면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비행기는 고도를 높이며 일본 열도 위로 올라갔다.

아래 도시에는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해안과 항구의 윤곽도 점점 불빛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비행기는 비와호 상공을 가로질렀다.

비와호 역시 낯선 곳이 아니었다.

지난해에는 교토를 거쳐 직접 비와호까지 다녀왔다.

그때 찾아갔던 시라히게신사에는 붉은 도리이가 실제로 비와호 물 위에 서 있다.

육지에서 호수 쪽을 바라보면 넓은 물 한가운데 도리이가 서 있고 그 뒤로 비와호가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이었다.

비와호 주변은 우리 역사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고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도래인들이 정착했던 지역 가운데 하나이고, 오미 일대에는 백제를 비롯한 한반도계 도래인과 관련된 흔적과 이야기가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일본 고대사에서 말하는 도래인은 단순히 바다를 건너온 사람이 아니라 당시 한반도의 기술과 문화, 지식을 일본으로 전했던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알고 비와호 주변을 돌아보니 지난해에도 이 지역이 단순한 일본의 큰 호수로만 보이지 않았다.

작년에는 그 호숫가를 직접 걸었고 시라히게신사의 물 위 도리이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북알프스 여행을 마치고 그 비와호 위를 비행기로 날아갔다.

참 묘한 기분이었다.

아래 도시의 불빛은 점점 더 선명해졌고, 날개 너머 수평선에는 붉은 노을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18. 오후 9시 인천공항, 대전 집까지 마지막 여정

비행기는 오후 9시쯤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한국에 돌아왔으니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마지막 고비가 남아 있었다.

짐이 안 나왔다.

착륙부터 수하물을 찾는 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짐을 찾았다.

공항을 빠져나오니 이미 밤이 깊었다.

이제 집까지 가야 했다.

인천공항에서 집까지는 다시 두 시간 반.

그래도 밤이라 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가자. 인자 집에 가는겨.”

차를 몰고 고속도로에 올라갔다. 차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머 빠지게 밟았다. ㅎㅎ

집에까지 두시간 걸렸다.

물론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부지런히 달렸다.


19. 북알프스 안녕

새벽 4시 월드컵 결승전으로 시작했던 여행 마지막 날.

아침에는 혼자 다카야마 거리를 걸어 히다노사토의 옛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는 길에는 이번 여행 내내 신세를 많이 졌던 노히버스 녀석들이 모여 있는 차고지를 지나고, 지난해 겨울 찾아갔던 백천향이라는 글자가 적힌 도로표지판도 다시 만났다.

이국땅에서 만난 무궁화도 반가웠고, 문학산책로에서는 뜻밖에 『둔황』의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의 이름도 발견했다.

히다노사토에서는 눈 많은 산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집을 짓고 살았는지, 어떻게 누에를 키우고, 소를 기르고, 불을 피우며 겨울을 견뎠는지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아침 산책이라고 가볍게 나섰지만 돌아와 기록을 확인해보니 7.5km를 걸었다. 여행 마지막 날까지 참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마님과 다카야마를 떠났다.

특급 히다를 타고 산을 내려오며 강과 논, 마을을 바라봤고, 지난해 다녀온 국보 이누야마성도 달리는 기차의 차창 너머로 다시 만났다.

나고야 JR 다카시마야 13층 게이테이에서 마지막 점심으로 미소카츠를 먹고, 뮤스카이를 타고 중부국제공항으로 향했다.

해 질 무렵 청바지항공 진에어에 올라 일본을 떠났다.

그리고 작년에 찾아갔던 비와호를 이번에는 하늘에서 지나쳤다.

그렇게 3박 4일 동안의 여행이 하나씩 뒤로 밀려났다.

가미코치의 안개 낀 다이쇼이케.

갓파바시와 아즈사가와.

도쿠사와까지 이어진 숲길.

소나기가 쏟아지던 다케자와습원.

노리쿠라다케의 높은 능선과 구름.

그리고 마지막 아침에 만난 히다노사토의 오래된 합장조 가옥.

이번 여행은 산만 본 여행은 아니었다.

산을 오르고, 계곡을 따라 걷고, 오래된 집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도 들여다봤다.

무엇보다 마님과 함께였다.

여행은 끝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밤늦게 집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아마 마음속으로 한 번쯤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잘 놀다 간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

북알프스 안녕.

언제 다시 올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다시 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다이쇼이케의 물안개와 노리쿠라다케의 하늘, 히다의 오래된 집들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내와 함께한 일본 북알프스 3박 4일 여행, 이렇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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