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하는 일본 북알프스 여행기
여행 1일차. 2026.07.17.(금)
두 번의 출발 끝에 다카야마로
1. 비를 뚫고 나섰다가 다시 집으로
2026년 7월 17일 0시 정각, 대전에서 인천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할 때만 해도 비가 조금씩 내리는 정도였다. 그런데 북유성 나들목으로 들어가 고속도로에 올라서자 빗줄기가 갑자기 굵어졌다. 와이퍼를 빠르게 움직여도 앞이 흐릿할 만큼 비가 퍼부었다.
한참 달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아, 이런 우산 안 가져왔네.”
이번 여행의 중심 일정인 가미코치는 여름에도 소나기가 종종 내리는 곳이었다. 날씨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 등산복과 카메라까지 챙겼는데, 정작 우산을 빼놓고 나온 것이다.
잠시 고민했지만 우산이야 공항이나 일본에 도착해서 하나 사면 될 일이었다. 그대로 계속 달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우산과 비교도 되지 않는 중요한 물건이 떠올랐다.
“에이 젠장, 트래블카드 안 가져왔그만.”
일본에서 교통비와 식비를 결제하려고 준비해 둔 트래블카드를 집에 그대로 놓고 나온 것이었다. 우산은 새로 사면 되지만 카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결국 차를 돌렸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 카드를 챙긴 뒤 두 번째 출발을 했다. 0시 정각에 기분 좋게 출발했다는 의미는 사라졌고, 왕복하면서 한 시간을 그대로 날렸다.
그래도 공항에 거의 도착해서 생각난 것보다는 나았다. 카드 없이 일본에 도착했으면 여행 첫날부터 더 큰 소동이 벌어졌을 것이다.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 속도를 냈다.
그러나 한밤중에 쏟아지는 비를 뚫고 계속 운전하다 보니 졸음이 밀려왔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시간을 조금 아끼겠다고 무리하다가는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고가 날 수 있었다.
아산 선장 졸음쉼터에 차를 세웠다.
잠깐만 눈을 붙이려고 했는데 거의 한 시간을 잤다. 다시 눈을 뜨고 나니 머리가 한결 맑아졌다. 집에 되돌아가면서 한 시간, 졸음쉼터에서 다시 한 시간을 보냈지만 애초에 공항까지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출발했기 때문에 아직 여유는 있었다.
다시 차를 몰아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출국장에 들어서자 한마디가 절로 나왔다.
“야, 사람 겁나 많네 그려.”
새벽인데도 출국장은 여행객으로 가득했다. 보안검색대 앞에는 긴 줄이 이어졌고, 검색대를 통과하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공항에 충분히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지만 줄을 서 있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래도 해외여행의 꽃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2. 몽블랑 잉크와 마리아 칼라스 만년필
면세품은 공항 매장을 돌아다니며 고른 것이 아니었다.
출국 전에 인터넷면세점에서 미리 주문하고 결제해 두었고, 인천공항에서는 물건만 찾아 받았다. 할인 혜택도 더 받을 수 있고 공항에서 시간을 아낄 수 있어 편했다.
이번에 구입한 몽블랑 잉크는 모두 세 병이었다.
두 병은 이번에 새로 나온 ‘오마주 투 브램 스토커 퍼플’, 나머지 한 병은 ‘위대한 개츠비 그린’이었다.
브램 스토커는 소설 『드라큘라』를 쓴 작가다. 드라큘라 백작을 탄생시킨 작가를 기념한 잉크답게 짙은 보라색과 상자 디자인에서도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위대한 개츠비 그린은 1920년대 뉴욕을 연상시키는 상자에 짙은 녹색 잉크가 담겨 있었다. 병잉크는 글씨를 쓰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몽블랑 한정판은 상자와 병까지 포함해 하나의 소장품에 가까웠다.
인터넷면세점 가격은 몽블랑 정상매장보다 확실히 저렴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부담 없이 여러 병을 살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요즘 몽블랑 잉크 가격이 워낙 많이 올라 할인된 가격을 봐도 예전과는 달랐다.
이번 쇼핑의 핵심은 잉크보다 만년필이었다.
‘몽블랑 뮤즈 마리아 칼라스 스페셜 에디션 만년필’을 구입했다. 짙은 붉은색 몸체와 은색 장식이 어우러진 화려하면서도 품위 있는 만년필이었다.
각종 추가 할인과 혜택까지 모두 적용하니 정상매장에서 판매하는 가격보다 40% 이상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이 정도 할인이 아니었다면 선뜻 결제하기 어려웠겠지만, 평소 관심 있게 보던 만년필을 좋은 조건에 구입했다는 만족감이 컸다.
마님 물건을 비롯해 미리 주문한 다른 면세품까지 찾아 짐을 정리하고 탑승구로 향했다.
나고야행 진에어 LJ345편은 예정된 시각보다 조금 늦게 이륙했다. 비행기가 시간표대로 정확히 움직이지 않는 일이야 늘 있는 일이니, 이 정도 지연은 충분히 봐줄 만했다. 나고야는 작년 겨울 시라카와고 여행시 4박5일 머문 이후 두번째 행이다.
출발 전까지는 비와 트래블카드, 졸음과 보안검색 줄 때문에 정신이 없었지만 비행기가 활주로를 떠나자 비로소 여행을 시작한다는 실감이 났다.
3. 비구름 위에서 만난 푸른 바다와 일본의 산하
밤새 비를 퍼붓던 지상과 달리 구름 위의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항공기 날개 아래로 짙푸른 바다가 펼쳐졌고 해안 가까이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흩어져 있었다. 하얀 구름과 파란 바다 사이로 비행기 날개가 길게 뻗은 모습이 시원했다.
출발 전부터 마음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날씨 걱정도 그 풍경을 보고 있으니 잠시 잊혔다.
일본 열도에 가까워지면서 창밖의 모습은 다시 달라졌다.
산으로 둘러싸인 해안도시와 항구가 보였다. 바다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온 만을 따라 시가지가 형성돼 있었고, 항만시설과 방파제가 한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날아가자 넓은 평야가 나타났다.
논밭과 주택이 바둑판처럼 이어졌고, 여러 갈래의 넓은 강과 제방이 평야를 가로질렀다. 강 위로는 교량이 길게 놓여 있었고 철도와 고속도로가 주택가와 농경지 사이를 복잡하게 지나갔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을 찾아가는 여행이었지만 비행기에서 처음 내려다본 일본은 넓은 평야와 물길의 나라처럼 보였다.
창밖 풍경을 계속 사진으로 남기다 보니 어느새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이륙이 조금 늦기는 했지만 나고야 중부국제공항에는 크게 늦지 않게 도착했다. 이 정도면 여행 일정에 영향을 줄 만한 지연은 아니었다.
활주로에 내려선 뒤 창밖으로 공항 작업자와 다른 항공기들이 보였다. 한국을 떠날 때의 장대비는 온데간데없고 나고야 쪽 하늘은 밝고 쾌청했다.
입국절차를 마친 뒤 공항역으로 내려가 오전 10시 7분 뮤스카이를 타고 나고야역으로 이동했다.
밤새 운전하고 비행기까지 탔지만 일본에 도착했다는 들뜬 기분 때문인지 피곤함보다 다음 일정에 대한 기대가 앞섰다.
4. JR 나고야 다카시마야, 하나였던 가방이 세 개로
나고야역에 도착한 뒤 JR 나고야 다카시마야 백화점으로 향했다.
마님이 눈여겨보던 BAO BAO ISSEY MIYAKE 가방을 사기 위해서였다.
작은 삼각형 조각들이 이어진 독특한 디자인으로, 보는 각도와 빛에 따라 흰색과 은색이 번갈아 드러났다. 평평하게 접히다가 물건을 넣으면 입체적인 형태로 바뀌는 것이 특징이었다.
처음에는 마님 것 하나만 샀다.
쇼핑을 마친 뒤 나고야역 안의 본 보야주(ボン・ヴォヤージュ)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주문한 것은 오구라 샌드 플레이트와 데리야키치킨 핫샌드였다.
오구라 샌드는 구운 식빵 사이에 단팥을 넣은 나고야의 대표 음식이었다. 접시에는 오구라 샌드와 함께 감자튀김과 샐러드가 푸짐하게 담겨 나왔다.
단팥과 식빵의 조합은 우리나라 팥빵이나 앙버터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익숙한 재료인데 샌드위치 형태로 먹으니 나고야에 왔다는 느낌이 났다.
데리야키치킨 핫샌드는 달콤하고 짭짤한 소스가 밴 닭고기를 구운 식빵 사이에 넣은 메뉴였다. 한 끼 식사로 충분할 만큼 든든했다.
오구라 샌드 플레이트는 1,300엔, 데리야키치킨 핫샌드는 1,650엔이었다. 각각 아이스커피가 포함돼 두 사람의 점심값은 모두 2,950엔이었다.
그런데 밥을 먹던 중 가방 한 개가 갑자기 세 개로 늘어나는 일이 벌어졌다.
마님이 언니와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방금 산 가방 이야기를 했다. 일본에서 사니 한국보다 가격이 싸다는 말을 들은 처형과 처제도 하나씩 부탁했다.
두 사람이 함께 다시 움직이면 캐리어까지 끌고 복잡한 역과 백화점을 오가야 했다. 결국 나는 식당에 남아 캐리어와 자리를 지키며 점심을 계속 먹고, 마님 혼자 가방 두 개를 더 사러 백화점으로 뛰어갔다.
나는 오구라 샌드와 감자튀김을 먹으면서 가끔 시계를 확인했다.
우리가 탈 특급 히다 11호는 낮 12시 48분 출발이었다.
마님은 처형과 처제 몫까지 가방 두 개를 더 사 들고 돌아왔다. 곧바로 짐을 챙겨 승강장으로 이동했고, 출발을 약 5분 남겨두고 열차에 올랐다.
쇼핑도 했고, 점심도 먹었고, 갑자기 생긴 가방 심부름까지 모두 마친 뒤 예정된 열차를 탔다.
좌석은 2호차 16C와 16D였다.
5. 히다강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간 특급 히다 11호
특급 히다 11호는 나고야를 출발해 기후, 게로를 지나 다카야마까지 가는 열차였다.
차량은 신형 HC85계 하이브리드 열차였다.
객실 모니터에는 엔진과 발전기, 배터리, 주행 모터 사이에서 에너지가 이동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출발하고 가속할 때는 엔진과 배터리가 힘을 보내고, 속도를 줄일 때는 제동 과정에서 발생한 전기를 배터리에 다시 저장하는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기차 안에서 그 화면을 보며 단순히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열차의 작동방식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었다.
나고야를 벗어나 기후를 지나면서 차창 밖의 모습은 서서히 달라졌다.
도시와 평야가 줄어들고 산과 강이 가까워졌다. 다카야마 본선은 산을 길게 뚫고 직선으로 달리기보다 강과 계곡의 굴곡을 따라 이어졌다.
열차는 히다강을 끼고 계속 방향을 바꾸며 달렸다. 커브를 돌 때는 앞쪽 객차가 휘어져 보였고, 어떤 구간에서는 나뭇가지가 창문 가까이를 스쳐 지나갔다.
선로 한쪽에는 강물이 흐르고 다른 쪽에는 산비탈이 바로 붙어 있었다.
우리나라 철도였다면 터널과 교량을 새로 놓아 선형을 펴고 속도를 높였을 법한 곳에서도 이 노선은 오래된 재래선의 굴곡을 그대로 따라갔다.
빠른 이동만 생각하면 답답할 수 있지만 강과 숲, 계곡과 마을을 가까이 바라보며 이동하는 맛이 있었다.
신칸센이 일본의 장거리 고속교통을 담당하더라도 신칸센이 들어가지 않는 산간지역은 여전히 이런 재래선 특급이 이어주고 있었다. 신칸센과 경쟁하다 밀려난 교통수단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구간과 역할을 나눠 맡고 있는 셈이었다.
게로역에 도착하자 많은 승객이 내렸다.
온천으로 유명한 곳답게 여행가방을 든 관광객 상당수가 게로에서 하차했다. 게로를 지나면서 객실은 한층 조용해졌다.
열차는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차창 밖에는 짙은 여름 숲과 강물이 계속 이어졌고, 산기슭의 작은 마을과 논밭이 잠깐 나타났다가 다시 숲속으로 사라졌다.
다카야마로 가는 두 시간여의 열차 이동은 단순한 이동시간이 아니었다. 도시와 평야에서 출발해 산과 계곡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이번 북알프스 여행의 첫 번째 풍경이었다.
특급 히다 11호는 늦지 않게 다카야마에 도착했다.
6. 김치 한 쪼가리도 돈 받는 나라에서 만난 호텔의 환대
숙소는 다카야마역과 노히버스센터 바로 옆에 있는 도큐 스테이 히다 다카야마였다.
다음 날 새벽 가미코치행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에 버스터미널과 가까운 숙소를 선택했는데, 위치뿐 아니라 호텔의 서비스도 기대 이상이었다.
객실은 일본 호텔치고 넉넉했다. 캐리어와 짐을 펼쳐놓아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고, 나고야에서 산 가방 세 개도 여유 있게 꺼내볼 수 있었다.
마님이 새로 산 BAO BAO 가방을 직접 들어보니 매장에서 볼 때와는 또 달랐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삼각형 조각들이 각도를 달리하며 흰색과 은색으로 반짝였다.
그런데 객실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호텔의 웰컴서비스였다.
라운지에는 커피와 여러 종류의 음료가 준비돼 있었고, 맥주와 간단한 안주도 투숙객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여행객이 편하게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준비해 놓은 느낌이었다.
일본 여행을 다니다 보면 김치 한 쪼가리도 돈 받고 파는 곳이 적지 않은데, 이 호텔은 막 도착한 손님에게 음료와 맥주, 안주를 넉넉하게 내놓고 있었다.
“김치 한 쪼가리도 돈 받는 나라에서 이런 서비스를 다 보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긴 이동 끝에 도착한 여행객에게는 이런 환대가 크게 다가왔다. 마실 것 하나, 잠깐 쉴 자리 하나를 넉넉하게 제공하는 호텔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했다.
다카야마에서 3박을 이곳으로 정한 것은 제대로 된 선택이었다.
잠시 쉬고 나니 아직 해가 남아 있었다.
가미코치와 노리쿠라가 이번 여행의 중심이었지만 다카야마를 단순한 숙박 거점으로만 지나치기는 아쉬웠다. 카메라를 챙겨 저녁 산책에 나섰다.
7. 다음 날 버스 승강장을 먼저 순찰하다
호텔을 나와 가장 먼저 간 곳은 관광지가 아니라 노히버스센터였다.
다음 날 아침 가미코치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에 미리 승강장 위치를 확인해 두기로 했다.
버스터미널에는 히라유, 신호타카 방면과 가미코치 방면 안내가 붙어 있었다. 가미코치는 히라유온천에서 갈아타야 한다는 안내도 확인했다.
우리가 탈 버스는 다음 날 오전 6시에 출발하는 첫차였다.
호텔과 버스터미널이 얼마나 가까운지, 어느 승강장에서 타는지, 아침에 어느 방향으로 나오면 되는지를 직접 걸어보며 확인했다.
여행 전 시간표를 아무리 많이 들여다봐도 실제 현장에서 승강장을 한번 보는 것만 못했다. 다음 날 새벽 시간에 허둥대지 않으려면 이런 사전순찰이 필요했다.
버스센터를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이제부터는 다카야마 시내를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다카야마 시내는 작년 시라카와고 여행시 들렀었기 태문에 이번이 두번째였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8. 미야가와 강변에서 만난 교복 차림의 학생들
버스센터를 둘러본 뒤 미야가와 강변으로 향했다.
강변에는 ‘히다 다카야마 미야가와 아침시장(飛騨高山宮川朝市)’이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 있었다.
아침시장이 열리는 곳이지만 저녁에는 장사가 모두 끝난 뒤라 한산했다. 낮에는 관광객으로 붐볐을 거리였지만 해가 기울자 다시 다카야마 주민들의 생활공간으로 돌아가 있었다.
강가에는 오래된 상점과 찻집, 목조주택이 이어졌고 붉은 난간의 다리가 물길을 가로질렀다.
그 길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만났다.
짙은색 세일러복 차림의 여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걸어오고 있었고, 한 학생은 자전거를 끌고 있었다. 학교가 끝난 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그 장면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관광객을 위해 보존한 옛 건물과 상점 사이로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다카야마는 전통거리만 남겨놓은 전시장 같은 도시가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실제 생활공간이었다.
여행지에서 그곳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만날 때 도시가 훨씬 생생하게 느껴진다.
학생들은 카메라를 든 관광객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은 채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갔다. 미야가와의 물길과 오래된 상점,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한 장면 안에 함께 들어왔다.
강변을 따라 걷다가 오래된 찻집과 상점, 붉은 다리와 골목을 지나 다카야마 동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곳에서 히가시야마 산책길이 이어졌다.
9. 교토 철학의 길을 떠올리게 한 히가시야마 산책길
미야가와 강변을 지나 동쪽 산기슭으로 들어서자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
히가시야마 산책길에는 오래된 절과 신사, 작은 수로와 돌담, 조용한 주택가가 이어졌다. 길가에는 큰 소나무와 석등이 서 있었고 수로에는 맑은 물이 흘렀다.
작은 다리를 건널 때마다 절과 주택의 담장이 번갈아 나타났다.
걷다 보니 교토의 철학의 길이 떠올랐다.
철학의 길처럼 수로를 따라 걷고 길 주변에 사찰과 주택이 이어졌다. 물론 교토처럼 널리 알려진 관광명소는 아니었다. 길도 조금 더 소박했고 유명 카페나 기념품점이 줄지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관광객이 적고 주민들의 생활공간과 종교공간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교토의 철학의 길이 잘 정돈된 고도(古都)의 산책길이라면, 다카야마의 히가시야마 산책길은 산간도시의 수로와 골목, 절과 숲을 가까이서 따라가는 길이었다.
길을 따라 주택가와 수로를 지나고, 큰 계단 위에 자리 잡은 신사와 오래된 종루도 만났다.
다이오지 절 입구에는 일본 선승의 모습을 그린 판이 세워져 있었다. 선승 두 명이 나란히 서 있는 익살스러운 그림이었고, 얼굴 부분을 비워놓아 그 뒤에 서면 그림 속 선승이 된 것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놓았다.
무게감 있는 사찰 입구에 이런 소박하고 재미있는 장치가 놓여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이오지의 산문은 주변의 소나무와 돌담 사이에서 웅장하면서도 차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해가 기울면서 나무와 지붕, 돌계단에 부드러운 저녁빛이 내려앉았다.
전신주와 복잡하게 얽힌 전깃줄 뒤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도 다카야마의 저녁 풍경답게 느껴졌다. 오래된 사찰과 목조주택만 따로 보존된 것이 아니라 전선과 자동차, 평범한 주택까지 모두 한 도시 안에 함께 있었다.
이날 산책 기록은 약 2시간, 4.7km였다.
평균속도는 시속 3.1km로 나왔지만 사진을 찍고 수로와 사찰을 들여다보며 걸었으니 실제 체감은 훨씬 느긋했다.
다카야마는 가미코치와 노리쿠라로 들어가기 위한 숙박 거점 정도로 생각했던 도시였다.
그러나 첫날 저녁 미야가와 강변과 히가시야마 산책길을 걸으며 생각이 달라졌다. 산과 수로, 오래된 절과 주민들의 생활이 어우러진 도시 자체가 하나의 여행지였다.
10. 패밀리마트에서 준비한 가미코치의 아침
저녁 산책을 마친 뒤 곧바로 호텔에 들어가지 않고 패밀리마트에 들렀다.
다음 날은 오전 6시 첫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에 호텔에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을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가미코치에 들어간 뒤에는 언제 어디에서 식사를 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패밀리마트에서 샌드위치와 우유, 빵을 비롯해 아침에 먹을 것과 가미코치에서 걷다가 먹을 간식거리를 챙겼다.
새벽에 호텔에서 간단히 먹을 것과 배낭에 넣어갈 것을 나누어 생각하며 골랐다. 산속에서 먹을 음식이라 화려할 필요는 없었다. 쉽게 꺼내 먹을 수 있고, 오래 걸어도 부담이 적은 것이면 충분했다.
장보기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배낭과 카메라를 다시 확인했다. 다음 날 입을 옷도 미리 꺼내놓고, 패밀리마트에서 산 샌드위치와 우유, 빵도 빠뜨리지 않도록 한곳에 모아두었다.
다음 날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던 가미코치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오전 6시 첫 버스를 타려면 새벽부터 움직여야 했다.
버스센터와 승강장은 저녁에 직접 확인했으니 아침에 길을 헤맬 걱정은 없었다.
남은 걱정은 날씨였다.
가미코치는 산속이라 날씨가 갑자기 변할 수 있었고, 오후에는 소나기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대전을 출발할 때 우산을 두고 나온 사실도 다시 생각났다.
“녈은 날씨가 좋아야 헐 틴디.”
인터넷과 사진으로 수없이 보았던 다이쇼이케와 갓파바시, 아즈사강과 호타카 연봉을 직접 보게 될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알람을 새벽 시간에 맞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아침,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지인 가미코치로 들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