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보고] 열화당 『서대문형무소, 옮기던 날의 기록, 그리고 역사』: 독립운동의 성지 너머,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감옥사를 증언하는 장소
1. 도서 개요 및 책의 구성
가. 발행 정보 및 기본 내용
ㅇ(도서명) 『서대문형무소, 옮기던 날의 기록, 그리고 역사』
ㅇ(출판사) 열화당
ㅇ(초판) 1988년 열화당 사진문고 23으로 발행되었음.
ㅇ(개정증보판) 2008년 서대문형무소 개소 백주년을 맞아 개정증보판으로 발간되었음.
ㅇ(갈래) 사진기록집, 역사기록, 현장기록
ㅇ(사진) 김동현, 민경원
ㅇ(글) 리영희, 나명순
ㅇ(배경)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서대문형무소 일대
ㅇ(내용) 1908년 경성감옥으로 출발한 서대문형무소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를 거치며 어떤 억압의 장소로 기능했는지를 사진과 글로 기록한 책임.
나. 책의 실제 구성
ㅇ(첫째 구성) 책은 리영희 선생님의 「서대문형무소의 기억」으로 시작함.
ㅇ(둘째 구성) 이어서 서대문형무소가 의왕으로 이전한 뒤 남겨진 감방, 복도, 사형장, 교수대, 화장실, 담장 등 사진 기록을 보여줌.
ㅇ(셋째 구성) 마지막으로 나명순 선생님의 「서대문형무소 소사」를 통해 서대문형무소의 개소부터 서울구치소 이전, 역사관으로 남기까지의 흐름을 정리함.
ㅇ(구성의 의미) 이 책은 한 사람의 체험에서 출발해, 사진으로 감옥의 공간을 보여주고, 마지막에 역사적 맥락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서대문형무소를 보여주고 있음.
다. 도서의 기본 성격
ㅇ(체험·사진·역사의 결합) 이 책은 개인의 수감 체험, 감옥 공간의 사진기록, 서대문형무소의 역사 서술이 결합된 기록물임.
ㅇ(장소 중심의 기록) 이 책은 특정 인물 한 명의 전기나 사건 중심의 역사책이 아니라, 서대문형무소라는 장소가 품은 한국 근현대사의 고통을 읽어내는 책임.
ㅇ(사물의 증언) 감방, 교수대, 화장실, 식기, 젓가락 같은 사소한 사물과 공간을 통해 감옥의 비인간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냄.
ㅇ(기억의 확장) 서대문형무소를 독립운동의 성지로만 기억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해방 이후 독재와 사법폭력, 민주화운동의 기억까지 함께 보게 함.
라. 도서의 역사적 의의
ㅇ(기록의 가치) 사라지거나 일부만 남게 된 서대문형무소의 모습을 사진과 글로 남겼다는 점에서 기록적 가치가 큼.
ㅇ(체험의 가치) 리영희의 글은 서대문형무소를 직접 겪은 사람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감옥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함.
ㅇ(사진의 가치) 김동현·민경원의 사진은 글로만은 느끼기 어려운 감옥 공간의 압박감과 현장감을 보여줌.
ㅇ(역사 서술의 가치) 나명순의 글은 서대문형무소의 긴 역사를 정리하여, 이 장소가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격변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줌.
ㅇ(핵심 의의) 이 책은 서대문형무소를 “독립운동가들이 갇혔던 감옥”이라는 익숙한 이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대마다 권력이 두려워한 사람들을 가두었던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감옥으로 다시 보게 함.
2. 사진·글 참여자 소개
가. 사진
ㅇ(김동현) 1945년 전북 정읍 출생, 동국대학교 졸업,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 및 출판사진부 부장 역임
ㅇ(민경원) 생몰년·출생지 등은 확인하지 못했으며, 조선일보 사진부 차장 역임
나. 글
ㅇ(리영희) 1929년 평안북도 운산 출생, 2010년 별세. 경성공립공업학교와 국립해양대학을 졸업하고 합동통신·조선일보 기자, 한양대학교 교수로 활동했으며, 이 책에서는 「서대문형무소의 기억」을 통해 직접 겪은 감옥의 체험을 기록함.
ㅇ(나명순) 1942년 충남 서천 출생, 2004년 별세. 전주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조선일보 기자, 세계일보 논설위원, 경원대학교 부총장 등을 지냈으며, 이 책에서는 「서대문형무소 소사」를 통해 서대문형무소의 역사를 정리함.
3. 리영희 「서대문형무소의 기억」: 세 번 끌려간 감옥의 체험
가. 체험으로 시작하는 책
ㅇ(체험의 글) 지금은 작고하신 리영희 선생님의 「서대문형무소의 기억」은 서대문형무소를 밖에서 해설한 글이 아니라, 실제로 그곳에 갇혔던 사람이 자신의 몸과 기억으로 써 내려간 글임.
ㅇ(세 번의 수감 경험) 리영희 선생님은 박정희 시대에 두 번, 전두환 시대에 한 번, 모두 세 차례 서대문형무소에 잡혀 들어갔다고 회고함.
ㅇ(현대사의 감옥) 이 대목은 서대문형무소가 일제강점기의 감옥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 독재정권 아래에서도 비판적 지식인과 양심적 인사들을 억압한 공간이었음을 보여줌.
ㅇ(기억의 무게) 그래서 이 글은 단순한 감옥 회고담이 아니라, 한 시대의 권력이 사람의 생각과 말, 양심을 어떻게 가두었는지를 보여주는 현대사의 증언으로 읽힘.
나. 젓가락과 식사의 기억
ㅇ(젓가락의 의미) 리영희의 글에서 특히 강하게 남는 것은 감옥 안에서의 식사와 젓가락에 대한 기억임. 젓가락 하나는 단순한 식사용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감옥 안에서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한 처지로 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다가옴.
ㅇ(식사의 굴욕) 음식을 먹는 일조차 인간다운 식사가 아니라, 감시와 통제 아래에서 겨우 허기를 해결하는 생존 행위로 떨어짐.
ㅇ(인간의 품위) 감옥은 사람의 몸을 가두는 데서 그치지 않음. 사람답게 먹고, 자고, 씻고, 배설할 최소한의 품위까지 빼앗는 공간으로 드러남.
ㅇ(핵심 의미) 작은 젓가락 하나가 거대한 역사 설명보다 더 강하게 감옥의 비인간성을 보여주었음.
다. 감옥 안팎으로 이어지는 고통
ㅇ(몸의 통제) 감옥은 사상이나 정치적 입장만을 억압한 것이 아니라,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인간의 몸 전체를 통제한 공간이었음.
ㅇ(마음의 압박) 수감자는 좁은 공간에 갇혀 생활하면서 신체적 불편뿐 아니라 정신적 압박도 함께 감당해야 했음.
ㅇ(가족의 고통) 리영희의 기억에서 감옥의 고통은 수감자 한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음. 가족은 어디에 끌려갔는지, 언제 돌아올 수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불안 속에서 함께 고통을 겪음.
ㅇ(핵심 의미) 리영희의 글은 서대문형무소를 낡은 감옥 건물이 아니라, 실제 사람의 몸과 마음, 가족의 삶까지 흔들어 놓은 장소로 보게 함.
4. 서대문형무소 사진 기록: 공간과 사물이 증언하는 역사
가. 사진기록의 성격
ㅇ(옮기던 날의 기록) 사진은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으로 이전한 뒤, 현저동 101번지에 남아 있던 서대문형무소의 모습을 기록함.
ㅇ(현장성) 감방, 복도, 담장, 화장실, 사형장, 교수대 같은 장면이 있어 역사가 추상적으로 흐르지 않음.
ㅇ(공간의 압박감) 낡은 벽과 닫힌 문, 좁은 감방과 교수대의 장치는 그 자체로 감옥의 압박감을 전함.
ㅇ(기록의 의미) 이 책에서 사진은 글의 보조자료가 아니라, 서대문형무소의 역사를 증언하는 또 하나의 본문임.
나. 감방과 생활공간
ㅇ(감방의 현실) 감방은 단순히 잠을 자는 방이 아니라, 사람이 움직일 공간조차 제대로 없는 억압의 공간이었음.
ㅇ(생활의 통제) 수감자의 일상은 먹고 자고 앉고 움직이는 기본 행위까지 감옥의 질서 안에서 통제되었음.
ㅇ(공간의 폭력) 감방의 좁음과 폐쇄성은 감옥의 폭력이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드러나는 장면임.
ㅇ(핵심 의미) 사진 속 감방은 서대문형무소가 실제 사람이 몸으로 견뎌야 했던 장소였음을 보여줌.
다. 화장실과 몸의 굴욕
ㅇ(화장실의 문제) 감방 안 화장실과 좌변기, 생리대 주머니 같은 기록은 수감자의 몸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통제되고 방치되었는지를 보여줌.
ㅇ(사생활의 박탈) 배설과 위생이라는 가장 사적인 영역조차 감옥 안에서는 제대로 보호되지 않았음.
ㅇ(생활의 굴욕) 감옥의 고통은 고문이나 사형 같은 극단적 폭력에만 있는 것이 아님. 먹고 자고 배설하는 기본 생활이 무너지는 데서도 인간은 깊은 굴욕을 겪음.
ㅇ(핵심 의미) 화장실과 생활시설의 사진은 감옥의 폭력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몸의 조건까지 침범했다는 사실을 보여줌.
라. 교수대와 사형장
ㅇ(사형장의 존재) 서대문형무소 안의 사형장은 이곳이 단순한 수감시설이 아니라, 국가가 죽음을 집행하던 장소였음을 보여줌.
ㅇ(교수대의 공포) 교수대, 레버, 떨어지는 마룻바닥, 시신 확인 장소에 대한 기록은 국가권력이 사람의 생명을 끊어내던 방식을 보여줌.
ㅇ(죽음의 제도화) 사형장은 죽음이 분노나 우발적 폭력이 아니라 제도와 절차의 이름으로 집행되었음을 드러냄.
ㅇ(핵심 의미) 감옥의 폭력은 구호가 아니라, 먹고 자고 배설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구체적인 몸의 고통으로 나타났음.
5. 나명순 「서대문형무소 소사」: 감옥의 긴 역사
가. 경성감옥에서 서대문형무소까지
ㅇ(개소)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10월 21일 경성감옥으로 설치되었음.
ㅇ(명칭 변화) 1912년 서대문감옥,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이름이 바뀌었음.
ㅇ(식민지 시설) 이 감옥은 단순한 교정시설이 아니라, 일제가 조선을 지배하고 항일세력을 가두기 위해 만든 근대식 감옥이었음.
ㅇ(수용 확대) 의병항쟁과 항일운동이 확산되면서 기존 감옥만으로는 수용이 어려워졌고, 서대문형무소는 일제의 통치 폭력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음.
나. 식민지 억압의 공간
ㅇ(초기 수감자) 책은 이승만, 의병장 허위, 안명근, 김구 등 초기 항일운동 관련 인물들이 경성감옥과 서대문감옥에 수감된 사례를 소개함.
ㅇ(백오인사건) 김구가 입감된 뒤 백오인사건으로 많은 애국지사들이 붙잡혀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었음.
ㅇ(3·1운동 이후) 3·1운동 관련 수감자들에 대한 재판과 수감 과정은 혼란스럽고 가혹했으며, 그 과정에서 양한묵 지사가 옥사하고 유관순 열사가 서대문감옥 안에서 순국했음.
ㅇ(강우규 의사) 사이토 마코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져 암살을 기도했던 강우규 의사의 수감과 처형 기록도 서대문형무소의 항일 기억을 강하게 보여줌.
ㅇ(김동삼과 한용운) 김동삼 열사가 옥사한 뒤 일제의 보복이 두려워 아무도 시신을 찾지 못하던 때, 만해 한용운이 홀로 시신을 찾아 안장했다는 일화도 이곳의 비극성을 보여줌.
ㅇ(핵심 의미) 일제강점기의 서대문형무소는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기리는 장소이기 이전에, 실제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죽어간 민족수난의 현장이었음.
다. 해방 이후 현대사 폭력의 현장
ㅇ(해방 이후 명칭 변화) 해방 이후에는 1945년 서울형무소, 1961년 서울교도소, 1967년 서울구치소로 이름이 바뀌었음.
ㅇ(이름과 기능) 이름은 바뀌었지만, 사람을 가두고 통제하는 감옥의 기능은 계속되었음.
ㅇ(수감자의 변화) 4·19와 5·16 같은 격변기에는 정치인, 고위관료, 군장성, 부정축재자로 몰린 기업인 등이 이곳에 들어왔음.
ㅇ(민주화운동기) 3선개헌, 유신, 10·26, 12·12 같은 격랑 속에서는 재야인사와 대학생 등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도 이곳에 갇혔음.
ㅇ(다양한 수감자) 책은 이 밖에도 흉악범, 대형 경제사범, 간첩 혐의자, 잡범에 이르기까지 서대문형무소의 수감자 구성이 매우 다양했다고 설명함.
ㅇ(수용 규모) 1987년 이전 당시 이곳은 삼천이백 명가량을 수용할 수 있었고, 1969년에는 칠천여 명이 수용되어 포화상태가 되었다고 책은 설명함.
ㅇ(사형장의 지속) 서대문형무소의 교수형장은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여러 인물들의 최후 장소가 되었음.
ㅇ(핵심 의미) 서대문형무소는 식민지의 감옥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한국 현대사의 정치적 폭력과 사법폭력을 품은 장소였음.
라. 역사관으로 남은 서대문형무소
ㅇ(서울구치소 이전)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서대문형무소는 칠십 년 가까운 서대문 시대를 마감했음.
ㅇ(한국의 바스티유) 책에서는 서대문형무소가 한때 ‘한국의 바스티유’로 불리기도 했다고 적고 있음.
ㅇ(독립공원과 역사관) 1992년 독립공원이 개원했고, 1998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개관했음.
ㅇ(보존 시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는 중앙사와 9~13사, 한센병사 등 일부 건물과 사형장이 보존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음.
ㅇ(장소의 변화) 사람을 가두던 감옥이 이제는 인간을 억압한 역사를 증언하는 장소가 되었음.
6. 2018년 「대한독립영웅전」 답사와의 연결
가. 답사의 기억
ㅇ(답사 계기) 나는 2018년 5월 21일 아들과 함께 “대한독립영웅전”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에 있는 독립유공자 동상과 독립운동 관련 장소들을 찾아다닌 적이 있음.
ㅇ(답사 장소) 당시 효창공원, 서대문독립공원, 탑골공원, 장충단공원, 어린이대공원, 남산공원 등 서울 곳곳의 독립운동 관련 인물과 장소를 찾아보았음.
ㅇ(답사의 의미) 그때의 답사는 아들에게 독립운동가들의 이름과 행적을 단순히 책으로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도시 공간 속에서 직접 확인하게 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었음.
ㅇ(서대문형무소의 기억) 그때 서대문형무소는 주로 독립운동지사들의 고난과 순국을 기리는 장소로 다가왔음.
나. 당시 느낀 아쉬움
ㅇ(독립운동 중심의 전시) 당시 현장에서 본 서대문형무소는 독립운동지사들의 고난과 희생을 중심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성격이 강했음.
ㅇ(당연한 중요성)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리는 일은 당연히 중요하고, 결코 약해져서는 안 되는 기억임.
ㅇ(부족했던 현대사) 그러나 해방 이후 이곳이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로 이어지며 정치범, 사상범, 양심수, 민주화운동 관련 인사들을 가두었던 장소였다는 점은 현장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음.
ㅇ(남은 질문) 그래서 당시의 서대문형무소는 독립운동의 성지로는 강하게 다가왔지만, 해방 이후 권력과 사법폭력의 공간으로는 충분히 읽히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남았음.
7. 종합 감상 및 평가
가. 책의 핵심 가치
ㅇ(기록의 가치) 『서대문형무소, 옮기던 날의 기록, 그리고 역사』는 사라지거나 일부만 남게 된 서대문형무소의 공간과 시설을 사진과 글로 남긴 중요한 기록임.
ㅇ(체험의 가치) 리영희의 「서대문형무소의 기억」은 감옥을 밖에서 설명한 글이 아니라, 직접 갇혔던 사람이 몸으로 겪은 기억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있음.
ㅇ(사진의 가치) 김동현·민경원의 사진은 감옥의 물리적 흔적을 보여주며, 글로만은 느끼기 어려운 공간의 압박감과 현장감을 전함.
ㅇ(역사 서술의 가치) 나명순의 「서대문형무소 소사」는 경성감옥 개소부터 서울구치소 이전까지의 흐름을 정리하여, 이 장소가 식민지 억압과 해방 이후 현대사의 폭력을 함께 품고 있음을 보여줌.
나. 서대문형무소를 다시 읽는 관점
ㅇ(장소의 복합성) 서대문형무소는 순국선열을 기리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해방 이후 국가권력의 억압과 사법폭력까지 품은 장소임.
ㅇ(수감자의 변화)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와 민족지도자가 갇혔고, 해방 이후에는 정치인, 지식인, 재야인사, 학생, 민주화운동 관련 인사들이 이곳을 거쳐 갔음.
ㅇ(권력의 거울) 감옥에 누가 갇혔는지를 보면, 그 시대 권력이 무엇을 두려워했는지가 보임.
ㅇ(핵심 판단) 서대문형무소는 단순한 옛 감옥이 아니라, 시대마다 권력이 두려워한 사람들을 가두었던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감옥임.
다. 최종 소회
ㅇ(기억의 책임) 서대문형무소를 제대로 기억하려면 독립운동가들의 희생만이 아니라, 해방 이후 독재정권 아래에서 벌어진 억압과 사법폭력까지 함께 보아야 함.
ㅇ(역사교육의 방향) 역사교육은 자랑스러운 기억만 골라 보여주는 일이 아니라, 부끄럽고 아픈 기억까지 함께 보여주는 일이어야 함.
ㅇ(최종 평가) 이 책은 서대문형무소라는 장소를 통해, 역사는 기념하는 것만이 아니라 끝까지 들여다보고 반성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책임.
<시대마다 권력이 두려워한 사람들을 가두었던 감옥>
『서대문형무소, 옮기던 날의 기록, 그리고 역사』는 한 사람의 체험에서 시작해, 사진으로 감옥의 공간을 보여주고, 마지막에 그 장소의 긴 역사를 정리하는 책이다. 첫머리에 놓인 리영희의 「서대문형무소의 기억」은 이 책 전체의 정서를 결정한다. 리영희는 박정희 시대에 두 번, 전두환 시대에 한 번, 모두 세 차례 서대문형무소에 묶여 들어갔다고 회고한다. 이 고백 때문에 서대문형무소는 곧바로 먼 과거의 유적이 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사람의 생각과 양심을 가두었던 현대사의 감옥으로 다가온다. 이어지는 사진들은 감방, 화장실, 교수대, 사형장 같은 구체적 사물과 공간을 통해 감옥의 비인간성을 눈앞에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나명순의 「서대문형무소 소사」는 경성감옥 개소부터 서울구치소 이전까지의 흐름을 정리하며, 이 장소가 한국 근현대사의 폭력과 고통을 품은 공간이었음을 확인하게 한다.
나는 2018년 5월 21일 아들과 함께 “대한독립영웅전”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의 독립유공자 동상과 독립운동 관련 장소들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그때 서대문형무소는 주로 독립운동지사들의 고난과 순국을 기리는 장소로 다가왔고, 그 기억은 지금도 소중하게 남아 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그곳이 해방 이후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로 이어지며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감옥사까지 품은 장소였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특히 강하게 남는 것은 감방, 젓가락, 화장실, 교수대, 사형장 같은 구체적 사물과 공간이다. 거대한 역사 설명보다 나무젓가락 하나, 감방 안 변기 하나, 교수대의 마룻바닥 하나가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사람은 그곳에서 이름과 생각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통제되고 감시되고 처벌되는 존재로 다루어졌다. 감옥의 폭력은 거창한 구호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자고 배설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구체적인 몸의 고통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이 책을 통해 선명하게 다가왔다.
결국 서대문형무소는 시대마다 권력이 두려워한 사람들을 가두었던 감옥이다. 일제는 독립운동가와 민족지도자를 가두었고, 해방 이후의 권력은 정권에 비판적인 정치인, 지식인, 학생, 민주화운동 세력을 가두었다. 이곳을 제대로 기억하려면 독립운동가들의 희생만이 아니라, 해방 이후 독재정권 아래에서 벌어진 억압과 사법폭력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 자랑스러운 역사만 골라 기념하는 것은 온전한 기억이 아니다. 이 책은 서대문형무소라는 장소를 통해, 역사는 기념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픈 곳까지 들여다보고 반성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