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의사에 대한 온전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당위적인 차원의 언급이아니라 정말로 그가 걸은 길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절실하다. 김익상의사는 1922년 3월 중국 상하이 황포탄의거의 주인공이다. 그가 쏜총탄은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의거, 1933년 백정기 의사의 육삼정의거와 더불어 ‘상하이 3대 의거‘로 불린다.- P27
김 의사가 총을 겨눈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1864~1929)는 일본 군부의영웅이라 칭송받던 인물이다. 일본 육사 출신으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모두 참전했으며, 일본 군부의 대표적인 전쟁론자로 평가받으며 승승장구했다. 특히 1920년 훈춘사건과 경신참변의 책임자였다. 말 그대로 원흉그 자체인 인물이 의열단이 활동하는 상하이로 찾아온다니, 김익상을 포함해 의열단원들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P27
"어떠한 형벌이든지 사양치 아니할 터이며 나의 수령과 동지자는 말할 수 없으나 이후로 제이 김익상, 제삼 김익상이가 뒤를 이어 나타나서 일본 대관 암살을 계획하되 어디까지든지 조선독립을 이루기까지는 그치지 아니할 터이라. (중략) 나의 이번 일에대하여는 조금도 뉘우침이 없다."- P30
1922년 9월 일본 재판부는 김익상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사는사형해야 한다며 항소했고, 그해 11월 2심에서 김익상은 나가사키 공소원(고등재판소)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후 일본 왕가의 행사 등을 이유로무기징역과 20년 형으로 감형됐다. 이후 추가적으로 감형되어 1936년 여름 석방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의 나이 마흔하나였다.- P30
놓쳐서는 안 되는 점은,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진 김익상의 출소 이후의 삶과 마지막을 특정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는 그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의 유해를 수습하지 못했기에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 마련된 위패 하나로 그를 위로할 뿐이다. 그의 위패 머리에는 국가공인 친일파 신태영과 이응준이 잠들어 있다.- P31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김익상을 기리는 시민들의 노력으로 2022년 3월28일 서울시 마포구 아현주민센터 입구에 ‘김익상 의사 본적지 터 표석이 세워졌다. 그가 태어난 곳은 당시 행정구역상 경기도 고양군 공덕리로지금의 아현동 일대이다. 이런 까닭에 마포문화원이 황포탄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아현동 주민들과 뜻을 모아 표석을 건립했다. 조금은 느리더라도 역사란 결국 이렇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P31
김학철 지사는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했다.
북에서 잠시 활동했다는 것이 이유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옳지 않다. 김학철 지사의 유언을 생각한다.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을 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을 하라. 우리 김학철 지사를 가슴에품고 사람답게 살자.- P33
1921년 5월 11일 대구감옥에서 순국한 박재혁은 고향 부산의 한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정부는 1969년 10월 박 의사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76번 무덤에 모셨다. 박 의사의 후손 및 박 의사를 따르는 후인들의 노력으로, 의거지인 부산경찰서 터에도 박 의사의 의거를알리는 입간판이 세워졌다. 주소는 용두산으로 향하는 길목인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로85번길 15‘다. 현재는 큼지막한 노래방이 자리해 있다. 이곳 역시 박 의사 생가 터인 ‘범일동 183번지‘와 더불어 너무나도 귀한 곳이다. 부산에 간다면 꼭 들러 박 의사를 위해 소주 한잔 올렸으면 좋겠다.- P40
월요일 오후 군함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평일인데도200명이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배에 오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온 사람들만 이 정도면, 휴일이나 단체 관람이 있을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올까 싶었다. 나가사키 공식 관광 웹사이트의 "세계문화유산 군함도를 가까이서 보자!" 문구처럼, 세계의 유산이 된 군함도는 이제 나가사키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되어 일본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온 관광객을 빨아들이고 있다.- P41
일본 정부는 1922년 ‘데지마 네덜란드 상관 터‘를 국가사적으로 지정했고, 2025년 현재 데지마는 옛 모습이 복원돼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폭신폭신 다디단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한 입 베어 문 채 ‘코히커피의 일본식 발음)‘ 한 잔 들고 데지마를 걸어 보길 추천한다. 일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됐는지, 그 거리를 거닐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하게 된다.- P52
그런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피해자‘ 일본에 대한 참상만이 강조됐을 뿐전쟁을 일으킨 ‘가해자‘ 일본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끌려와 총을 들고, 노역하고, 원자폭탄에 맞아 사망한 조선인에 대한 기록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 중 일본은 150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을 열도로 끌고와 탄광이나 조선소로 보냈다. 또 일부는 학도병으로, 위안부로 전선에 보냈다. 2010년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펴낸 자료에 따르면, 원폭에 피폭된 조선인 수는 히로시마에서 5만 명, 나가사키에서 2만 명으로 추정된다.- P54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친일 청산을 위해 일생을 바친 선구자 임종국 선생의 이름을 딴 임종국상 2022년 사회 부문 수상자가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이라는 발표를 보고 그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는 선정의 이유로 "풀뿌리 시민운동이 동아시아의 과거청산과 평화 실현에 기여한 공로"를 들었다.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이 극우세력이 기승을 부리는 어려운 여건 아래서도 흔들림 없이 평화운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 또한 높이 평가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이곳에 한번쯤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P59
"받은 고통에서 가한 고통의 깊이를 깨닫는 것으로 나아가야만평화를 구할 수 있다."- P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