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꼿꼿하며 간쟁을 서슴지 않았다. 올곧은 간쟁으로야 어찌 태부 신석정이나 혜민시 대령 난곡을 당할까마는, 신석정이나난곡은 황제를 독대하여 간쟁하지만 주공신은 편전에서 대놓고 하기 일쑤였다. 그는황제의 처족이나 척신들을 물리치는 일에누구보다 앞장섰으며, 관제를 대폭 개편해폐습을 개혁하고 유신을 단행해야 한다고주장했다. 그리고 그것이 관철될 때까지 끊임없이 상소했다.
마지막 상소문에서도 주공신의 서슬은한 치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선조들이 다스리던 땅은 송곳을 꽂을 만한 작은 땅이라도되찾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황제의 도리라고 했다.
"비록 짐이 아끼는 독수리를 죽인 놈이지만, 늠름한 기세를 멸할 수 없도다. 가져가 딸에게 주어라. 또한 딸의 용기가 가상하여 금잔과 옥환을 하사하노라."
뜻밖에도 금잔과 옥가락지까지 받은 주공신은 머리를 조아렸다.
"독수리가 어느 정도 살면 묵은 털로 나래가 무거워지고 발톱의 날카로움도 무뎌지며, 부리도 닳아 그대로는 몇 년 더 살 수없게 되옵니다. 이때 살기를 체념한 독수리는 얼마 못 살고 죽지만, 용기 있는 독수리는 깎아지른 벼랑에 둥지를 틀고, 아무것도먹지 않고 부리를 절벽에 부딪쳐 깨뜨리옵니다. 그렇게 계속 깨뜨리면 닳아빠진 부리가 빠지고 새 부리가 나옵니다."
"발톱도 절벽에 갈고 또 갈면 묵은 발톱이 빠지고 예리한 새 발톱이 나오는데, 이때쯤이면 독수리가 벼랑을 벗어나 창공을줄곧 날면서 묵은 털을 빼버리옵니다. 독수리는 털이 빠진 채 바싹 말라 벌거숭이가되지만 다시 새 털이 나게 되옵니다. 털은윤이 흐르고 부드러우며 가벼워서 창공을맘껏 날아다닐 수 있사옵니다. 이렇게 처절히 고행을 한 독수리는 40년을 더 산다 하옵니다."
주공신의 얘기를 들으면서 대흠무는 독수리의 고행과 웅지가 고구려가 멸망한 지30년 만에 일어선 발해의 기상과 닮았다고생각했다.
그날 밤 국구 고원이 은밀히 대흠무를찾아왔다.
"폐하, 신이 감히 아뢰옵니다. 충신을 얻기 위해서는 주공신의 딸을 후궁으로 맞아들이시옵소서."
사사로이는 장인이 아니던가. 대흠무는젊고 고혹스런 후궁을 두라는 국구의 말을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천하를 다스리려면 물과 같아야 하옵니다. 물은 만물에게 두루 베풀지만 다투는일이 없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위치하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연한 물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쇠와 돌을 다루고, 스스로모양을 갖지 않아 작은 틈새까지 자유자재로 스며드옵니다. 앞으로 주공신은 간쟁을서슴지 않을 것이니, 그의 간쟁을 받아들이시면 반드시 성덕이 사해를 비출 것이옵니다.
"폐하, 새가 죽을 때는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말이 옳다고 했사옵니다. 누구든 죽기를 각오하고 간하거든,옳은 말이라 여기시옵소서."
결국 밤 이슥토록 고원과 마주앉아 청담을 나눈 대흠무는 고원의 청을 듣기로 마음을 굳혔다.
병신(756)년 화창한 봄날, 발해 황제 대흠무는 강역의 중심인 상경으로 천도하고선조에게 제를 올렸다. 천지신명께도 도성의 무궁함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 후 대사면을 단행했다. 죄의 대소를 논하지 않고 뇌옥을 열게 했으며, 유배 갔던 자들도 모두방면했다.
신석정은 대흠무가, 위기에 처한 당나라를 급습하거나 내홍에 싸인 당나라가 경황이 없을 때 신라를 공략하여 남방을 평정하거나, 국기를 바로잡아 대국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쇄신을 단행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신석정은 그런 기운을 곳곳에서 감지하면서도 부러 내색하지 않았다. 대흠무는누가 간언하지 않아도 천하의 흐름을 읽고민심을 세세히 파악했다.
"높은 산을 오르면 눈보라와 강풍과 세찬 빗방울이 그치지 않듯 인간사도 그러하옵니다."
그 무렵 당제 이융기는 재상 양국충의간언을 받아들여 장안의 서남방에 있는 파촉으로 몽진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극비리에 용무장군 진현례에게 2천 명의 호위 군사와 말 9백여 필을 대기시켰다. 때는 병신(756)년 6월 13일이었다.
부슬비가 내리고 안개 자욱한 새벽에 몰래 황궁을 빠져나가는 도피 일행은 3천여명이었다. 태자와 공주 등 황손들과 양국충, 위견소, 고력사가 황제를 따랐다. 양귀비를 비롯한 양씨 일족과 환관, 비빈들이 뒤따르고 있었지만 도망자의 처량한 행렬이었다.
도주 이틀째 되는 6월 14일, 마외역에 도착했지만, 현령은 도망쳤고 배곯은 군사들은 금세라도 폭동을 일으킬 것 같았다. 눈치 빠른 호위 대장 진현례는 목청을 세워군사들의 원성을 엉뚱한 데로 모았다.
"지금 천하가 무너져 백성들이 떠돌아다니고 만승천자께서도 모든 것을 잃으셨다.양국충 같은 간신이 백성들을 벗겨 먹지 않았다면, 조야가 어찌 오늘의 처지에 이르렀겠느냐? 양국충을 죽여 만백성들의 원망과분노를 막아야 한다."
호위 대장의 선동으로 호위 군사들 손에양국충의 목이 달아났다. 그의 아들 호부시랑 양훤도 아비와 같은 신세가 되었고, 양귀비의 언니 한국부인과 진국부인도 칼날아래 이슬이 되었다.
"폐하, 소첩은 폐하의 은의에 어긋나는몸이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한시 바삐 부처님을 뵙게 해주옵소서."
눈물범벅이 된 양귀비의 목을 고력사가 비단수건으로 졸랐다.
"귀비, 극락왕생하여라."
이융기는 끓어오르는 통한을 삼켰다. 서른여덟의 천하절색 양귀비는 경국지색이라는 이름과 함께 사라졌다.
대흠무는 당나라 사신이 돌아간 후 신석정과 대신들에게 안녹산 군사와 함께 당나라 깊숙이 진격한 발해 군사 5천 명을 회군시킬 방책을 마련하라고 했다.
한편, 대굉임 일행이 발해 강역을 순람하여 북방의 흑수 지경에 다다랐을 때는 추위가 극심한 한겨울이었다. 그들은 덫으로 작은 짐승을 잡고 창애로 꿩을 잡아 허기를때우며 순례를 계속했다.
그러나 어느 틈에 설개의 졸개가 대굉임을 향해 장도를 내리쳤다. 난청이 칼날을다급히 막다가 왼쪽 목을 찔려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삽시에 덜미에서 붉은 피가솟구쳤다. 어수선한 틈에 설개가 말을 타고도망치기 시작했다
난청이 무겁게 눈을 한 번 떴지만 이내눈꺼풀이 내려앉았다. 회자정리라지만, 인생의 무상함이 대굉임의 가슴을 메웠다. 어찌 그리 갈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의 목숨이이리 가볍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대굉임은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 채하늘을 보았다.
난청의 아버지 난삼은 열아홉 젊은 나이에 태자비 강사임을 위해 험준한 태백산에홀로 올라 자인삼을 캐어 바쳤다. 소꿉동무강사임이 회임하자 태자비의 순산을 위해초하루와 보름마다 몸을 깨끗이 하고 천신에게 빌었다. 그의 아들 난청도 황자를 지키려다가 기꺼이 목숨을 바쳤으니 어찌 대굉임의 가슴이 미어지지 않겠는가. 난청은그렇게 허망하게 저승길로 떠났다.
"그 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수려하면, 이름도 서릿발같이 하얗다 하여 상악이라 부르겠습니까. 또한 가을 단풍이 기가 막히다하여 풍악, 겨울 되어 나뭇잎이 다 떨어지면 신기한 바위가 드러난다 하여 개골, 동해 바다 가운데에 있어서 신선이 살고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는 영산이라 하여 봉래라고 합니다. 또 부처님께서 살고 있는 동해한가운데의 아름다운 산이 금강산인데, 그산처럼 아름답고 신비하다 하여 금강산이라고 부릅니다. 대방광불화엄경이라는 경전에 나오는 산 이름이 바로 금강산입니다."
대흠무는 사위 양태사에게 대임을 맡기기로 했다.
"일본 가는 뱃길이 멀고 험해서 아까운인재들이 주검 되어 깊은 바다에 수장되니짐의 마음이 심히 아프도다. 부마는 오늘부터 해로를 익히고 교역을 배워 짐을 보필하고 나라의 동량이 되어라."
해가 바뀌어 정유(757)년 정월 보름 무렵, 경천동지할 소식이 장안에서 날아들었다.천하를 뒤흔들던 연나라 황제 안녹산이 급사하고 둘째아들 안경서가 계위했다고했다. 뜻밖의 보고를 받은 대신 고원은 급히 황제를 알현했다. 대흠무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안녹산에게 은밀히 빌려준 발해 군사 5천 명을 안전하게 회군하는 일이 화급했다.또 안녹산을 거병케 하는 데 사력을 다했던이합비의 안전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후 이합비가 참살당했다는 소식이전해졌다. 이합비를 끝까지 수발했던 해시례가 천신만고 끝에 장안을 탈출하여 상경까지 도망쳐 올 수 있었던 덕에 안녹산이급사한 내막과 이합비의 죽음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신석정의 머리는 오직 이합비의 시신을찾을 생각 뿐이었다.
병신년 정월 초하루에 낙양에서 황위에올랐으니, 안녹산은 꼭 1년 만에 아들과 심복의 손에 암살당했다. 이와 함께 안녹산의마음을 흔들어 중원을 어지럽힌 이합비는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안경서는 황위에 오래 있지 못할 것이오. 하북의 맹주가 된 사사명에게는 10만 대군이 있소이다. 안경서가 사사명을 위천왕으로 봉했지만, 사사명이 심복 장수 채희덕에게 태원성을 맡기고 범양으로 급히돌아간 건 딴 생각이 있기 때문이오. 안녹산이 낙양과 장안을 함락하고 막대한 금은재화를 범양에 옮긴 걸 사사명이 왜 모르겠소."
혜민시에서 혜민부로승격하면 그 수장은 중신반열에 오르고, 황제를 수시로 독대할 수 있으니 벼슬만 중신이지 권신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대흠무는 대신들의 주청을 받아 혜민부경에 난곡을 임명하였다. 의술에 능하고 시문에 밝으며 황제의 심경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사명은 오승은을 참살하고 무술(758)년 6월, 13만 대군을 일으켰다. 그는 당군에 대패하고 도망 다니는 안경서의 구원 요청을 핑계로 단숨에 위주를 점령하는 위용을 보였다. 이에 안경서는 목숨을 부지하기위해 사사명에게 전위하겠다고 말했다.
기해(759)년 정월 초하루, 사사명은 위주에서 연나라 황제를 칭하고 즉위했다. 그러나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봄날 느닷없이 안경서를 형장에 세우고 참수했다. 안경서의죄목은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아버지를 죽이고 황위에 올랐으니 천륜을 어긴 대역죄를 지었다는 것이었다. 안경서 뿐만 아니라 동생 4명과 그의 심복들도 목 졸라 죽이는 교형에 처했다.
그러나 대흠무는 일거에 거절했다. 당나라에서도 수차 간곡히 원병을 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어느 편도 거들지 않는 것이유익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흠무의 계략이었다. 겉으로는두 나라의 전쟁이지만 실제로는 내란이었다. 중원의 내란이 길어질수록 발해는 오히려 부강해질 것이다. 내란이 끝나면 강역이 폐허가 되고 국고가 비어서 군심과 민심을 다독거리는 일만도 힘겨울 것이다.
발해는 그 틈에 군사를 기르고, 농경과물산을 장려하고, 교역을 넓혀 나라를 부국강병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강직한 신하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 중 당나라 유학파들은 황제 대흠무가 유약하다고 생각했다. 위기에 처한 당나라를 도와주고 중원이 평정된 뒤 약조대로 요서 땅을 차지하면, 그것이 바로 부국강병이라고 생각했다.
"춘추필법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었도다. 첫째 존화양이라 하여 중화를 높이며 다른 나라는 깎아내리고, 둘째는 상내약외라하여 중화의 역사는 상세히 기술하되 다른나라 역사는 간단히 쓰며, 셋째 위국휘치라하여 중화를 위해 수치스러운 것은 모두 숨긴다는 것이다. 공자가 춘추를 쓰면서 왕이나 천자의 잘못을 대놓고 쓰지 못해 이리저리 에둘러 기술한 것이 바로 춘추필법임을경들은 아는고?"
"그러함에도 우리의 사가와 선비들이 춘추필법의 장단에 춤을 추며 중화의 사서를베끼고 있지 않는가. 간쟁을 하려거든 그런어리석고 옹졸한 선비들처럼 정세를 다루고 있지나 않는지 살펴보라. 당나라는 내란이 평정되면 분명 오랑캐들이 스스로 군사를 일으켜 황은에 보답했다고 기록하리라.섣불리 우리가 기병하지 않는 까닭이 거기에 있음을 경들은 숙고하라."
"성무고황제께서는 유언으로 신라를 치지 말라 이르셨노라. 나당 연합으로 백제와고구려를 멸망케 했더라도 다 같은 단군자손이니 형제로 대하라 하셨도다. 신라를 치는 것은 바로 형제를 죽이는 것과 같도다.현명한 신하는 먼저 백성의 어려움을 보고,간교한 신하는 먼저 군주의 얼굴빛을 살핀다고 했도다. 경들은 늘 바른말로 간하니충신이 분명하도다. 언제고 짐의 부덕을 간쟁하는 데 충절을 아끼지 말라."
사사명도 안녹산처럼 자식 복이 없었는지 장남 사조의 대신 첩의 자식이자 막내인사조청을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었다. 사조의는 아버지가 동생 사조청을 부원수로 삼고 자신을 제거하려 하자, 신축(761)년 3월심복 장수 낙열, 허계상과 모의하여 아버지사사명을 죽이는 패륜을 저질렀다.
더구나 당나라와 신라, 일본까지 교역하여재산을 불린 것을 푼푼하게 나누어주었기때문에 대소신료들로부터도 신망을 크게얻었다. 그러나 강직한 신하들은 대견강의득세를 걱정하여 대술묘를 후궁으로 앉히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특히 양소화는 대술묘의 입궁뿐 아니라대견강과 대원의가 근신이 되는 걸 한사코반대했다. 그들이 돈벌이라면 해적질까지서슴지 않았으며, 백성들의 고혈을 짜 큰재물을 모은 죄상을 낱낱 적어 상소했다.그러나 대흠무는 주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구려 후손들 중 왕모중과 고선지 이후에 후희일과 이회옥이 두각을 나타내며 주목받고 있는 걸 대흠무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지략과 용맹이 두드러진 탓도 있지만,그들 휘하에 있는 군사들은 고구려 후손들이 주축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태부는 오직 충성으로만 폐하를 섬기며나라의 부국강병에만 혼신을 바치옵니다.그러나 국구는 고구려 왕손의 피를 숨기지못하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보위에 오른 지 스물다섯 해가 되었사옵니다. 태자를 봉하시면 그들이 태자에게 모여드는 게 보일 것이옵니다. 그러면충신과 간신도 보이게 되옵니다."
대흠무는 당당한 체구의 대원의를 내려다보며 지략과 기개가 담대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한 말이 다시는 입 밖에서 공론이되지 않게 하라. 너의 충절은 잊지 않겠도다."
"폐하, 사람이 모여드는 이유는 이득이나 덕이 있기 때문이옵니다. 국구 고원은덕이 있어 사람이 모여들고, 대견강은 이득이 있어 사람이 모여드는 것이옵니다. 덕을좇는 자들은 도리를 지키지만, 이익을 좇는자들은 사욕을 위해 음모와 흑심을 품게 마련이옵니다."
대흠무의 얘기를 다 듣고 난 신석정은 오히려 대원의의 부친인 대견강을 비판하고 나섰다.
"폐하, 재물은 반드시 사람을 떠나지만덕은 후세까지 모여드옵니다. 지략이 지나치면 음계가 되고 음계가 지나치면 반심이되옵니다. 대견강 부자를 경계하옵소서."
신석정이 아니라면 차마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황제가 총애하는 대술묘의 아버지요, 오라버니였다.
대원의의 주장이 마땅히 옳으니 받아주옵소서. 양소화가 비록 여인의 몸이지만 웅지가 장대하니 재상으로 삼아 곁에 두옵소서. 대원의의 현책은 받아주시고 간책은멀리하옵소서."
"폐하, 국구는 고구려 왕손이옵니다. 그에게 충역이 있으면 진작에 작은 징후라도있었을 것이옵니다. 국구는 겉모습과 나이만 변했을 뿐 마음은 한결같사옵니다. 통촉하옵소서."
"짐이 어리석을 때마다 눈이 흐려졌음이니, 눈에 침을 맞아야 한다고 말하시오.또한 남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귀가 어두워졌음이니 귀에 침을 맞으라 하고, 부당한명령을 내리거든 입이 가벼워졌음이니 입에 침을 맞으라 하시오. 하늘을 우러러보지못하면 머리끝에 침을 놓겠다 하고, 덕이모자란 듯하면 가슴에 침을 맞으라 하시오."
"폐하!"
신석정은 몸을 더 조아렸다.
"경은 신하일 뿐 아니라, 짐의 스승이자자손들의 스승이오. 오늘부터 태부는 짐에게 무슨 말을 해도 벌하거나 죄를 물을 수없는 면책권과 불촉권을 주겠소."
"폐하, 대원의의 얼굴은 역상이옵니다.신이 청하건대 그를 멀리하시어 후환을 방비하옵소서."
하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신석정은 단호하게 간했다. 양소화도 누차 대원의를 멀리하라고 상소했다.
"짐에게 맡겨 두시오."
기어이 황제는 태부의 뜻을 자르고 물러가게 했다.
조정에서는 그녀의 공을 높이 받들어 개국공으로 추증했지만, 백관들은 별로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신석정과 무명선사를 비롯한 소수의 권신들만이 그녀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겼다. 그들은 양소화의 급작스런횡사에 의문을 품었지만, 진위를 밝힐 만한단서를 찾지 못했다. 양소화의 죽음에 얽힌풍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10호 연좌제 때문에 그녀를 미워하는 권신들의 암계가 아니면 그녀가 매섭게 비판한 대원의 일가의 응징이란 소문이 나돌았다.
그 즈음 대원의의 사가에는 심복 몇 사람이 무릎 끓은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찌 감쪽같이 주살하지 못하고 풍문이들끓게 했느냐?"
"곧 주서채를 죽여 소문의 진원을 없애겠습니다."
이렇듯 대흠무는 3성 6부 1대 7시 1원 1감 1국의 주요 관작을 모두 정비했다. 그외에도 무관직제 10위를 정해 각 위마다대장군, 장군을 두고 그 밑에 도장과 낭장을 두었다. 별도로 혜민부를 두어 백성을구휼하도록 했고, 문무를 가리지 않고 품계를 1품에서 9품으로 나누어 각각 정과 종으로 구별했다. 그 안에서도 상과 하를 구분하여 벼슬을 세분했다.
대흠무는 도성인 상경용천부를 비롯한 5경과 15부의 도독과 그 관하 62주에는 자사를 모두 정비하여 강역을 장악하는 쇄신을단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