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 이처럼 누추한 안국사까지 왕림하셨으니 감은부복하나이다."
대흠무 일행은 승려를 따라 절 마당으로들어섰다. 앞뜰에 30척이나 높이 솟은 9층석탑이 있고 그 옆으로는 온통 꽃밭이었다.승려는 탑 앞에 합장하고 낭랑한 목청으로고했다.
"나무 아미타불, 혜명선사시여! 제자 무명은 10년을 기다려서 효감금륜성법 대왕을 모셨나이다. 굽어 살피소서."
별안간 거문고 줄이 툭 끊겼다. 무명은거문고를 내려놓고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귀인이 엿들으면 줄이 끊어진다 했나이다. 엿듣는 귀인은 어디 계시옵니까?"
대흠무는 기척하고 무명 앞으로 나섰다.
"폐하, 어찌하여 홀로 들으셨사옵니까?"
"거문고 소리가 짐의 마음을 헤집으니어찌 잠들 수가 있으리오. 달은 밝고 경치는 수려하니 춤이라도 추고 싶소."
"혜명선사께서 세속에 나와 백성을 구원하고 나라를 강건하게 하셨음을 아시오?"
"스승께서는 혜안이 있으시니 능히 그러셨을 거라 짐작되옵니다."
"혜명선사의 수제자이니 응당 짐을 도와나라와 백성을 구원해야 하오."
무명은 고개를 저었다.
"개국 황제이신 성무고황제께서는 유지를 남겨 부처님 나라 천축에 가서 진신사리를 구해 나라의 안녕을 도모하라 하셨소.만천하를 둘러보아도 멀고 험한 천축까지다녀올 만한 승려는 무명뿐이오. 짐이 안국사까지 달려온 것은 무명에게 대임을 맡기기 위함이오. 이는 또한 혜명선사의 가르침이기도 하오. 혜명선사는 짐이 올 것을 미리 알았듯 무명이 대임을 맡게 될 것도 알았소이다."
황제가 애원하는 것은 정녕 보기 드문광경이었다.
"소승은 어리석어 제 한 몸 추스르지 못하는 승려이옵니다."
대흠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두손을 모으고 무명에게 절을 올렸다. 한 나라의 주인이요, 지엄하기가 하늘과 같다는황제가 승려 앞에 꿇어 엎드렸으니 천하가놀랄 일이었다.
대흠무의 곡진한 간청을 더 물리는 일이불충임을 깨달은 무명은 황제 밑을 파고들듯 땅바닥에 엎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이 한 목숨을 바쳐 성은에 보답하겠나이다."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서 강역을 넓혀사방이 4천 리나 되옵나이다. 중경은 남쪽에 위치하였으나, 상경은 국토의 중심이옵니다. 서로는 요하를 경계로 당나라가 있고, 북으로는 속말수를 경계로 거란이, 흑수를 경계로 흑수가 있으며, 남으로는 패수를경계로 신라가 있나이다. 이렇게 강성해진발해의 도읍지는 홀한수를 끼고 번성해야하옵니다."
배를 버들방천에 매어두고 뭍에 오르자, 호숫가를 따라 버드나무가 울창했다. 그 길을 따라가니 천하를 희롱하는 듯 웅장한 금경(경박)폭포가 나왔다.
거연히 솟은 소나무 밑에 선 황제 일행은 마치 거센 눈발처럼 물보라가 휘날리는폭포를 바라보며 누구라 할 것 없이 감탄했다. 천하 장관이었다. 흡사 하늘에서 수백 마리 백룡이 내리꽂히듯 했고, 용궁에서수많은 은룡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 천년이끼 자란 바위 위에서 홀한해의 맑은 물이쏟아지고 있었다.
높이가 390여 척이요, 너비가 1,300여 척이나 되는 푸른 소에 쿵쿵 떨어지는 폭포의 울부짖음은 산악이 무너지고 하늘이 진동하듯 요란했다. 홀한수(목단강)는 홀한해와 옛 화산의 분화구였던 이 깊고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끝없는 샘물이 시원이 되고 원천이 되어, 수백 리 화산석 벌판을 적시며 유유히 동으로 흘렀다.
이튿날 아침, 황제 일행은 부지런히 지하삼림을 향했다. 지하삼림은 지금으로부터78년 전 대흠무의 증조부이자 고구려 유장인 진국장군 대중상이 고구려 멸망 뒤 패잔병과 저항군을 규합하여 개국의 발판으로삼았던 곳이다.
"정말 감회가 깊도다."
"폐하, 이곳이야말로 꿈에 용이 승천한곳이니, 용천이 틀림없고 황도로 손색이 없사옵니다. 이런 길몽이 어디 있겠사옵니까.사람이 생존하자면 물과 곡식이 있어야 하옵니다. 저 너른 들에 양식이 풍성하고 용천이 있어 세세연년 물 걱정은 아니 해도되니 이런 길지가 어디 있겠사옵니까. 이곳을 상경용천부로 삼고 도읍하소서."
"당나라 장안의 황성 못지않게 축성하되고구려의 혼을 잊어서는 안 되니 옛 평양성을 본뜨게 하라. 10만 호가 살 만큼 성역을넓히고 발해의 장구한 역사가 자리 잡게하라. 결코 서둘러 축조하지 말고 10년 동안 짓되 천년 동안 보전케 하라."
"상경은 개활지여서 상호 왕래가 편한땅이요, 땅이 기름지고 기후도 따뜻하며 홀한수가 있어 농사짓기도 좋고, 마소 기르기도 좋나이다. 백리 석판벌에 홀한수가 흐르고 높은 산들이 병풍인 양 둘러쳐 천년 요새를 이루고 있어 나아가면 진공할 수 있고물러서면 방어할 수 있는 요충지이옵니다.더욱이 북방으로 강역을 넓혀 나가기 위해서는 국토의 가운데에 자리 잡아야 하옵니다."
무명선사가 황명을 받들어 부처님 진신사리를 구하기 위해 상경을 떠난 것은 병술(746)년 5월이었다.
"선사를 사지로 내모는 것 같아 짐의 마음이 편치 못하오. 그러나 이는 발해의 대업이자 숙원임을 잊지 마시오."
초기의 순례자들 가운데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고승은 동진시대의 법현이었다. 뒤를이어 북위 왕조 때 호태후의 명을 받고 불전을 수집하기 위해 송운이 순례를 떠났다.그로부터 한 세기 뒤에는 당나라의 현장법사가 천축국을 다녀왔고, 의정도 뒤따랐다.바람결에 들리는 얘기로는 신라의 승려 혜초가 천축에 다녀와서 지금 장안에 머물고있다고 했다.
천복사에서 금강지 선사는 이미 5년 전에 입적했다는 애석한 소식을 들었다. 금강지의 법통을 이은 승려가 신라에서 건너온 혜초라는걸 알고 그를 만나보기로 했다.
무명은 혜초가 묵는 처소로 찾아갔다. 단아한 표정으로 손을 맞는 혜초는 따스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했다.
"소승, 문안 여쭙니다."
혜초가 합장한 채 반가운 낯으로 물었다.
"누추한 곳을 어찌 찾아주시었소?"
"천축을 순례하려 합니다. 금강지 선사께 가르침을 받고 싶어 왔으나, 이미 입적하셨다고 하여 스님을 찾아뵈었나이다."
"천축에 가신다니 큰 뜻을 세우셨습니다."
"스님께서도 천축에 다녀오신 걸로 알고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다녀왔습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소승을 이곳으로 인도했습니다.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천축으로 향한 것은 소승의 나이 스무살 때였습니다. 스물네 살에 돌아왔으니, 4년 정도 걸린 셈입니다. 자그마치 5만 리길이었으며, 모래폭풍과 모든 것이 다 말라비틀어지는 혹독한 더위, 느닷없이 길을 막는 산적 떼와 가도 가도 알 수 없는 길들…… 세상 모든 것이 순례의 길을 막는 악귀같았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천축에 당도해 부처님의 자취를 순례할 수 있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혜초는 계해(723)년에 금강지의 권유로광주를 떠나 약 4년 동안 곤륜(동남아시아)과 불서(수마트라), 사자주(스리랑카)와 오천축, 북천축 등 서역 여러 지방을 순례했다. 그리고 정묘(727)년 11월에 안서도호부의 소재지 구자를 거쳐 장안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천축에 가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뜻을 세워 가는 것이고,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가피로 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어려울 때마다 먼저 그 길을 다녀온 선사들을 떠올리고, 발해 황제의 간절한 염원과 백성들이 기다리는 정법을 되새겨야만 합니다."
옥문관은 한나라 무제가 장성 서쪽 끝에설치한 관문이었다. 후에 무제가 하서4군을 설치하고 서역을 지배하던 거점이기도했다. 당시 서역 여러 나라에서 옥을 가져올 때 이곳을 통과했기 때문에 옥문관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난주에서 옥문관을 거쳐 돈황까지는 2천9백 리나 되는 먼 길이었다. 천축에 가는순례자들은 대부분 돈황을 거치는 여정을택했다. 왜냐하면 돈황에는 석굴사원 천불동과 막고굴이 있기 때문이었다.
무명 일행은 돈황이 서역으로 통하는 또하나의 큰 관문이자 성지이나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그 먼 길을 갔다가 다시 돌아 나오기에는 시일이 많이 소요될 것 같았다.
천축을 비롯 서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거쳐야 할 거대한 장벽은 바로 총령(파미르고원)과 탑극랍마간(타클라마칸) 사막이었다. 죽음의 대장벽, 지옥의 대장벽이라불리는 이곳은 죽음을 불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넘나들었다. 법현, 현장, 혜초 모두그 지옥의 대장벽을 넘은 순례자들이었다.
무명은 사막으로 들어서기 전에 한번 더다짐했다.
사람들은 하나둘 지치기 시작했다. 발해에서 가장 강건하고 용맹한 자들인데도 이글거리는 태양을 견디지 못해 쓰러졌다.
"들으시라. 태양이 아무리 이글거려도 사람을 태울 수 없으며 더구나 사람의 마음은 결코 태울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마음을 부처님께 모으고, 관세음보살을 부르시오."
"아! 이 사막의 끝이 있기는 있습니까?"
검두밀이 물었다.
"세상에 처음과 끝이 없는 것이 어디 있으리오. 가고 또 가면 사막이 끝날 것이오."
무명은 믿고 있었다. 선험자들의 발자취를 믿기 때문이었다.
"늙은 몸을 섬겨야 하는 여인은 늘 삭일수 없는 애달픔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애달픔을 채워 줄 남자는 천하에 대부뿐입니다. 귀비는 열일곱에 시집와 한창 물오른스물두 살에 황제를 만났으며, 8년 동안이나 오직 늙은 남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몸을 바쳤습니다. 지금 귀비는 자신의 몸을열락에 빠지게 할 남자가 절실합니다."
안서도호부는 경자(640)년에 당나라가토노번(투루판) 지방의 고창국을 멸망시키고 서주를 경략하기 위해 설치했다. 6도호부의 하나로 서역 경략의 거점이었다.
안서도호부의 절도사는 고구려 후손인고선지였다.
고려노였던 고선지의 아버지 고사계는하서군에 종군하여 여러 공을 세워 장군이되었다. 그 공덕으로 고선지는 장군의 반열에 올랐다.
"이곳에서는 고구려 후손이라면 어딜 가나 대우를 받습니다. 총령과 탄구령을 가장먼저 넘은 군사들이 바로 고구려 후손들이었습니다. 고선지 장군은 천하의 영웅으로추앙받고 있습니다."
"우리도 익히 소문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은덕으로 동족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장군께서는 늘 고구려 후손이 세운 나라가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고구려의 혼을 일으켜 세우고 고구려 땅을 지키는 발해의 웅혼함을 부러워했습니다."
돈벌이를 하기 위해 길잡이를 하겠다던사내는 오히려 고선지 장군의 도움을 받으라고 권했다.
"고구려 후손이 절도사가 되었다면 그만한 공력이 있었겠지요?"
"부친 고사계 장군이 큰 공을 세워 사진십장을 거쳐 장군이 되었습니다. 그 아들도출중하여 장군에 오르고 공이 혁혁하여 절도사가 되었습니다.
성 밖까지 마중 나온 고선지의 위용은대단했다. 정예무사로 이루어진 겸종 30기의 늠름함은 마치 제후의 행차 같았다. 고선지를 호위하기 위해 늘어선 30기의 복색이 모두 선명한 붉은 색이어서 그런지 더욱당당해 보였다.
고선지는 말에서 내려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 오시느라 고초가많으셨습니다."
"제가 크고 작은 전쟁을 하면서 늘 저 자신을 괴롭히는 게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이미 짐작하셨겠지요?"
그리고는 좌우를 한번 둘러보았다.
"누구를 위해 싸우는 것인가입니다. 내나라를 멸망시킨 당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싸운다고 생각하면 맥이 풀리고 가슴 속에불덩이가 들어앉습니다. 아무리 큰 공을 세워도 저는 결국 고려노일 뿐입니다. 어떻게죽든 이민족이자 번병입니다. 곽국공 왕모중도 고구려 후손이었기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곳 총령은 피로 얼룩진 계곡입니다.오래전부터 수많은 전란의 현장이고, 산적떼가 숱하게 출몰하는 곳입니다. 이름 없이사라진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산적에게 약탈당하거나 목숨을 빼앗겼고, 발을헛디뎌 천길 벼랑으로 떨어져 죽었습니다.그래서 계곡에는 늘 피가 마르지 않았다고합니다."
그렇게 험한 길인데도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지나다녔다면 부처의 정법을 갈구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는 뜻이었다. 무명은경외심으로 새삼 내딛는 걸음에 힘을 주었다.
"진신사리가 꼭 붓다의 몸에서 나온 사리만을 뜻하는 게 아니오. 붓다의 말씀이새겨진 경전도 진신사리요, 붓다의 법인 지혜와 자비를 행하는 것도 진신사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니어찌 하늘이 감동하지 않고, 불법이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무서운 것은 사막도 험준한 벼랑도 아닙니다. 야수나 독충보다 더 조심해야할 것은 사람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사람이 더 무서운것은 욕심 때문이 아니겠는가. 일행을 짓누르는 긴장감이 높아질수록 발걸음이 빨라졌다. 냇물을 건너 한나절쯤 가자, 수림이깊어지고 푸르른 골짜기가 나타났다.
무명은 사람들이 말리는데도 잘 벼린 단검으로 자신의 배를 그었다. 칼끝이 지나간자리에 붉은 선혈이 뚝뚝 배어 나왔다. 무명은 진신사리 2과를 갈라진 상처 속에 넣고 실로 꿰맸다. 무명은 생살을 갈라 사리를 넣고 꿰매는 끔찍한 일을 오히려 광영으로 여기는지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신라는 선덕여왕 재위 말년인 병오(646)년에 당나라로 유학 갔던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하며 당나라에서 구해온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자장은 진골 출신으로 속명은 김선종이었다. 당나라에 들어가 8년간불경을 닦고 돌아와 대국통이 되었다. 자장은 당나라 종남산 운제사의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하며 정진한 끝에 사리를 구했다.그 사리는 통도사 외에 금성(지금의 경주)의황룡사탑과 울산의 태화사탑에 봉안되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심복을 궁중에 심어조정의 움직임을 신속하게 알아야 합니다.조정대신들과 황제의 근신들이 전하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변고가 생길 수있습니다. 고구려의 왕모중이 인신으로서는 더 오를 데가 없었는데 주검이 된 걸 모르십니까? 장안과 범양은 수천 리 길입니다. 그러나 장안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소상히 살핀다면 누가 감히 전하를 능멸하겠습니까?"
요서벌에서 누란의 위기가 꿈틀대고 있음을 모르는 이융기는 늙은 몸으로 양귀비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이튿날 새벽, 간밤에 은밀히 찾아왔던 심복 왕경유, 장경승, 이건묵이 모두 참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망연자실한 안녹산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곁에 있는 이합비를쳐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차가웠다.
"그들은 죽어 마땅합니다."
"무슨 소리냐?"
이합비의 말에 더욱 놀란 안녹산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그쳤다.
"발해를 공격하겠다고 20만 군사를 요청하는 순간 황제의 총애는 거두어집니다. 그러잖아도 조정에서는 20만 대군을 거느린전하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전하를 제거하려고 합니다. 그들이 조정의 밀명을 받고 전하를 떠보기 위해 술수를 부린것을 왜 모르십니까?"
"폐하, 보구림은 안녹산에게 뇌물을 받고 거짓으로 상주했사옵니다. 안녹산을 조종하는 것이 첩 이합비인데, 발해 여인으로안녹산을 부추겨 역심을 품고 군사를 기르게 한 계집이옵니다. 폐하께서 입조를 명하시면 안녹산은 반드시 입궐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통촉하옵소서."
그런데 북방에 모진 추위가 몰아치던 그해 동짓달 초순, 황제 이융기가 극비리에보낸 사신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의 품에는 황제의 친필 밀서가 들어 있었다. 안녹산은 크게 놀라 심복 장수들을 불러들였다.
장수들도 경천동지할 황제의 밀조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역적 양국충이 모반을꾀하고 있으니, 충신 안녹산은 군사를 이끌고 장안으로 달려와 양국충과 그 무리를 주살하라는 밀명이었다. 거병할 날은 을미(755)년 동짓달 아흐레, 군사를 일으켜 장안으로 진격하면 충성스런 신하들이 응전하겠다고 했다.
황제의 밀서가 가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합비와 둘째아들 안경서, 측근 심복엄장, 손효철, 가순, 여지희, 고수암 정도였다.
이융기는 황자 이완을 토적군 원수로, 고선지를 부원수로 삼았다. 그리고 급히 관고를 열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곡식과 옷감을주어 군사를 충원했다. 급조된 오합지졸이었지만, 천무군으로 명명했다.
영성은 고선지가 자신의 은밀한 청을거절한 데 앙심을 품고 허위사실을 들어 황제에게 밀고했다. 고선지가 섬주 땅 수백리를 버렸을 뿐 아니라, 뱃놀이를 즐기며국고의 관물을 도적질했다는 것이었다. 황제 이융기는 적을 앞에 두고 호화롭게 뱃놀이를 즐겼다는 말에 격노했다. 고선지가 적의 기습에 대비하여 강을 둘러본 일은 어이없게도 화근이 되었다. 늙은 황제의 흐린분별은 결국 고선지를 참하라는 어이없는명을 내렸다.
드디어 충역지자 안녹산이 낙양에서 칭제건원하고 연국을 선포하고 황위에 오르니, 때는 병신(756)년 정월 초하루였다.
하늘과 땅이 세상 만물을 만들어 내고,사람이 그것을 취해 생존하옵니다. 밭에 씨앗을 뿌려 곡식을 얻는 것도 햇빛과 물과흙이 조화를 부렸기 때문이옵니다. 천지만물은 하늘과 땅이 만들고 사람이 먹을 뿐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