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건국 이후 흑수말갈이 거듭 준동하자 대조영은 두 황자 대무예·대문예에게 토벌을 맡기며 후계 역량을 시험한다. 대무예는 기묘한 전술로 천금성을 함락하고, 대문예는 영자성을 평정하며 경쟁 구도가 형성된다. 그러나 대문예는 흑수말갈을 상대로 군공을 서두르다 조급한 추격으로 위기를 자초하고, 사사란 사건으로 명산성에 유폐된다. 또한 당의 정변(대장군 이다조의 무측천 축출 후 이융기 즉위) 속에서 정변의 공신 왕모중은 당에 숙위 중인 대문예에게 역심을 부추긴다. 당이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칭한 국서를 보내자, 대조영은 이를 빌미로 비사성 반환을 요구하는 등 압박 외교를 전개해 고토 수복을 완성한다. 719년 대조영 붕어 후 대무예가 즉위(연호 인안)하자 궁중에서 독침 암살 미수가 발생해 신재용이 사망하고, 이어 대문예는 반란을 획책해 당에 원군을 청하나 토벌군에 밀려 천문령으로 퇴각한다. 외부 위기와 내부 권력투쟁이 겹친 가운데 무왕 체제가 자리잡아 가는 과정이 4권의 핵심이다.
대조영의 출중한 무예와 대야발의 뛰어난 문필을 통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겠다던 진국장군 대중상의 뜻이 비로소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큰 나무는 바람 잘 날이 없으나 쉽게 뿌리 뽑히지 않나이다. 분한 생각으로 마음을 괴롭히면 몸이 긴장하니 무익하나이다. 좋은 생각은 돌에 새기고, 나쁜 생각은 얼음에 새기라 했나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남을 의심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달의 생김새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눈에 그리 보일 뿐이나이다. 그래서 세상을 어찌 바라보는가에 따라 현자가 되기도 하고 바보가 되기도 하옵니다
고사에 허유세이라는 말이 있나이다. 순임금께서 허유에게 천하를 물려주려고 청했더니,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듣지 못할 말을 들었다며 물로 양쪽 귀를 씻고 또 씻었나이다. 마침 소부가 말에게 물을 먹이러 나왔다가 허유가 귀를 씻는 자리에서 말머리를 돌렸나이다. 더러운 말로 더렵혀진 귀씻은 물을 어찌 말에게 먹일 수 있겠느냐며 그 또한 귀를 씻었다 하옵니다
나라 세운 공으로 보나, 따르는 신하와민심으로 보나 태자보다 과인을 따르는 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과인에게도 군사를 일으킬 힘이 있습니다
돌궐의 묵철은 당나라의 사주를 받은 힐질략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면초가의 신세가 되었다. 묵철은 당군보다 반란군을 먼저평정해야했다. 묵철의 운이 다한 것일까? 그는 반란군의 선봉인 발야고를 쫓다가 힐질략의 계략에 걸려들어 무참한 죽음을 맞았다. 한때북방의 강자로 당나라를 압박하며 중원까지 넘보려 했던 영걸 묵철은 어이없이 잡초 위에 피를 뿌리며 스러지고 말았다.
돈욕곡의 간청을 받아들인 비가는 즉시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화친했다. 묵철의 사위 고임무는 발해의 귀순을 거절하고 당나라에 귀순했다.
묵철의 어이없는 죽음과, 그의 사위이자 고구려 왕자였던 고임무가 당나라로 귀순해 버린 일은 발해에 변고나 마찬가지였다
잔당들을 설득하여 함께 투항한 고임무는 당제 이융기로부터 공을 인정받아 요서군왕에 봉작되었다. 고임무를 우대하여 잔당들을 투항하게 하고, 고구려의 적자인 그에게 발해의 확장을 저지시키려는 의도였다. 고구려 왕자 고임무가 요서에 있는 한 발해 군사들이함부로 넘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돌궐이 사분오열되고, 거란과 해가 투항했으며, 고임무는 투항하여 요서군왕이 되었다는 소식에 대조영은 착잡한 심정을 가누지못했다. 치아를 가려주던 입술처럼 요하 일대를 막아주었던 돌궐, 거란, 해, 습이물러났으니, 당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대치해야 했다.
병진(716)년 가을, 태자 대무예가 이끄는 3만 군과, 천리장성을 경계로 수성하고 있던 신성 일대의 2만 군, 요동성과 안시성일대의 2만 군을 합친 7만 군사는 3군으로나뉘어 천리장성을 넘었다.
우군은 손재가 2만 5천 군을 거느리고 통정진으로 달려가고, 좌군은 연충인이 2만 5천 군을 이끌고 회원진을 짓쳐들었으며, 중군은대무예가 2만 군을 이끌고 천통성에서 곧장 요하쪽으로 서진했다.
요하를 건너는 순간 중원은 운명을 건 사투를 벌일 것이옵니다. 때를 기다리옵소서.
그는 희대의 풍운아요 천기를 거침없이 누설했지만, 하늘을 거역하지 않았다. 가슴에 맺힌 것을 풀어헤치면서도 도리를 거스르지않았다. 해와 달과 오성이 한 자리에 모이는 칠요의 정기를 받아 황도를 이루지않았던가. 영웅호걸의 수가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대조영은 염려했던 것처럼 중도에서 쓰러졌다. 난중경의 간병으로 겨우 몸을 추스른 대조영은 대무예에게 부월을 주어 북정을 계속하라 이르고 1천 기만 거느리고 환궁했다. 뭇 신하들의 반대에도 완강히 주장을 굽히지 않고 떠난 북정길에서그만 병이 깊어진 것이다.
드디어 4월 초하루, 길일을 잡아 대조영은 천신과 지신 그리고 선조에게 제를 올려출정을 고하고 5만 군사를 점고하여친정길에 올랐다
정사(717)년, 당나라는 요서의 요충지 영주에 영주도독부를 설치하고 평로절도사를 겸직케 하여 군사 5만 명을 둔찰했다.또한 요충지인 유주에 범양절도사를 설치하여 10만 명이나 되는 대군을 주둔하게했다. 발해가 국경이던 천리장성을 넘어 요하 동쪽지경까지 차지하자, 위기를 느낀 당나라 조정에서는 동방 경략의 새 틀을짰다.
그러나 날이 밝은 뒤, 발해군의 드센 공성전을 견디지 못한 장도화는 반나절 만에항복하고 말았다
이틀 뒤 연충인이 이끄는 발해군이 회원진을 토평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태자가 이끄는 군사는 요하 일대를 장악했다. 황제가그리도 탐냈던 천리장성 너머의 요충지를 드디어 차지했다.
짐이 세상과 연을 끊거든 이레를 넘지 않게 장례를 치르되, 상례는 힘써 검약하라. 짐의 부황께서 그러하셨듯 화장하여 이 땅에 고루뿌려, 짐의 혼이누대에 번영을 누리는 것을 지켜보게 하라.이를 적어 준칙으로 포고하고 영승하라!
첫째는 발해 강역을 사방 5천 리로 넓혀 성조의 치세를 숭고하게 이어받아라. 둘째는 반드시 북정하여 흑수를 번속으로 삼으며,
셋째는 장차 힘을 길러 중원을 다스리고, 넷째는 같은 동족인신라와 화친하여 범하지 말고 남쪽바다 건너 일본까지를 경략하며,
다섯째는 사해를다스리되 그 근본을 열어야 하니, 천축(인도)에 가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오라. 그리하여 모든 백성이 한겨레로 일체가 되어 의좋고 정답게 살게 하라
용산으로 처소를 옮긴 지 하루 만에 대조영은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용산을 넘어 개국의 땅 동모산에 다다랐을 때, 대조영의 손에 든 것이 무엇이었는가? 바로 옥채찍이었다. 대조영은 드넓은 천하를 진동하려는 상징으로 휘둘렀던 옥채찍을 아들 대무예에게 넘겨주었다. 그에게 천하를 넘겨준 것이다
황제의 붕어는삽시에 천통성에 알려졌고, 곧 사방에서 봉화가 올랐다. 발해 강역에 있는 모든 봉화대의 검은 연기는 곧 백성들의 통곡으로 변했다. 대발해의 개국 황제 대조영이 치세 22년을 마치고 예척했으니, 영걸의 성수는 예순아홉이었다.
스물두 해 전에 고구려 후손 대조영이 동모산에 이를 때 상봉에 황룡이 너울거리는 것을 무수한 사람이 보며 환호했던 것처럼, 용산의 산마루에 연기가 솟아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것을 백성들은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울음을 터뜨리며 목청껏소리쳤다."보라! 하늘의 자손, 우리 황제께서 용을타고 승천하시누나!"
대조영은 아버지 대중상보다 더 강건할것 같았지만 젊은 날부터 죽음을 넘나드는 전투를 하고, 독화살을 맞거나 칼날에 베이며 살아온탓인지, 안타깝게도 일흔을 넘기지 못하고 영가가 되었다
천하영걸 대조영이 예척한 그해 기미(719)년 6월에 황태자 대무예가 황위에 올라 연호를 인안으로 하니, 그의 보령 마흔둘이었다.
황제 대무예는 부황의 묘호를 개국 황제에 걸맞게 태조라 칭하고, 당나라와 돌궐에서 보낸 조문 사신들을 맞아들였다.
옛날에 한쪽 귀와 한쪽 눈이 없는 신하가 있었나이다.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은죄 때문에 귀가 잘렸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죄로한쪽 눈을 잃었나이다. 이 늙은것이 잠이 적어 밤하늘을 바라보니 객성이 자미를 치고 북쪽으로 떨어지는 걸 보았사옵니다.
황제는 북정을 거두어들이고, 대문예를 추스르기 위해 홀한왕으로 봉하고 식읍 5천을 내렸으며, 그를 따르는 신하들의 품계를 높여주었다. 또한 열여덟 살이 된 장자 대도리행을 계루군왕으로 삼았다. 행여라도 골육상쟁의 화가 생길까 염려한 스승의 간곡한 청을 황제가 받아들인 것이다
"예부터 귀가 청력을 잃으면 우레소리를듣지 못하고, 눈이 시력을 잃으면 태양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사옵니다. 천둥소리가 작지않고 태양빛이 희미하지 않음에도, 당나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니, 그걸 가르쳐주는 것이 군자 된 도리이옵니다
폐하, 소신이 사신으로 갈 때 해동청 (사냥매) 쉰다섯 마리만 가져가게 윤허해 주옵소서. 다른 물선을 가져가면 당나라에서는 분명조공을 바쳤다고 기록할 것이옵니다
하루살이가 산을 지고 날 수 없으며, 개미가 너른 바다를 다 건너갈 수 없나이다.당랑포선이라는 옛말이 있사옵니다. 나무에 매미가앉아 노래하는데, 사마귀는 당장참새가 달려드는 걸 모르고 매미 잡을 궁리만 하고 있으니, 이 아니 어리석다 하겠사옵니까. 평상시앞발을 들고 작은 벌레를 잡아먹던 것만 뽐내고 있으니 필경 화가 미칠까 두렵사옵니다.
변방에서 원숭이를 잡을 때, 주둥이가작은 항아리 속에 닭다리를 넣어두면 원숭이가 다가와 손을 집어넣어 움켜쥔다 하옵니다. 그때 몽둥이와 밧줄을 들고 쫓아가면 원숭이가 도망치는데, 무거운 항아리 때문에 금방 잡히게 되옵니다. 먹을 것을 얼른놓으면 손을빼내어 도망갈 수 있으련만,원숭이는 먹을 욕심에 잡히고 마는 것이옵니다.
"소녀의 성은 양가이옵고, 이름은 소화라 하옵니다. 박작성에서 태어났지만, 본향은 안시성 사람이옵니다."양소화의 아버지는양상궁이요, 할아버지는 양만춘 장군이라고 했다.
과연 장사무 장군의 기개가 살아 있는것 같도다. 박작구에 수군장수 장문휴가 있음에 동해가 고요하구나. 장하도다.
찰나였다. 남자 검무잡이와 여자 검무잡이가 별안간 황제를 겨냥하여 짧은 화살을 동시에 날렸다. 화살을 막은 것은 태사 신재용과수군장수 양소화였다. 그리고 연달아 날아든 비수를 양소화와 장문휴가 칼집으로 막았다.
임술년 가을, 신재용은 황후의 생신 잔칫날 고요하게 생을 마감했다. 대무예는 말리는 신하들을 물리치고 신재용의 거처까지 찾아가 엎드려 큰절을 올려 스승에 대한 예를 다했다. 신재용은 황제의 공경을 받으며먼 길을 떠났다.
본디 덕이 높은 자는 황천 밑바닥을 헤매고 다녀도 마음이나 얼굴에 사소한 동요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짐은 위험이 닥친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마구 뛰었으니 어디 군자라 할 수 있겠느냐.스승께서 짐에게 남긴 유언에 누구든 혈육살생을 금하라 하시면서 이를 위해 다 잊고용서하라 했도다. 그것이 마음 편히 사는 길임을 알았으니 어찌 치죄하겠느냐
짐의 아우 홀한왕과 많은 신료들은 홀한왕이 계위할 줄 알았으나 짐이 황위를 이었도다. 경들도 그 처지가 된다면, 그것이얼마나 큰상처겠는가? 짐이 문죄하는 순간 원치 않는 변고를 어찌 막을 수 있겠는고? 그러하니 관 뚜껑에 대못질을 하듯 모든 것을 덮기로 했다
세월은 속일 수 없었다. 갑자(724)년 정월에 원로대신 대내상 달신이 세상을 하직하여 개국공신들의 시대가 조용히 마감되고 있었다.
행여 당나라의 세력이 두려워 흑수를정복하지 않으면 이는 천하에 우둔한 생각이다. 우리는 두 마리의 흉맹한 짐승이 한꺼번에 달려들기 전에, 먼저 흑수를 정복하여 기를 꺾어야 한다. 짐은 이미 흑수를 치기로 결단했도다!
천통성을 떠난 대문예의 북정군은 곧장 북쪽으로 향했다. 흑수를 치려면 북동쪽으로 내달리는 게 지름길이자 닦인 길인데도 에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선행군을 이끄는 장수 대선정은 북진하라는 명을 받았다
거짓 성지인 줄 알면서 모반에 가담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자가 어디 있겠사옵니까?
전하,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들짐승은 내달리게 마련인데, 나는 것은 주살로 쏘아 잡고, 헤엄치는 것은 낚시를 드리워 잡으며, 달리는 것은 그물을 쳐서 잡을수 있나이다. 그러나 용을 잡으려면 마땅히 구름과 바람을 거느려야 하고, 우레와 천둥을 부를 수 있어야하며, 사해를 굽어보는 혜안과 천군만마를 단칼에 쓰러뜨리는 웅혼함이 있어야 하옵니다. 전하께서는 순리를 거역하는 순간부터 가시밭길을 걷게 되는데 도대체 무엇이 부족하여 선조의 피로 되살려낸 땅을 어지럽히려 하시옵니까?
반란군 강화맹은 전투에 임해 관군 이익성과 재주껏 말을 주고받았다. 맞겨루는 척하면서 일부러 패하려고 교묘하게 수십 합을 다투었다. 한 명이라도 더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시간을 끌었다. 물론 장수들 중에는 이번 기회에 사직을 뒤엎고 공신 반열에 오르겠다는 장수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대문예에게 모반을 약조한 거개의 장수들은 이심전심으로 관군에 투항할 궁리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