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안정되고 강역이 넓어지자 황제는 널리 현사와 준걸들을 예로써 초빈했다. 고구려 유민들이 힘을 모아 당나라를 쳐부수고 옛고구려 땅을 수복하여 세운 나라였기에 여기저기 숨죽이고 있던 걸출한 동량들이 속속 도성을 찾아들었다.
고구려 말년에 전설처럼 이름이 떠돌던 현사 고정은 태백산 기슭에서 정진하고 있었다. 고정의 제자인 고원우와 고굉필이 무술의달인이라는 백제 후손 부여록과 흑치상간, 해명정을 데리고 왔다.
통문하(두만강) 하류에서 교역선을 거느리며 사병을 키워 일가를 이룬 고구려 후손 장원충, 장건충 형제는 배 만드는 재주와 뱃일에능한 자들을 무려 7백 명이나 데리고 왔다. 부여성 출신 공사량, 공무량, 공승량 삼형제도 북방의 양마 1천 필을 이끌고 3백 명이나되는 숙련된 말몰이꾼들을 데려왔다.
안팎으로 위기를 느낀 무측천은 돌궐과흑수에 은밀히 밀사를 보내 발해의 배후를치면 재화를 주고 발해의 땅을 나누어주겠다고약조했다.돌궐의 묵철은 무측천의 술수를 알았다.한두 번의 속임수가 아니었다. 묵철은 대조영과 겨루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이미 돌궐과 발해 두 나라는 굳게 화친을맺고 있었다.
척박한 북방에 한둔하던 흑수의 무리들은 무측천이 미끼로 던진 배부른 양식과 호사스런 옷감, 눈부신 금옥에 현혹되었다.이에군사를 초모하고 당나라가 보낸 병장기를 벼르며 침공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신재용은 도리행의 이름을 풀이하면서도 마음이 썩 편치 않았다. 태어난 지 스무하루밖에 안 된 아이였지만, 왠지 단명할운세라는느낌이 들었다. 황자 대무예 탓이라고는 하지만 황자비가 제대로 태교를 한것 같지 않았다. 태자 자리를 겨루는 은밀한 혈투 속에서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끼며낳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황궁에서는벽에도 귀가 달렸고 바람결에도 소문이 묻어 다닌다고 했다. 황제도 어렴풋이 대무예가 총애하는 사사란을 대문예가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대문예를 북방으로 보내고, 사사란을 징치하여 화근을 없애려고 했다.
영자성을 평정했지만 북정군 통수 대문예는 도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명산성에 머물러야 했다. 사사란의 죽음이 가져다준 형벌이었다. 북정군이 모두 돌아가고 불과 2천 명밖에 안 되는 수성군을 거느린 채 금족령으로 묶인 것이다.
대조영은, 대무예의 후궁이면서 친아우인 대문예를 유혹하여 황실을 어지럽힌 사사란보다 대문예의 죄가 더 크다고 여겼다.결국대문예는 흑수 정벌의 공이 컸음에도북방의 작은 성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말이 금족령이지 유배형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문예도 명산성에서 쉽게 풀려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태자위는 빼앗는 것이지 결코 기다리는 것이 아니리라. 대문예는 한바탕 세상을 휘젓고 싶은 욕망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대장군 이다조는 현무문을 부수고 들어가 무측천이 거처하던 장생전으로 진입하여 무측천이 그토록 총애했던 환관 장역지와 장창종을 궁전 뜰에서 쳐 죽였다. 그런 다음 성문을 닫아건 채 무씨 일가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주살했다.
그해 11월 초이튿날, 무측천은 상궁선거전에서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죽음이 임박하자 황제에게 무씨들을 보살펴주라는 청과 함께 자신을 황제로 칭하지말고 태후라 칭하여 측천대성황후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학살당한 황후, 재상 저수량과 한애 등의 가솔을 사면해달라고 요청했다. 무측천은 자신의 묘비에 아무 글자도 새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스스로 천하에 부끄러운 짓을 많이한 걸 깨달았던 것일까.
그해 초가을, 이융기와 사냥터에 나가 야숙을 하던 대문예는 발해 황자 대무예가 태자로 책봉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대문예가 숙위로 와 있는 동안, 대무예는 북방의 철리와 불열을 대부분 토평하고 동방까지 밀고 들어가 우루말갈도 일부 복속시켰다. 대무예의 공적을 인정한 좌우 권신들은 황제께 주품하여 대무예를 태자로 책봉했다.
세상을 거머쥐려면 어떤 일에도 얼굴에 동요가 없어야 합니다. 아랫것들 앞에서 이러시면 대업을 이룰 때 목숨 거는 자가 없습니다.
태자의 자리는 불변의 자리가 아니고 황제의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디 고정하십시오
지금 발해를 치려면 백만 대군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러나 백만 대군이 덤벼도안 될 일을 한 사람이 해낼 수 있습니다.
천군만마로 안 되는 일을 자객지변으로 능히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옛날에 도척이 있었는데, 졸개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도둑이 남의 집안에 있는 재물을 귀신같이 알아내는 것이 성이고,
목표한 곳에 남보다 먼저 뛰어드는것이 용이며, 쫓길 때 잘 도망치는 것이 의이고, 실행 가능한지 여부를 잘 판단하는것이 지이며,
훔친 것을 고루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인이라고 했습니다. 도둑질도 이럴진대, 하물며 나라를 훔치겠다는 전하께서 이리 나약해서야어찌 큰일을 도모할 수있겠습니까?
발해의 강역이 넓었지만, 대조영은 옛 고구려 영토를 다 수복하지 못했고 동북방의 흑수도 평정하지 못했으며 흑수와 손잡은 여러부족도 복속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남쪽의 신라가 언제 칼끝을 내밀지 모르며 서쪽의 당나라와 북서의 돌궐, 그리고 북방에 웅거한 거란도 신경이 쓰였다.
대조영은 친정군을 거느리고 서북쪽으로 진군했다. 당나라와 화의를 맺어 서쪽이 안정된 대신 서북쪽에 있는 부여성 일대가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여성은 고구려 때 축성한 천리장성의 북쪽 끝에 있는 성지였다
대조영이 태자 책봉을 서두른 것은, 도성을 태자에게 맡기고 몸소 천하를 평정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남쪽을 파고들어 평양성을 취하고, 동쪽을 밀어붙여 동쪽 바다까지 평정하고, 북쪽으로 흑수를 징치하여 복속시키며, 서쪽으로 비사성에서 부여성까지 차지해야 했다. 대조영은 그렇게 될 때까지 쉼없이 군사를일으켜 고구려 고지를 살아생전에 되찾을 각오였다.
드디어 6월 20일 밤, 이융기는 황궁의 북문인 현무문을 치고 들어와 위태후와 안락공주의 목을 베고, 위후의 측근 세력을 모두척결했다. 정변의 주역은 이융기였고,모사는 고구려의 후손 왕모중이었다. 왕모중은 천하를 안정시킨 공로로 노예 신분을 벗고 장군의 반열에 올랐다.
원한에 사무쳐 잃었던 땅을 되찾고, 고구려를 계승하여 대발해를 세웠도다. 짐은 천손으로 마땅히 황위에 올랐는데, 당제 이융기가감히 발해군왕이라 칭하려 하다니,위로는 선조를 모독한 것이요 아래로는 짐의 백성들을 힐난한 것이로다. 이는 마땅히 치죄할 일이기에, 당제가 정중히 진사를 보내 엎드려 죄를 청할 때까지 사자를 가두겠다
진사를 보내 사죄하고, 사죄의 뜻으로 비사성을 비우지 않으면, 짐이 친정하여 요하를 건너 장성을 무너뜨리고 중원을 범하겠다. 당제 이융기의 수급을 현무문 위에높이 걸어두고, 만백성에게 죄상을 알려 후세에 교화를 삼게 하겠도다. 즉시 전군을 강무토록 하라!
발해는 마침내 뱃길로 중원을 넘볼 수있는 요충지 비사성을 칼날 한 번 휘두르지않고, 화살 한 대 날리지 않고, 호령 한 번내지르지않고 수복했다. 고구려가 멸망한지 30년 만에 나라를 세웠고, 발해를 건국한 지 17년째 되는 봄에 드디어 옛 고구려땅을 모두 수복했으니 이 감격을 어찌 잊을수 있으랴. 잃었던 조상의 땅을 47년 만에 되찾은 것이다.
하늘의 뜻을 받들어 환인 성제로부터 단군왕검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백성은 한순간도 하늘의 자손임을 잊지 않았사옵니다. 천명을 받들고 정혈을 찾겠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