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대장정 서재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고 그 근거인 젊은이들에게 다가가려는 시도로 잡문들을 묶어 책을 낸다. 책에서 첫마디로 제기한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되돌아볼 것을 강조하는 것은 자기 성찰과 사회 비판이 이 물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싸워왔는데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 했나‘라고 말하기보다 ‘소수의 부단한노력으로 이나마 덜 비인간적인 사회를 이룰 수 있었다‘는 편에 서려고 한다. 이 책은그래서 그런 소수에게 서로 위무하고 격려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내 삶에 대한 내 생각의 조각들을 덧붙인 것은 나름대로 편한 비루함보다는 불편한 자유 쪽에 서려고 했던 삶의 궤적을 통해 소수에겐 그래도 탄식보다는 의지가 어울린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젊은이들에게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의 작은실마리라도 제공한다면 그지없이 기쁜 일이다.
-‘책머리에 중에서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하는 존재인 양 착각하기도 하지만, 일찍이 칸트가 지적했듯이 ‘생각하는 바에 관해서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들이다.
스피노자가 강조했듯 사람은 이미 형성한 의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스피노자가 강조했듯 사람은 이미 형성한 의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고집하고 쉽게 버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물어야 한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이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 라고.
"사람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에 따르면, 사람은 이성적 동물, 합리적 동물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이처럼 우리 몸은 건강하지 않는 대부분의 경우 자각증세를 보여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해주지만 우리 생각은 그렇지 않다. 너무 늦어서 탈이지만 그래도 종내는 자각증세를 보이는 암보다도 더 지독해서 그릇된 생각, 그래서 내 삶을 그르칠 수 있는 생각을 갖고 있을 때에도 자각증세가 없다. 자각증세는커녕 그 생각을 고집한다. 생각의 성질이 그와 같다.
내 안에 생각을 집어넣는 실제 주체인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갖춰 나가면서 기존에 형성된 생각을 끊임없이 수정하여 나의 주체성을 확장하지 않으면 진정한 자유인도, 내 삶의 진정한 주인도 되기 어렵다.
1) 폭넓은 독서 2) 열린 자세의 토론 3) 직접 견문 4) 성찰
내게 ‘폭넓은 독서’란 이런 의미다.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 중 책을 남긴 사람의 생각을 내가 ‘주체’적으로 참조하는 것".
내게 ‘열린 자세의 토론’이란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생각을 열린 자세로 참조하려고 ‘주체’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또 ‘직접 견문’이란 "오감을 가진 주체로서 다양한 경험과 여행 등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직접 보고 겪고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성찰’이란 "폭넓은 독서와, 열린 토론, 그리고 직접 견문을 통해 만나는 뭇 생각들이 소우주와 같은 나의 의식세계 안에서 서로 다투고 비벼지고 종합되고 정리되는 과정"을 뜻한다.
스페인의 한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모두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의 눈과 귀가 보고 들을 수 있는 세계는 지극히 좁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감옥에 하나의 창이 나 있다. 놀랍게도 이 창은 모든 세계와 만나게 해준다. 바로 책이라는 이름의 창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