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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서재

2004년 11월 21일 칠레에서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향해 "두 나라 정치 관계가 정체와 곤란을 겪게 된 최대 장애 요인은 일본 지도자의 야스쿠니 참배"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야스쿠니에서 죽음은 슬픔이나 상실감의 대상이 아니다.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이 여러 시간에 걸친 초혼식을 라디오를 통해 생중계까지 한 것은 이런 의식이 군국 일본의 전쟁 동원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지하에서 천황의 은혜를 경건히 떠받들고, 유족은 자신의 아들이나 형제를 야스쿠니에서 신으로 모셔주는 천황의 은혜를 입은 광영에 감읍하여 부형의 전사를 기뻐하고, 일반 국민은 또 다른 전쟁에 천황과 제국 일본을 위해 죽기를 기약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야스쿠니신사를 통해 제국 일본의 지도자들이 끌어내려 한 분위기였다.
침략국가가 일으킨 잘못된 전쟁에 가해자로 동원돼 죽음을 강요당한 전사자들을 ‘영령’으로 칭송하는 일은, 고이즈미 총리 야스쿠니신사 참배 위헌 아시아소송 원고단 단장 스가하라 류겐이 잘 지적한 것처럼, 국가의 전쟁범죄를 정당화하고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전사자를 이용하는 일로서 전사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이곳에서 신이 되어버린 죽음은 자연스럽지 않다. 슬픔도 상실감도,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다짐도 ‘죽음을 죽여버린 공간’인 야스쿠니신사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남쪽 사회 내에서 갈릴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한 가지만은 분명히 해야 한다.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깎아내리는 일만큼은 용인돼서는 안 된다.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단 하룻밤이라도 한데서 새워본 적이 없는 자들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단 한 번도 발품을 팔아본 적이 없는 자들이, 영하 40도가 되는 추위의 밀림 속에서 밤을 지샌 투사들을 모욕하게 할 수는 없다. 항일투사 김일성에 대한 폄하는 곧 1930년대 후반 이래의 우리의 항일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폄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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