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재오는 "우리가 한나라당에 없었다면 한나라당이 지금 야당으로서 모습을 갖췄겠는가" 하고 자신 있게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불행은 어렵게 들여온 양자마다 족족 불임이 되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힘과 돈이면 무엇이든 되던 시대에 그 동네 밭의 토양 자체가 너무나 오염된 탓일 것이다.
특히 자기들이 열심히 운동하던 유신 시절에 고시 공부해서 판사가 되고 변호사 개업해서 돈 벌다가 뒤늦게 지방에서 운동을 한 노무현에게 졌다는 것은 운동권 핵심을 자부하는 그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이런 증세는 노무현과 같이 꼬마 민주당을 했던 박계동이 오히려 가장 심한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젊은 날의 이런저런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지나놓고 보면 그때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싶을 때가 있다. 어렸을 때 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조선일보> 기자가 되고 싶었던 것. 그리고 후배들에게 인생 저렇게 살지 말라고 말해줘야 할 반면교사가 되어버린 이재오를 배우고 싶은 선생님으로, 김문수를 닮고 싶은 선배로 생각했던 것. 그런 꿈이 이루어졌으면 어떡할 뻔했나, 생각만 해도 머리가 곤두선다.
원전의 공부도, 사회과학 공부도 역사가 길지 않았다. 현대사 연구는 광주를 거치면서 처음 시작되었다. 놀라운 학구열과 첨예한 의식을 가진 어린 학생들, 그러나 복잡한 세상은 희미한 원전 복사본에 사회과학 서적 몇 권 읽은 지식으로 분석하기가 만만하지 않았다.
전에는 사상과 이념으로 사람을 따졌는데, 그게 다가 아니고 이념과는 전혀 기준이 다른 사람됨이라는 게 있다. 좌파 중에도 절대로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간이 있는가 하면, 생각은 보수적이지만 도저한 인품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우파도 있다. 자신들이야말로 지금도 진짜 주체사상파라고 우기는 뉴라이트들을 위해 주체사상의 용어를 빌려 표현한다면 ‘품성’이 중요한 것이다.
뉴라이트들이 옛 동료들을 향해 사상 고백을 하라고 을러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품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 뉴라이트 문제, 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주체사상식으로 얘기하면 품성의 문제이고, 우리의 일상의 말로 바꾼다면 ‘싸가지’ 문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