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외적의 앞잡이이고 수천 동포의/ 학살자일 때 양심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할 곳은 전선이다 무덤이다 감옥이다”라고 절규했다. 그의 수많은 옥중시들은 우유팩 위에 나뭇가지나 못조각, 손톱으로 꾹꾹 눌러 쓴 것이라 한다. 어느 사람에게는 갈 데가 못 되는 곳이고 또 어떤 시인에게는 있어야 할 곳이던 감옥에서 김남주는 이렇게 깨닫는다. “아, 그랬었구나/ 로마를 약탈한 민족들도/ 약탈에 저항한 사람들을 감옥에 처넣기는 했으되/ 펜과 종이는 약탈하지 않았구나 그래서/ 보에티우스 같은 이는 감옥에서/ 『철학의 위안』을 쓰게 되었구나”라고. 중세 암흑기에도 감옥에는 불이 켜져 있어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을 쓰고,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썼다. 차르체제하의 러시아에서도 시인과 소설가에게서 펜과 종이만은 빼앗아가지 않아 체르니셰프스키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썼고, 일제강점기에도 일제가 우리 말 우리 성까지 빼앗아갔지만, 감옥에서 펜과 종이만은 빼앗아가지 않아 신채호는 『조선상고사』를 썼고, 홍명희는 『임꺽정』을 썼다. 그래서 김남주는 “펜도 없고 종이도 없는 자유대한에서 그 감옥에서 살기보다는” 차라리 고대의 노예로, 중세 농노로, 일제치하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절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감옥을 보면 사회가 보이는 법이다. 이런 기막힌 소망을 지닌 김남주 시인을 우리는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까? 독재치하에서는 바깥도 감옥이었다는 말로?
대한민국사 2 | 한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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