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대장정 서재

"한바탕 비가 올 것 같군."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작고 차가운 손이었다.
"여보, 에쓰코를 부탁합니다"였다. 딸에게 환갑을 맞이하려는 남편을 부탁하는 게 아니라 남편에게 딸을 부탁하고 갔다.
"시작하면 돌아올 수 없는 게임이 있니?"

유카리는 웃었다. "그런 건 무섭잖아. 게임하고 있는 사람이 게임 안에서 갇혀서 나올 수 없는 것 같아."
― 신교지 씨……구해
신교지 씨, 구해줘요.
미사오는 그렇게 말하려 했다.
처음으로 그녀의 볼을 가볍게 만지고 그는 말했다. "당신은 정말로 감이 좋아."

"조심해."
외롭지만 친구를 만들어서 생기는 번거로움이 싫으니까, 타인과 직접 접촉해서 생기는 문제들이 싫으니까, 전화로 목소리밖에 들을 수 없는 우리를 원하는 거지요. ‘전화로 목소리밖에 들을 수 없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전화 속만의 교제로 끝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네버랜드와 같은 형태의 전화 피난소가 존재하는 이상, 절대 조건은 ‘이쪽에서는 결코 파고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유카리, 미사오 언니 좋아해. 엄마, 파이팅!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유카리의 격려뿐이다.
"그러니까 원래의 우리도 지금의 우리도 같은 인간인 것은 변함없으니까, 이름은 하나로 족합니다. 새로운 이름을 붙이면 ― 비록 그것이 임시라 해도 ― 그 순간에 다른 인간이 탄생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래 이름의 존재로 돌아갔을 때는 임시 이름을 붙였던 존재는 죽는 게 됩니다. 그게 싫습니다."
"고마워. 나, 임시 고용한 이름 따위 갖고 싶지 않아."
"같은 의견이라서 한시름 놨네."
그는 문득 그녀가 이전에도, 즉 사라져 버린 과거의 어딘가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상태를 경험한 적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명의는 ‘사토 이치로’라고 합니다."

사에구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니혼타로(한국에서 흔히 예시로 드는 ‘홍길동’처럼 쓰이는 이름)나 마찬가지군."
"딱 좋군. 당신들 이사 기념 메밀국수다(일본에서는 새로 이사하면 메밀국수를 이웃에 인사로 돌림)."
"더구나 미사오는 아직 고교생이니까."

에쓰코가 말하자 기리코는 아하하 하고 웃었다. "학생이냐 사회인이냐는 상관없어요. 지금은 모두 자유롭고 돈을 갖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젊은 여자애에게는 황금시대죠. 뭐든 할 수 있고 대개의 소망은 이루어지고."
그런 건가 ― 하고 에쓰코는 생각했다. 유카리도 그렇게 될까. 시대가 그런 빛을 하고 있으니까 물들어 가는 것일까.
"대개의 인간은." 사에구사는 웃었다. "책임감이 강하니까. 틀렸다는 걸 알면 제대로 알려 주거든."
"오토인가. 그건 여자나 타는 거야. 차종이나 차 색깔은 떠오르지 않나? 번호라면 더 좋고. 그것만 알면 바로 당신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데."
몸이 무겁다. 뇌가 있어야 할 곳에 톱밥이라도 가득 차 있는 듯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