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을 무사히 건너갈 용기
다정한마음들 2024/06/16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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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여름에게
- 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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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 2024-06-07
: 4,028
어쩐지 시에 꾹꾹 눌러 담겨진 언어들은 밀도가 너무 높아서 그 농도를 조금은 낮춰줄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해지는데, 나에게는 그게 시인이 쓴 에세이였다. 최지은 시인의 시를 좋아하던 나에게 『우리의 여름에게』는 그렇게 처음 다가왔다.
그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진솔하다 못해 투명한 이야기들에, 내 이야기를 할 때 꽤 솔직한 편인 나조차도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내가 최지은 시인과 알던 사이였나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그녀를 알던 위트 앤 시니컬의 경화 매니저의 편지 내용에 적힌 지은 시인의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려져 그녀가 이해될 정도로.
사람들은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한다. 상대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를 어떻게 판단할지를 먼저 생각해 보고 나를 지킬 수 있는 적정 범위를 결정한다. 심지어 일기를 쓸 때조차 솔직해지지 못할 때가 많다.
그 무엇도 재지 않고 만나본 적 없는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최지은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읽으면 읽을수록 궁금해졌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것들의 정체를 그녀는 집요하고 끈질기게 따라간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괴롭고 힘들어도, 잠시 덮어두고 기다리더라도, 끊임없이 상처를 바라보고 곱씹는다. 차라리 잊으면 마음 편할 테지만 그녀는 그런 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다. 도망치지 않고 껴안고 버텨낸다. 가장 최지은다운 방식으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기 위해 그녀는 얼마나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았을까. 얼마나 슬픔을 곱씹으며 결국 그녀를 둘러싼 세계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걸까. 그녀의 아픔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 슬프다.
그녀는 가만히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누군가에게는 단 한 톨의 희망도 찾아볼 수 없는 비극 속에서도, 그녀는 그녀만의 박하사탕을 찾아 입안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가 그녀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 항상 곁에 있어 용기를 주고 응원해 준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정한 마음들을 잘 알아채고 소중하게 간직하며 그 마음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건네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최지은 시인의 조금은 특별한 성장 과정이 이 에세이를 읽는 데 조금의 걸림돌도 되지 못한다.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지만, 그녀의 슬픔에 함께 아파하고, 서러울 땐 옆에 있어 주고 싶고, 기쁠 땐 함께 행복해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 안의 상처투성이 어린 나도. 그렇게 울고 웃다 보면 끝날 것 같지 않던 기나긴 여름은 끝나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이 무더운 여름이 용서받을 수 있는 이유는 맛있는 과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앞으로 나에겐 여름의 초입에 만난 『우리의 여름에게』 이 에세이 덕분에 여름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강한 확신이 든다. 이 무더위뿐만 아니라 보잘것없이 초라한 나 자신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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