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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한말씀 님의 서재
  • 장자
  • 오강남 옮기고 해설
  • 13,500원 (10%750)
  • 1999-01-15
  • : 12,977

무릇 도가 실재라고 하는 믿을 만한 증거는 있지만, 그것은 함도 없고(無爲) 형체도 없다(無形). 전할 수는 있으나 받을 수가 없다. 터득할 수는 있으나 볼 수가 없다. 스스로를 근본으로 하고 스스로를 뿌리로 하고 있다(自本自根). 하늘과 땅이 있기 이전부터 본래 있었다. 


귀신과 하늘님을 신령하게 하고, 하늘과 땅을 내었다. 태극보다 높으나 높다 하지 않고, 육극(六極)보다 낮으나 깊다 하지 않는다. 하늘과 땅보다 먼저 있었으나 오래되었다 하지 않고, 옛날보다 더 오래되었지만 늙었다 하지 않는다.


도는 taught 될 수 없고 오직 caught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글을 읽되 거기에 매이지 말고 읽어라. 그것을 오래오래 구송하고, 맑은 눈으로 그 뜻을 잘 살핀 다음, 그 속에서 속삭이는 미세한 소리마저도 알아들을 수 있게 바로 깨닫고, 그 깨달은 바를 그대로 실천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즐거움과 감격을 노래하라. 그리하면 그윽한 경지, 조용하고 텅 빈 경지를 체험한 다음 시원의 도와 하나되는 경지에 이르리라. 


장자에서는 인간이 행한 행위에 따라 내세가 결정된다는 인과응보라든가 업보 같은 사상이 없다. 모두 자연이 그 순리에 따라 적절한 길로 만물을 변화시킬 따름이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이렇다, 저렇다’ 하는 대신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산스크리트어로 ‘네티 네티(neti-neti)라는 부정(否定)의 언어를 쓸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을 두고 서양에서는 ‘부정의 길(via negative)’ 혹은 ‘부정의 신학(negative theology)’이라 했고, 희랍 정교에서는 ‘아포파시스(apophasis, apophatic theology)’라고 하였다. 


궁극 실재에 대한 우리의 모든 개념이나 생각을 버릴 때, 오직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참다운 실재(實在)로 파악하게 되고 이런 직접적인 체험으로 얻은 앎이 진정한 앎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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