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은 건 2017년 2월, 성당에서 소년합창단의 성가를 듣고 몬세라티에서 바르셀로나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였다. 바르셀로나와 인근의 작은 도시들을 홀로 여행하던 중에 기차역 플랫폼에서 낯익은 사투리가 섞인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는 어머니와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마침 같은 칸에 탄 우리는 마치 동네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진영이라는 이름은 그 아들에게서 들었다. 현재 한국 소설가 중 가장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한다며. 나중에 검색해보기 전에는 판타지 장르를 쓰는 남자 작가이겄게니 했다. 그렇게 그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4년 뒤 읽은 소설이 <내가 되는 꿈>이었다.
그 뒤로 몇 개의 인터뷰를 보고 듣고, 더 읽어보고 싶어 사두었던 게 두 번째 소설집 <겨울방학>이다. 여름에 샀던 것 같은데, 어쩌다 보니 딱 겨울이라 부를 만한 12월에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점심을 먹고 남는 시간에, 틈틈이 공감하며 감탄하며 읽었다. 모든 단편이 비슷한 정도로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각 단편마다 마음에 남는 문장과 메시지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잘 쓴 작품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최진영의 소설은 대단한 서사가 돋보이기보다는 캐릭터의 일상적인 말과 행동이 그 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보여주고 그게 모여서 서사를 이해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무척 덤덤하게, 비유하자면 기초화장만 한 얼굴처럼 별로 꾸밈없이 쓴 문체인데도 일상적 단어들이 모여서 묵직한 한 방을 날리는 힘이 된다. 아직 작가의 모든 소설을 읽은 건 아니지만(장편소설 둘, 소설집 하나를 읽었을 뿐), 내가 받은 느낌을 요약하자면 그렇다.
처음 낸 소설집이 아니라 그런가, 신인 소설가의 어설픈 면은 없으면서도 신선함이 아직 살아 있는 단편들이 묶여 있다. 모든 단편이 비슷한 정도로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각 단편마다 마음에 남는 문장과 메시지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잘 쓴 작품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책을 읽으면서 오타를 발견했을 때 빼고는 웬만해서 메모를 하거나 포스트잇을 붙이는 일이 드문 내 독서 스타일과 다르게, 최진영의 문장들은 곰곰이 곱씹어보고 싶어 포스트잇을 붙이고 싶게 만들었다. 표지는 좀 마음에 안 들지만, 같은 소설을 여러 번 읽지 않는 내가 다시 꺼내 읽어보고 싶어질 것 같은 소설집.
삶은 활작 펼쳐진 종이가 아니라 불규칙하게 구겨진 종이다. 펼쳐진 채로는 도무지 만날 수 없는 것들이 구겨지면 가까워지고 맞닿고 멀어지기도 한다. - 103쪽(’첫사랑‘ 중에서)
주은은 웃엇다. 남자와 여자 앞에서 웃지 못한 것까지 다 게워 내 웃었다. -138쪽(’가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