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흥미로웠다. <물질의 세계>. 타이틀만 봤을 땐 "상업적인 ? 돈과 관련된 금융과 경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부제와 책 소개를 보니 훨씬 더 근원적인 우리 인류 사회와 삶을 이루는 물질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였다. 총균쇠를 잇는 이야기라니. 총균쇠를 정말 흥미롭게 읽었던터라 갑자기 호기심이 확 생겼고 그렇게 샘플북을 신청해 읽어보게 되었다.
물질이 우리 삶에 오기까지의 여정은 정말 한편의 로드무비 같았다. 그런데 범죄 추적 서스펜스가 곁들여진 로드무비였다. 범죄자는 인류였고, 자세히 말하면 인류의 탐욕이었다. 더 나은 삶을 살아보자, 더 많이 가져보자는 욕망으로 착취해온 지구 물질들의 희생 이야기랄까.
역사를 읽으면, 고전을 읽으면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고 착취 당하는 이의 이야기로 구성된 것을 볼 수 있지 않나. 그것만 보아도 마음이 힘들고 지금의 삶과 비교될때가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 접한 물질들의 여정은 그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참담했다. 물질은 아무 이야기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항변도 하지 못한 채 파괴되고 소모되어가는 자연의 물질들의 입장을 자꾸만 생각해보면서, 그리고 그 물질의 파괴로 물질과 더불어 살던 원주민들의 삶도 함께 피폐해져가는 것을 보면서 인류세의 무서운 단면을 제대로 접한 기분이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이 좋으면서 인간이 무섭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 지 모르겠고, 아직 정말 어렵다. 이 책의 샘플북은 6개의 물질 중 1파트, 모래에 대한 부분만 다뤘는데, 이 참담한 마음이 과연 6파트까지 모두 읽고 나서는 나아질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금이 생산되기까지 여러 단계를 지켜보면서 가장 놀란 점은, 반짝거리는 금속 겨우 몇 조각을 얻기 위해서 오늘날 이처럼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과정은 규모부터 엄청났다. ⋯⋯ 금괴 한 덩이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흙을 파헤쳐야 할까? ⋯⋯ 나중에 혼자서 계산해보니 400트로이온스 (약 12.5킬로그램)의 표준 금괴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5000톤의 흙을 파내야 했다. 이는 세계 최대 여객기인 A380 10대가 만석일 때의 무게와 비슷하다. - P14
어째서 나는 이 금이 어디에서 왔는지 확인하지 않았던 걸까? 아내의 약혼반지 다이아몬드가 분쟁지역 다이아몬드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렇게 열심히 확인했으면서 말이다. 그런데도 이 반지를 만들기 위해 인간과 토지가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는 왜 확인하지 않았는가.
과거에는 약 0.3톤의 광석만 있으면 결혼반지를 만들 정도의 금을 전통적인 채금 방식으로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정도의 금을 얻으려면 적게는 4톤에서 많게는 20톤의 광석이 필요하다. 기폭 장치 앞에 서 있던 나는, 도살장을 둘러보기 전 소시지와 달걀로 아침 식사를 즐긴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P15
석영암이 금속 형태로 용해되는 과정은 영광과 악랄함을 모두 품은 산업혁명을 관찰하는 일과 닮았다. ⋯⋯ 용광로에서 내뿜는 연기와 열기의 결과는 절대 사소하지 않다. 이 용광로를 돌리는 데 45메가와트의 전력이 필요한데, 소도시 하나에 공급되는 전력량과 맞먹는 규모다. - P118